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이정모 칼럼] 참새와 비둘기

입력
2018.03.20 13:39
29면
0 0

몽골 민담 한 편. 초원에 살던 참새와 비둘기가 도시로 여행을 떠났다. 도시에 들어가기 전 숨을 고르기 위해 언덕 위에 있는 작은 집 창가에 앉았다. 이때 창문 틈으로 신음하며 우는 여인의 소리가 들렸다. 비둘기가 말했다. “이 여인을 돌봐야겠어.” 그러자 참새가 대답했다. “그럴 틈이 어딨어? 나는 얼른 도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봐야겠어.” 비둘기는 병든 여인을 돌보느라 남았고 참새는 도시 건물 꼭대기에 둥지를 틀고 세상 사람이야기를 들었다.

한 달 뒤 비둘기와 참새는 다시 초원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서로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비둘기는 병든 여인의 고통에 겨운 신음 소리를 잊지 못해 구구 하고 울고, 참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해하지도 못하는 소리를 지껄이면서 수다를 떠는 도시 사람들을 잊지 못해 재잘거리며 울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연으로 비둘기와 참새는 오늘날까지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함께 지낸다고 한다.

사람들은 새에게 호의적이다. 개가 소리를 내면 짖는다고 하지만 새가 소리를 내면 노래를 한다고 한다. 새는 아름답다. 평화의 상징이다. 그런데 머릿속에 어떤 새가 떠오르는가? 어제 어떤 새를 보았는가? 십중팔구는 비둘기와 참새일 것이다. 비둘기와 참새는 지금 지구에 살고 있는 약 1만 400종 조류 가운데 도시에 가장 잘 적응한 새다. 덕분에 가장 나쁜 새로 낙인 찍혔다.

상쾌한 새벽 출근길에 만난 비둘기의 모습은 어떠한가? 비둘기들은 취객의 토사물을 먹고 있든지 쓰레기봉투를 뜯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불쾌한 표정으로 거친 행동을 해도 비둘기는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이 피한다. 비둘기는 몸이 무거워서 피하기가 쉽지 않다. 오죽하면 ‘닭둘기’라는 별명도 얻었겠는가.

유럽에서는 길을 걷다가 새똥(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비둘기 똥)에 맞으면 “오늘 좋은 일이 생기려나 보다”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말과 표정이 정반대다. 오죽 싫으면 위로하는 말이 생겼겠는가.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비둘기는 더럽다. 목욕할 물과 모래도 없는 도시에 살기 때문이다. 실제로 비둘기 깃털에는 벼룩과 세균이 많다. 날아가면서 사람에게 떨어뜨려 알레르기나 피부염을 유발할 수도 있다. 환경부는 2009년부터 비둘기를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하여 잡아들이고 있다.

한때는 비둘기를 수입해서 풀어놓고 시청에서 공식적으로 키우기도 했지만 이젠 잡아들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비둘기는 여전히 많다. 서울에만 4~5만 마리가 살고 있다. 왜 그럴까? 원래 야생에서는 1년에 한두 번 번식하는데, 도시에는 먹이가 풍부해서 1년에 5~6회까지 번식하기 때문이다. 두세 달에 한 번씩 번식을 하는 셈이다. 여기서 잠깐! 그런데 비둘기 새끼를 본 적이 있는가? 그 많은 비둘기 새끼들은 어디에 있을까?

아이들 사이에서는 참새가 바로 비둘기 새끼라는 이야기가 한때 널리 퍼졌다. 커다란 비둘기 두 마리 주변에 작은 참새 수십 마리가 함께 앉아서 버려진 과자 부스러기를 쪼아 먹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참새와 비둘기는 먹이를 두고 경쟁하지 않는다. 먹을 게 워낙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비둘기 새끼를 보지 못한다는 데에 바로 아무리 잡아도 비둘기가 줄지 않는 이유가 있다. 비둘기는 종탑처럼 사람과 다른 동물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은밀한 곳에 둥지를 짓고 알을 낳아 새끼를 키운다. 그런데 우리는 새끼 비둘기뿐만 아니라 청소년 비둘기도 본 적이 없다. 비둘기 새끼는 다른 새에 비해서 둥지를 늦게 떠나기 때문이다. 30~40일 정도를 둥지에 머문다. 이때쯤 되면 도시에서 보는 여느 비둘기와 비슷한 크기다. 우리는 청소년 비둘기를 보면서도 알아채지 못한다. 양육기간이 길다는 것은 똑똑한 동물이라는 뜻이다.

사실 비둘기보다 참새가 도시에 더 잘 적응한 새다. 참새는 인간과 함께 퍼져서 극지방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 산다. 적응력과 번식력이 엄청나다. 내가 어릴 때 시골에서는 가을이 되면 아이들은 놀지 못하고 참새를 논에서 쫓아내야만 했는데 그 많은 참새를 당할 수가 없었다.

도시는 새가 살아가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다. 도시에 살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을 겁내지 않고 호기심을 보이며 여럿이 함께 모이기를 좋아하는 사회적인 성격이 필요하다. 이런 성격은 문제 해결에도 유리하다. 적당한 수의 무리가 모여야 어려운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다. 참새뿐만 아니라 도시에 적응한 까마귀, 찌르레기, 비둘기들은 도시라는 학습 기계 속에서 더 똑똑해졌다.

지구온난화로 지구 환경이 급속히 변하고 있다. 자연에 살고 있는 많은 종류의 새들은 점점 살아갈 곳을 잃어갈 것이다. 하지만 도전, 혁신, 대담함을 갖춘 도시의 똑똑한 새들은 인간만큼이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갈 것이다. 참새와 비둘기는 서로의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한다. 하지만 둘 다 인간 사회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들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건강하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할 때다. 우리도 참새와 비둘기를 이해해야 한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