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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톺아보기] 오덕후

입력
2017.07.20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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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オタクㆍ 御宅)는 ‘한 분야에 지나치게 집중하거나 집착하는 사람’이다. 이 말은 1990년대 중반부터 외래 신어로 쓰였는데, 언제부턴가 이를 ‘오덕후’로 변형하여 쓰기도 한다. 그런데 ‘오덕후’가 한국 한자어의 독음으로 느껴졌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오덕후’의 원어가 ‘오타쿠’라는 사실과 상관없이, ‘오덕후’를 한자어로 생각하고 그에 맞춰 새말을 만들었다.

‘십덕후’는 ‘오덕후’들 중 ‘집중하는 분야가 많거나 집중의 정도가 높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뜻으로 보면 ‘십덕후’는 ‘오덕후’의 ‘오’를 ‘五’로 생각한 결과다. 그러니 ‘오덕후’ 중 경지가 대단히 높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백(百)덕후’, ‘천(千)덕후’, ‘만(萬)덕후’가 만들어지는 건 자연스럽다. ‘오, 십, 백, 천, 만’을 이렇게 이해한 사람들은 ‘오’와 ‘덕후’를 분리하여 생각한다. ‘덕후’를 ‘오덕후’의 줄임말보다는 ‘오타쿠’의 뜻을 담은 낱말로 여기며, 이를 새말을 만드는 어근으로 삼는 것이다.

‘덕후질’은 어근 ‘덕후’에 접사 ‘-질’이 결합한 말로, ‘덕후로서의 일이나 행동’을 뜻한다. 이를 줄여 ‘덕질’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이 널리 쓰이자 이젠 ‘덕’이 ‘덕후’의 뜻을 지닌 어근으로 인식되는 듯하다. 덕질을 시작한다는 ‘입덕(入-)’, 덕질을 그만 둔다는 ‘탈덕(脫-)’, 덕질을 잠시 쉰다는 ‘휴덕(休-)’ 등은 ‘덕’을 어근으로 한 말이다. ‘덕후’의 뜻이 ‘덕’에 담긴 것으로 생각하다 보니 ‘오덕후’를 ‘오덕’으로 줄여 쓰는 일도 생긴다. 어근에 대한 의식이 이렇게 변하다 보면 이 말들이 ‘오타쿠’에서 비롯되었다는 의식도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말은 이렇게 경계를 넘는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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