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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며]한국 여름영화가 할리우드와 다른 점

입력
2016.08.26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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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여름 영화라는 말을 들으면 어떠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일단 여름에 상영되는 영화들은 규모가 크고 대중적이고 특수효과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영화를 보면서 별로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된다. 맛이 있지만 영양가는 없기 때문에 ‘팝콘영화’ 라고 불린다. 미 할리우드 배급사들은 날씨가 덥고 사람들이 휴가를 즐기는 기간에 진지한 영화는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대신 사람들이 인생의 어려움을 두 시간 동안 잊을 수 있는 영화를 보기 원할 거라고 믿는다.

할리우드에서는 여름영화라는 개념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름영화가 아주 다른 것 같다. 올여름엔 주로 비극적인 역사영화(덕혜옹주, 인천상륙작전) 또는 사회 비판적인 어두운 영화(부산행, 터널)가 개봉됐다. 이 영화들은 인생의 어려움을 잊어버리게 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생각하게 한다. 미국사람 입장에서는 이런 영화들이 7월과 8월에 개봉한다는 것이 조금은 놀라운 일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보다 인기가 더 많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올여름 한국영화가 매우 흥미로웠다. 그중에 제일 인상 깊게 본 영화가 ‘부산행’이다. 놀라운 비주얼과 다양한 캐릭터, 그리고 한국사회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담아내고 있었다. 특히 경쟁이 극심한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다 보니 그런 것인지 사람들이 자기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어려움은 외면하는 이기적 모습을 영화는 냉정하게 보여준다. 조지 로메로 감독의 1968년 작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이후로 좀비 영화에는 사회를 비판하는 전통이 계속 이어져 왔었다. 그런데 부산행을 만든 연상호 감독은 좀비 영화의 장르적 전통을 한국 상황에 잘 맞춰 풀어내고 있다.

전체적으로 올해 한국의 여름영화는 대부분 뭔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어 인상적이다. 할리우드의 여름영화는 아주 익숙하고 이해하기 편한 스타일을 유지하려 한다. 그래서 여름엔 속편이나 시리즈영화도 많이 개봉된다. 보통 독특한 혁신적인 영화는 여름 시즌에 잘 개봉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 배급사들은 독특하고 혁신적인 영화들을 통해서 큰 성공을 얻었다. ‘터널’도 아주 특별한 영화다. 어떤 면에서는 재난영화 같지만 할리우드 재난영화에 비해서 액션은 거의 없다. 주인공 정수(하정우)는 할리우드 영웅처럼 액션을 하기보다 그저 구조되기를 계속 기다리기만 한다. 그리고 영화 속에 풍자와 멜로드라마의 요소가 독특하게 어우러진다. 풍자와 멜로는 완전히 다른 감정으로, 한 영화 속에 같이 나오는 것은 보기 드물다. 하지만 김성훈 감독은 잘 어울리는 방법을 찾아냈다.

개인적으로 올 여름 영화 중 ‘인천상륙작전’이 가장 흥미롭지 못했다. 캐릭터들은 아주 익숙한 영웅과 악당이었고, 한국전쟁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이나 이해를 제시하지 못한다. 한국영화에서 리암 니슨 같은 할리우드스타 나오는 것이 조금 신선했지만 맥아더 장군역할에 대한 분석에 깊이가 다소 부족해 연기에 몰입하기 힘들었다.

‘덕혜옹주’의 포스터와 예고편을 처음 봤을 때, 이 영화도 그다지 새롭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조금 놀랐다. 어떤 면에서 ‘터널’과 ‘부산행’만큼 새롭게 느껴졌다. 스토리가 독창적이지는 않았지만, 영화 속 멜로가 새로웠다.과거에도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던 20세기 인물에 대한 영화가 있었다. ‘청연’이나 ‘역도산’ 같은 영화다. 하지만 ‘덕혜옹주’의 디테일은 이런 한국영화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있다. 어떻게 보면 21세기 한국영화의 멜로드라마라기 보다 1950년대 미국영화 멜로드라마에 더 가깝다. 허진호 감독의 (내가 아주 좋아하는) 초기작 ‘8월의 크리스마스’나 ‘봄날은 간다’는 한국영화 특유의 미묘한 멜로드라마를 보여준다. ‘덕혜옹주’는 이보다 좀 더 대중적이지만, 그래도 허진호 특유의 향기를 풍기고 있다.

한국 관객은 여름에는 진지하고 혁신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를 좋아하고 미국에서는 가벼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 대답 불가능한 질문인 것 같지만, 영화평론가 입장에서는 7월과 8월에 다양하고 흥미로운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날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달시 파켓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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