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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의 지혜를 담다] 초대 민선 대구시장인 문희갑 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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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의 지혜를 담다] 초대 민선 대구시장인 문희갑 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이사장

입력
2018.05.1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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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서 배우고 역사에서 깨달아야”

문희갑 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이사장
문희갑 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이사장

정답이 사라진 시대다. ‘답정너’의 시대에도 정해진 답은 없다. 아무도 쉽사리 ‘이것이 답’이라고 말할 수 없다. 삶은 복잡 거대해졌고 시대의 통찰은 지리멸렬하다. 고전이 답이다. 고전은 무수한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홀로그램 같은 정답을 비춘다. 그 질문을 가장 적극적으로 부여잡는 이들이 한 시대를 이끌어왔다. 원로가 답이다. 과거로 돌아선 듯 옛날을 이야기하지만 바로 지금 여기서 미래를 내다보는 눈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최대의 복수는 용서’라는 깨달음

3월27일 저녁 대구 수성구 더유갤러리카페에서 문희갑 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이사장 초청 간담회가 있었다. 대구한국일보가 원로와 만남을 통해 고전의 지혜를 듣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문 이사장은 “시대마다 삶의 형태는 바뀌었지만 면밀히 들여다보면 내용은 비슷하다”는 말로 이날 만남을 열었다.

문 이사장은 “과거를 통해 배워야 한다. 특히 고전을 가까이 하고 독서를 습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 사람들도 원로에게 듣고 배워야 합니다. 삶에는 지혜, 용기, 슬기가 필요합니다. 모두 원로와 고전,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는 초대 민선 대구시장이다. 지난 시절 ‘나라를 위해, 대구를 위해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뜻밖의 고초를 겪었다. 마음에 적잖은 상처를 입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서 힘든 치유의 신간을 가졌다. 고통의 나날을 거치며 “최대의 복수는 용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무거웠던 마음의 상처와 짐을 털었고 이제 남은 책무는 집안일”이라면서 그동안 남평 문씨 세거지 앞에 연못을 만들고 선조인 문익점 선생이 목화씨를 들여온 것을 기념해 목화밭을 조성한 이야기도 들려줬다.

“어머니를 잊을 수 없습니다. 올해는 어머니의 비석을 만들 계획입니다. 유명한 시인의 시도 받아봤지만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제가 직접 썼습니다. 간절하니까 표현되더군요. 13줄로 축약한 비문을 직접 썼습니다.”

“효는 백행의 근본이라 했습니다. 동서고금을 통해 위대한 인물 뒤에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1909년생. 국권을 잃어가는 험한 시절에 태어나 고생은 말할 수 없었지만 자식을 위해 헌신했다. 4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난 문 이사장은 그런 어머니의 고생과 비애를 보고 자랐다. 그는 절절한 사모곡을 직접 읊었다.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문 이사장은 이문열의 ‘선택'을 권했다. ‘선택’은 ‘디미방’으로 유명한 ‘조선의 큰 어머니’ 장계향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실존 인물을 통해 현대 여성의 출산 기피와 이혼, 성문란 등 작금의 세태를 비판했다. 문 이사장은 “‘선택’은 장계향을 통해 현대 사람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해준다”고 평가했다.

“시대에 순응하면서 다방면에 재능을 보인 ‘장계향’은 경당 장흥효의 외동딸이었습니다. 경당은 퇴계 이황의 심학 학통을 이어받은 어르신으로 지경 즉, 경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자신의 삶이 부끄럽지 않아야 하며 세상을 편안하게 만들기를 염원하는 수신을 큰 덕목으로 삼았습니다. 이런 아버지께 지경과 수신을 배운 장계향은 누구와도 다투지 않았고, 체득한 지식을 생활 속에서 실천, 검증하며 살아있는 진리가 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영양 두들마을을 개척한 석계 이시명이 장계향의 남편입니다.”

문 이사장은 이어 “겉만 화려하고 내면은 저급한 사람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라면서 “이런 시대일수록 검소하고 교양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중파의 책무는 교육이다. 예시적인 모범으로 국민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자극적 소재로 시청률에만 연연할 때가 아니다”고 쓴소리를 했다.

자기 자랑이 안 나올 때 자서전 쓸 것

“요즘 주위에서 자서전 쓰라는 권유를 많이 받습니다. 자서전은 90살 넘어서 쓸 생각입니다. 자기 자랑이 안 나올 때가 자서전을 쓸 시점입니다. 저는 아직 수양이 덜 됐습니다. 얘기를 하다보면 아직도 내 자랑이 나옵니다.”

문 이사장은 싱가포르 이광요 수상처럼 멋진 자서전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그 책에도 자기 자랑을 하지 말라는 교훈이 있다고 했다. 삶을 돌아보기보다는 아직은 삶 자체에 치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청년 문희갑으로 봐달라는 농담도 덧붙였다.

“2025년이 되면 인간이 120살까지 산다고 합니다. 오래 사는 것보다 삶의 질이 문제입니다. 삶의 질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 환경입니다.” 그는 삶의 질과 환경 문제로 화제를 옮겼다.

“요즘 미세먼지 수치가 날씨에 추가됐습니다. 환경이 점점 나빠지고 있습니다. 숲이 인간의 미래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대구 북구 노곡동 하중도가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나무가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를 바꿔놓는 거죠. 앞으로 산수유 5만 그루를 더 심어 전국최대 산수유군락지를 만들 계획입니다.”

그의 말이 실현된다면 봄에는 강둑이 노란 개나리, 산수유 천지가 될 것이다. 그는 무작정 나무만 심는 것이 아니라 대구스타디움처럼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이 있는 휴식처가 되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도 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에서 팔공산 수태골에 나무를 심기로 했다.

숲을 이야기하는 중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름이 나왔다. 문 이사장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박 전 대통령의 프로필을 읊었다.

“박정희는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중심이자 조국 근대화를 이루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던 인물입니다. 박정희는 5·16혁명을 미국서 보고 배웠고 실행했습니다. 박정희는 ‘하루 1달러만 있으면 굶어 죽지 않는다’며 ‘나라를 살리자’는 결연한 의지로 5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추진했습니다. 농업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1974년에서야 보릿고개를 면했습니다. 1970년에 시작된 새마을운동은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끈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달성하는데 일본은 100년, 미국 180년, 영국은 200년이 걸렸지만 우리나라는 30년이 걸렸습니다.”

문 이사장은 “숲과 공원이 잘 조성된 미국에서 박정희는 ‘고국으로 숲을 가져가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게 됐다”면서 우리나라가 30년 만에 산림녹화를 달성했다는 유엔보고서의 평가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 자신도 1959년 미국유학을 갔다. 광활한 대지에 아름드리나무와 빽빽한 숲을 보고 그는 큰 자극을 받았다. ‘세상천지 이런 데가 있나’ 싶었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금수강산’이라 했습니다. 강릉의 울창한 금강송을 보고 ‘국립수목원을 만들자’고 당시 전두환 대통령에게 보고를 올렸습니다.” 국립수목원 금강송군락지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때부터 문 시장의 나무 심기, 숲 사랑도 시작됐다.

‘사피엔스’, ‘호모데우스’를 읽어보라

일본의 근대화에 관한 담론이 이어졌다. “1868년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근대화를 추진했습니다. ‘메이지유신’이란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천황 친정 형태의 통일 국가를 이룬 근대 일본의 정치·사회적 변혁입니다. 도쿠가와 막부시대는 일본 최고의 평화시대였습니다. 사무라이 무사는 칼잡이가 아니라 선비였습니다. 후쿠자와 유키치(에도·메이지 시대의 계몽 사상가)는 봉건제 타파와 서구문명 도입, 교육의 중요성을 내걸며 메이지유신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문 이사장은 “여기에서 박정희가 공감한 부분이 ‘교육이 인간을 개조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창고와 곳간의 차이는 교육이다. 학문을 권장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교육은 3살부터 6살까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사회교육의 바탕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 잘 적응하지 못하면 이지메(왕따)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일본의 부모들은 자식이 이지메를 당하지 않도록 공중도덕, 예절 등 가정교육을 철저히 시킵니다. 이것이 일본의 힘이고 저력입니다. 거기에는 어머니의 교육이 있습니다.”

일본의 음식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레 이어졌다. “세계화에 성공한 스시의 위상과 여기에 투영된 일본 문화는 무엇일까요. 스시는 세계 부유층의 음식입니다. 과하게 표현하면 스시를 먹느냐 안 먹느냐가 세계상류층의 잣대입니다. 스시의 나라, 일본은 식중독이 없는 나라입니다. 부실공사도 없습니다. 기본이 철저한 나라입니다.”

문 이사장은 끝으로 독서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검색이 지식을 대신하는 시대이지만 가볍고 깊이가 없다”면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를 읽어보라고 했다. “두 저작은 인류사를 꿰뚫는 방대한 지식으로 역사를 직관하고 있습니다. 이런 학자를 키워낸 인물이 유태인 어머니입니다. 유태인 교육법은 역사상 우리나라 어머니들과 닮은 점이 많습니다.”

문 이사장은 “현인류(호모사피엔스)는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가장 풍족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사람들이 과거에 비해 더 행복해졌는지에 대해선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거시적인 안목으로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팔순의 나이에도 그의 목소리는 힘 있고 눈빛은 청년 같다. 원로는 살아있다. 그로부터 들어야 할 동서고금의 지혜는 아직 많이 남았다.

강은주 기자 tracy11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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