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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담배회사, 미국서 한 고백 우리 국민에게도!

입력
2017.12.10 13:33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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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미국에서는 인류역사에 기록될 중요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한 곳의 언론사만 단신으로 다루었을 뿐 우리 국민은 이 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해마다 가족, 친구, 동료 5만8,000명을 담배 때문에 잃고 있는 우리 국민은 담배회사들이 이날 미국 주요 언론매체를 통해 지금까지의 거짓말을 시인하고 진실을 고백하는 역사적인 사건을 모르고 지나간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모든 국민이 가입되어 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 2014년부터 담배회사를 상대로 흡연으로 기인된 질병 치료비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미국 내 담배회사의 진실고백이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런 이슈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 국민이라면 담배에 대한 진실을 접할 수 있고, 한국 국민이라면 이 진실을 알지 못하는 상황이 된 지금,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 국회, 그리고 국민의 귀와 눈이 되어야 하는 언론은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왜 담배회사들이 미국에서 진실을 고백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일까. 성경 속 돌아온 탕자처럼 과거의 일을 반성하고 진실된 모습으로 미국 국민 앞에 선 것일까. 아니다. 담배회사들의 이러한 행동은 결코 자발적인 것이 아니다. 법원의 명령이라는 강력한 조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미국 연방법원이 ‘부정부패조직범죄방지법’ 위반으로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2006년 8월 해당 소송을 담당했던 케슬러 판사는 담배회사가 지난 50년간 ‘조직적’으로 흡연의 폐해를 속이고, 소비자에게 진실이 아닌 거짓을 알리는 불법행위를 해 온 것에 대한 조치로 그동안 그들이 속여 왔던 진실을 미국 국민에게 밝히도록 명령한 것이었다. 미국 연방법원이 담배회사들의 조직적 불법행위를 밝히려 한 강력한 의지, 그리고 이 소송에 대한 국민적 지지와 관심이 역사적 판결을 이끌어 낸 것이다.

이 판결을 통해 적어도 미국 국민이라면 다음과 같은 담배회사들의 고백을 보거나 읽게 되었다. 담배회사들은 미국 내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미국에서 매년 발생하는 살인, 에이즈, 자살, 약물중독, 자동차 사고, 음주로 인한 사망자 수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는 것, 그리고 담배 속 니코틴은 고도의 중독성 약물이라는 것을 고백하였다. 또한, 니코틴 중독으로 인해 금연은 매우 어렵다는 것, 미국 필립모리스를 비롯한 일부 담배회사들은 의도적으로 담배의 중독성을 가중시키기 위해 담배를 조작했다는 것, 그리고 니코틴의 인체 내 흡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가향물질 및 암모니아 등을 첨가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저타르, 라이트 담배제품들은 결코 일반 담배제품에 비해 흡연자가 흡입하는 타르와 니코틴 양을 줄여주지 않는다는 것 역시 고백하게 되었다.

담배회사들의 미국 내 고백들이 많은 국민에게 알려지지 못했다는 것도 안타깝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담배회사들이 미국 국민 앞에 고백한 진실 속 내용들과 우리나라에서 3년째 진행 중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담배소송 쟁점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단 소송의 재판부는 미국 연방법원의 판결과 함께 이번 담배회사들의 진실고백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모든 국민이 공단의 담배소송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동일한 진실을 두고 담배회사가 미국에서는 진실을, 한국에서는 거짓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두 국가 간 법체계가 달라서, 혹은 소송 당사자가 달라서가 아니라 정부, 국회, 언론, 국민이 담배소송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담배소송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진실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요소다. 이 일에 우리의 관심이 부족하다면, 결국 우리는 또 한번 담배회사에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 죽음의 제품인 담배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는 담배소송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필요하다.

이성규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ㆍ한국금연운동협의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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