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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의 변신… 한국적 恨의 새 버전?

입력
2015.03.12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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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의 최근 보도 자료들은 영감을 자극한다. 신선하고 도전적이다. 이를테면 ‘신한악(新韓樂)’이나 ‘휘모리 장단과 재즈의 스윙 템포가 만난다?’와 같은 제목에서는 발 빠른 감성이 체감된다. ‘국립’이라는 무게감을 덜어내고 동시대를 호흡하려는 의지가 읽힌다.

두툼한 방석이 덤으로 제공되는 풍류사랑방의 하드웨어는 알만한 사람들에게 익히 소문 나 있다. 국악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평균 잔향 시간은 0.8~1.2초로 서양 클래식의 1.4~1.5초보다 비교적 짧다. 국악 공연에서 마이크의 과도한 사용만큼 고통스러웠던 것은 소리가 뭉개지는 것이었다. 풍류사랑방은 음향의 울림이 길어져 앞서 들린 소리와 뒤이어 들리는, 소리의 혼란을 아예 설계 단계에서 차단시킨 것이다.

명료한 감상은 그래서 이 곳의 최우선 덕목이다. 공연장의 좌우측, 후면 벽면과 무대 천장에 흡음재를 보강해 불필요한 울림을 막은 것은 바로 그 잔향 시간을 최적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천장에 매달린 무대 반사판 뒷면에 흡음재를 보강해 반사판과 공연장 천장 사이의 울림을 억제하고, 반사판 자체에서 발생하는 공진음(共振音)을 잡아 국악 공연에 적합한 최적의 음향 환경을 조성하는 등의 기술적 조치가 따랐다.

“전통 사랑방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잘 살려낸 음향 공간을 구현한다”는 풍류사랑방의 목표는 국악인들에게만 적용되는 미덕은 아닐 터이다. 지난 3월 6일 풍류사랑방에서 펼쳐진 ‘금요공감’ 무대는 그 같은 감성과 의지가 실제 구현되는 현장이었다. 마이너 장르로 치부하기 십상인 우리 시대 국악이 일궈낼 수 있는 가능성의 세계였다. 월드 뮤직이란 용어가 음반 업계가 구매력을 자극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긴 하나, 어쨌든 음악계에 주어진 새 지평이라는 점에 주목한다면 재즈적 접근법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직결되는 것이다. 그 날의 무대가 입증한 바다.

민영치(왼쪽)와 하쿠에이 김.
민영치(왼쪽)와 하쿠에이 김.

너르고 두툼한 방석 위에 많은 사람들은 아예 온돌방에서 퍼질러 앉듯 양반 다리로 감상했다. ‘차이무’라는 극단의 이름을 잠깐 빌리자면, 풍류사랑방은 바로 그 차원 이동의 공간이다. 감상이라는 말은 거기서 너무나 타성적이다. 서양식의 극장이 아니라 흥이 오르면 마음 내키는 대로 추임새도 신선이 되어 우화등선하고 있었다, 는 것이 보다 사실에 부합되는 표현이리라. 물론 최대의 공신은 그 날의 주인공 민영치와 하쿠에이 김이다. 민영치는 오사카 출신으로 한국에서 국악을 전공한 장구ㆍ대금 주자이고, 하쿠에이는 재일 교포 재즈 피아니스트다. 이미 ‘프로젝트 산타’라는 이름의 프로젝트 그룹으로 활동하고 있던 그들에게 한국의 가야금 주자 주보라, 판소리ㆍ장고 주자 이봉근이 합류해 만든 무대였다.

우선 시기적으로 절묘했다. 일본의 구상유취한 작태가 세계의 조롱거리이자 경계 대상으로 떠오른 작금의 정황에서 자신의 뿌리에 대한 자긍심으로 고국 무대를 두 재일 교포의 행보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발언이었다. 나아가 두 사람이 한국의 국악인들과 펼친 무대는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는 말의 진정성을 새삼 상기시켰다.

장구를 연주하며 목청을 풀어보는 시간이 이를 테면 서곡(overture)였던 셈이다. 이봉근의 늘푼수 있는 발림이 좌중을 족히 휘어잡는다. 피아노는 불협화적 화성을 강력한 타건에 실어 보냈다, 소금으로 악기를 바꾼 이봉근을 가야금이 제창(unison)으로 따라들어 오고, 거기에 피아노가 합세한다. 청중의 단전이 슬슬 지펴져 온다. 가야금은 수시로 안족을 이동하며 경쾌한 선율을 들려준다, 어느덧 장내는 굿판이다. 일부는 추임새.

그 순간 피아노의 반전이 인상적이다.. 갑자기 리듬과 화성을 바꾼다. 일본의 세계적 재즈 피아니스트 사토 마사히코의 표현을 빌면 허를 찌르는 것이다. “얼씨구!” 소리가 절로 터진다. 가야금과 징은 변화의 물결에 몸을 맡기듯 순응한다. 연주자들은 스스로 리듬을 타며 즐기고 있었다. 피아노의 주재 아래 일사불란하게 진행된 연주는 갑자기 끝났다.

가야금 주자가 지은 ‘Reflection’ 연주에 앞서 이봉근이 나온다. “날씨가 좋아 다행입니다. 춥지도 않고 에~~~. 베이스, 드럼, 마이크 안 사용하는 공연은 처음이에요.” 말로는 “긴장하면서 연주한다” 했지만 아무래도 엄살이다. 주보라는 “하늘과 따로 떨어지고…”라며 노래를 읊조린다. 발라드 가요 같은 편안한 선율이다. 가야금과 목청이 일체를 이루는 가야금 병창이라기보다는 가야금이 기타처럼 노래를 화음으로 받쳐가는 형식이다. 국악하면 으레 떠올리는 흥이나 한의 정서가 아닌 현대인의 내면을 그리고 있었다.

가야금은 단순한 선율을 미니멀하게 진행하고 있었고, 피아노는 그 테마 그대로 이어받는가 싶더니 주제를 발전시켜 현란한 선율로 이어갔다. 이봉근은 한 손으로 징을 뮤트(mute)시킨 채 덩더꿍 장단을 펼친다. 그를 신호로 피아노는 몸통을 두드리며 그 장단을 따라 하다 이어 들어온 가야금과 완벽한 유니즌을 이뤘다. 빠른 즉흥으로 발전되더니 어느 순간 악기 소리 다 끊기고 가야금 주악자의 노래만 남는다. “상처 많은 이 땅 위에 아름답게 피어난 꽃…”청아하면서 강인하다. 국악적 페미니즘의 새 모습이라 해도 좋겠다.

피아노와 타악이 각각 펼치는 솔로가 무대의 백미였다. 피아노는 재즈적 즉흥을 펼쳤다. “격렬한 발라드다. 나는 어려서부터 재즈 한 덕에 ‘Take Five’의 테마를 갖고 여기 저기 붙였다 이었다,”하쿠에이 김은 자유롭게 조각 내는 데 익숙하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재즈의 스탠더드가 격렬히 해체되었다. 왼손의 강력한 타건에 허밍이 운을 맞췄다. 오른 손은 고음부에서 현란한 즉흥을 펼쳐 나가다 다시 ‘Take Five’로 돌아 왔다, 장고부터 시작한 타악 솔로는 오른 손의 채를 바꾸기도 하며 신들린 듯한 타악 연주를 펼쳤다. 장구가 얼마나 정교한 실내악적 악기인지를 새삼 발견하는 계기였다.

마지막으로 향하면서 무대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피아노의 현란한 분산 화음에 가야금이 발라드 선율로 가세했다. 이봉근의 귀곡성 같은 목청에 가야금은 나즈막한 즉흥 병창으로 화답했다. 장구가 펼치는 각종 리듬의 향연에 하쿠에이 김은 얼마 전 피아노 위에 결쳐둔 꽹과리로 장단을 맞췄다. 피아노와 꽹과리를 오가는 멀티 플레잉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볼거리 그 이상의 가능성을 시사한 대목이다. 신들린 듯한 장구 연주를 징과 꽹과리는 음과 양처럼 감쌌다. 일순 피아노가 발라드 선율로 바뀌자 나머지 악기는 각각 처량한 선율로 돌아섰다.

그러다 모든 연주가 일시에 멈췄다. 기이한 정적을 가야금이 깼다. 현을 뜯는 게 아니라 긁으며 마찰음을 냈다. 그를 신호로 나머지 악기들은 다시 제각각 어떤 선율을 연주해 갔다. 처음에는 프리 재즈 같던 그들의 연주에 국악적 시김새가 슬슬 강해졌다. 이어 가야금이 오른 손으로는 격렬한 아르페지오를 구사했고 왼손으로는 두 음을 겹음(double stop) 연주하며 처연한 구음을 매겼다. 그러자 귀곡성 같은 구음이 이봉근에게서 나왔다. 가야금과 피아노의 듀엣에 이봉근은 장구와 바라가 가세하며 장내는 혼돈의 절정으로 치달았다. 국악 장단은 그렇게 세계를 향해 날카로운 신호를 하나 쏘아 올린 것이다.

이들은 해방구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즐겨달라”는 무대의 말이 신호인 양 객석은 너도나도 핸드폰을 꺼내 그 별난 뮤지션들을, 서로를 촬영하느라 일대 혼돈 상황을 빚었다. 밤 새도록 놀아보자는 듯이.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지만 연주자들과 나눌 수 있었던 즉석 문답의 시간이 그나마 마음을 좀 눅였을까?

-결성은 언제? “5년 전 일본의 재즈 클럽에서 만났고, 아무런 사전 약속 없이 1시간을 놀았다.”(이후 이들은 ‘프로젝트 산타’라는 이름의 독특한 프로젝트 그룹 활동을 펼쳐 오고 있다. 이번 무대도 ‘신한악(新韓樂)’, 즉 새로운 한국 음악이라는 새로운 기치 아래 만들어진 프로젝트 밴드의 한마당이었던 셈이다)

-한국 음악과는? “(본 무대에서는)리허설과 전혀 다른 한국 음악을 접하고 ‘이게 바로 즉흥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재즈만 하던 민영치는 한국의 즉흥을 알고는 ‘바로 이거다’ 하고 느낀 것이다. 꽹과리의 소리를 듣는 순간 마음이 갔다.”

-앞으로 계획은?“내년에 오사카 도쿄 등 일본 18개 도시를 순회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연주는 잡혀 있는 게 없다”

‘우리나라’라는 단어가 유독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물론 이들의 조국, 한국을 가리키는 말이다. 오사카에서 테어난 민영치는 우연히 김덕수 사물놀이를 접하고는 1986년 국립국악고등학교로 유학, 서울대 국악과를 나왔다. 국악 실내악단 ‘슬기둥’과 타악 그룹 ‘푸리’ 활동, 정명화 김덕수 등과의 협연 경험은 그의 ‘신한악’에 튼실한 자양을 제공했다.

한편 한국인 부친과 한일 혼혈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하쿠에이 김은 5세부터 피아노를 연주, 일본의 젊은 재즈 피아니스트로 주목 받고 있다. 지난 2012년, 일제 강점기 덩시 조선 문화를 지키기 위해 애쓴 한일 청년들의 우정을 그린 영화 ‘백제의 사람, 조선의 흙이 되다’에서 작곡ㆍ연주로 참여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시대착오적 망동을 쏟아내는 곳에 살면서도 핏줄을 잊지 않았던 그들. 시간에 쫓기면서도 청중과의 기념 촬영은 후딱 챙겼다.

● 당시 무대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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