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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갈등리포트] "46년째 그린벨트에 내 땅 묶여” vs “녹색축 더는 사라져선 안 돼”

입력
2017.12.19 04:4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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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만 땅주인들 아우성

국내 그린벨트 면적 국토의 3.7%

부모님 땅 물려받은 직장인 자녀

농사 안 지으면 투기 의심자 몰려

“공익 앞세워 희생을 강요한 악법”

*환경단체는 정부에 불만

“정권 바뀔 때마다 곶감 빼 먹듯

조금씩 그린벨트 풀고 있어”

공공주택 건립 반대의견 분명히

국토부 “사회적 합의하에…” 신중

지난 5일 서울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전국개발제한구역국민협회 회원 1,000여명이 개발제한구역의지정및관리에관한특별조치법(그린벨트법) 철폐를 촉구하고 있다. 강주형기자
지난 5일 서울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전국개발제한구역국민협회 회원 1,000여명이 개발제한구역의지정및관리에관한특별조치법(그린벨트법) 철폐를 촉구하고 있다. 강주형기자

“46년째 그린벨트로 묶여 내 재산을 내 마음대로 못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경기 남양주시 그린벨트 내 농지 소유자 김모씨)

“현재의 그린벨트를 최대한 유지해 도심의 팽창을 억제하고 녹색 공간을 보장해야 합니다.” (김금호 한국내셔널트러스트 국장)

서울 강남을 위시해 ‘부동산 국가’로 불리는 우리나라가 땅 주인의 권리를 묶어두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국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면적은 3,854㎢(국토의 3.7%) 가량, 소유주는 약 80만명(전국개발제한구역국민협회 추산)에 이른다.

최근 정부가 수도권 인근 그린벨트를 일부 해제해 16만여 가구의 공공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밝히면서, 그린벨트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토지주들은 “참을 만큼 참았다”며 ‘즉시 전면 해제’를 요구하고 있고, 환경단체 등은 “주택문제는 ‘1인 다주택’이 문제이지 공공주택 확대로 풀 사안이 아니다”며 그린벨트 해제에 반대하고 있다.

46년 전 박정희 정권이 밀어부친 그린벨트

박정희 정부는 1971년 7월부터 1974년 4월까지 전국 5,397㎢(전 국토의 5.4%)를 그린벨트로 제한하고 건축 및 개발사업, 벌채, 토지분할 등의 행위를 금지했다. 대도시의 무분별한 확산을 제한, 도시가 서로 붙어 거대도시가 되는 연담화(連擔化) 현상을 막고 자연을 보존해 도시민의 생활환경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였다. 토지 용도에 따라 비닐하우스, 축사, 버섯 재배사 등 농업용 건축물을 지을 순 있지만 이마저도 건축 면적, 건축 재료 등 각종 규제가 뒤따른다. 그러다 보니 토지 가격은 제자리 걸음이다. 그린벨트 지정 당시 토지주들은 “어차피 농사 짓는 땅이고 앞으로도 농사를 지을 테니…” 혹은 “정부 방침이니까…”라며 대부분 큰 반발 없이 수긍했다. 그린벨트로 지정하면서도 보상은 없었다.

하지만 자녀 세대의 농업인 수가 크게 줄어들고 개발 욕구는 급팽창하면서 갈등이 커지기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 들어 그린벨트 해제 움직임이 본격화해 2000년 경기 시화, 창원에서 처음으로 해제 지역이 나왔다. 이후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국민임대주택, 보금자리주택 등 서민주택 공급이나 경기활성화 등의 명목으로 조금씩 풀렸다. 현재 남은 면적은 3,854㎢로 전 국토의 3.7% 정도다.

지금이라도 풀어달라는 소유주들

다산 신도시 800여m 앞, 경기 남양주시 그린벨트 일대 땅 4만여㎡를 소유한 김모(62)씨는 배 농사를 짓던 부모님이 2008년 세상을 떠나자, 직장을 다니면서 주말에 짬을 내 농사를 짓는 ‘양복 입은 농민’이 됐다. 김씨는 “농사를 짓지 않으면 배나무는 자연 훼손되게 마련이고 해당 관청으로부터 ‘그린벨트 내 농지 소유자면서 농사를 짓지 않는 투기 의심자’로 분류돼 경고장이 날아온다”면서 “멀쩡한 사람을 범법자로 내모는 잘못된 법은 이제 철폐돼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사를 짓지 않으면 그린벨트 해제를 노리고 투기를 하는 사람으로 몰린다는 것이다.

지난 5일 서울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그린벨트 토지주 모임인 전국개발제한구역국민협회 회원 1,000여명이 모여 개발제한구역의지정및관리에관한특별조치법(그린벨트법)을 실효성 잃은 악법으로 규정하고, 관계법 철폐 촉구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그린벨트를 해제해도 환경 보존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서 제주도 사례를 근거로 들었다. 2001년 그린벨트가 해제된 제주는 생물권 보전지역지정(2002년), 세계자연문화유산 등재(2007년), 세계지질공원 인증(2010년)까지 ‘유네스코 3관왕’을 달성하는 등 오히려 환경의 보고로 거듭났다는 것이다. 곽연호 회장은 “정부가 ‘공익’을 앞세워 힘없는 주민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라며 “이미 반세기가 지나 실효성을 잃은 반민주적 악법을 철폐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환경단체들은 조금씩 물러서는 정부에 불만

일부 환경보호단체는 그린벨트 제도가 사유재산을 침해하고 있음은 인정하면서도 그린벨트 해제로 인한 환경 훼손 가능성에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성건 부산그린트러스트 사무처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곶감 빼 먹듯 조금씩 그린벨트를 풀고 있다”라며 “도심지의 환경을 지탱하는 녹색축들이 더 이상 사라져선 안 된다”라고 했다.

특히 해제 지역에 공공주택을 짓는데 대해서는 반대 의견을 분명히 하고 있다. 김금호 한국내셔널트러스트 국장은 “지금의 주택 문제가 수요ㆍ공급의 문제인지, 혹은 ‘1인 다주택’ 같은 소유형태의 문제인지 냉정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필요에 따른 해제를 하더라도 그린벨트제 존치 필요성은 여전한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수도권에 그린벨트 해체 총량제가 적용되는 만큼 법적 허용 범위 내에서 해제하고 있다”이라며 “사회적 합의의 틀 안에서 해제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해법, 고민해봅시다]

글ㆍ사진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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