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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총수 지정 후폭풍… 30년 재벌규제에 변화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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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총수 지정 후폭풍… 30년 재벌규제에 변화 목소리

입력
2017.09.0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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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지정한 대기업집단제도

자산 5조원 이상은 공시대상기업

네이버는 지배적 영향 이유 지정

공정위 일감 몰아주기 규제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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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 IT기업에 적용 한계

IT산업 수평적 플랫폼 형태 협력

제조업 지배구조와 크게 달라

“과거 틀, 원점서 검토해야” 여론

이해진(사진) 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이 창업한 인터넷기업 네이버가 최근 대기업집단으로, 이 전 의장은 총수로 각각 지정되면서 30년 전 마련된 기업 지배구조 규제 제도의 시의성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이해진(사진) 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이 창업한 인터넷기업 네이버가 최근 대기업집단으로, 이 전 의장은 총수로 각각 지정되면서 30년 전 마련된 기업 지배구조 규제 제도의 시의성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이해진 전 네이버 이사회 의장(현 글로벌 투자책임자)이 논란 속에 네이버와 동일인(총수)으로 지정됐다. 올해 대기업집단에 새로 포함된 네이버는 “사회적 의무를 다하고 법을 준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총수 지정에 대해선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를 놓고 경쟁법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오늘날의 기업 지배구조에 30년 된 재벌규제를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한 점이 적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감시와 견제 중요하나, 적합한 규제로

7일 공정거래위원회와 재계에 따르면 재벌의 순환ㆍ상호출자, 일감 몰아주기 등을 막기 위해 1987년 처음 지정한 대기업집단 제도가 올해 자산총액 5조원에서 10조원 이상 기업으로 그 기준이 높아졌다. 이와 함께 10조원 이상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5조원 이상은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구분했다. 이에 따라 자산 5조원이 넘은 네이버는 새로 공시대상기업집단이 됐고 총수도 지정됐다. 이에 따라 공시의무 강화와 함께 공정위 일감 몰아주기 규제도 받는다.

대기업집단 제도는 그 시작부터 재벌을 겨냥한 규제다. 하지만 네이버는 기업 성장 과정과 지배구조가 재벌과 큰 차이를 보여 제도 적용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경쟁법 학계에서는 ‘재벌’을 정의할 때 대체로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통해 성장 ▦총수 일가가 실질적 지배 ▦지분 승계 등 세 가지 기준을 거론한다. 그런데 1999년 설립된 네이버는 특혜 없이 시장의 경쟁을 통해 기업을 키웠고, 지분 승계가 이뤄지지 않아 일단 두 가지 기준은 해당되지 않는다. 또 네이버 지분은 이 전 의장(4.31%)과 임원 등 특수관계인을 합쳐도 4.49%에 그쳐 일방적으로 지배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구조다.

현 공정거래법 시행령은 ▦의결가능 주식 총수의 100분의 30 이상을 소유했거나 ▦지배적인 영향력을 가진 인물을 그 기업의 동일인(총수)로 규정하고 있다. 이 전 의장의 경우 총수로 지정되는 지분 기준은 부합하지 않아, 관건은 지배적 영향력이 있느냐이다. 네이버 측은 “순환출자가 없는 투명한 지배구조와 전문경영인과 이사회 중심 경영체계가 확립됐다”고 지배적 영향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공정위는 “유의미한 지분을 보유했고, 사내이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사외이사 선임에 영향력 행사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총수 지정 이유를 밝혔다.

경쟁법 권위자인 이봉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적으로 네이버가 전통적 기업집단과는 지배구조가 다른 것은 맞기 때문에, 영향력 부분에 대해서 법 해석을 두고 다툴 여지가 있어 보인다”고 밝혔다.

정보통신(IT)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 입장에서는 네이버를 총수 없는 기업으로 인정하면 대기업집단 지정 관련 법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해외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네이버 입장에서는 재벌과 총수란 단어가 풍기는 부정적인 뉘앙스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규제의 틀 다시 돌아보는 계기로

올해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된 57곳 중 총수가 없는 기업집단은 포스코 농협 KT 등 8개뿐이다. 이들은 대부분 과거 공기업이 민영화된 특수한 경우다. 하지만 순환출자 없이 38개 계열사의 지분을 거의 100% 보유한 네이버 같은 기업도 이전에는 없었다. 게다가 IT 기업의 투자관행을 볼 때 향후 네이버 같은 지분구조를 가진 기업집단이 속속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집단 지정제도가 생긴 1980년대 당시 주류였던 기업들은 총수가 복잡한 상호ㆍ순환출자를 통해 지배권을 유지 강화하고, 금융권 대출로 투자에 나섰지만, 21세기 들어서 등장한 기업들은 직접 금융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투자자들이 회사 지분을 소유한다.

네이버와 비슷한 시기 창업해 글로벌 IT 기업으로 성장한 구글 알리바바 등도 창업자 지분은 10%가 안 된다. 16% 정도 보유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정도가 예외다. 상속세를 감안하면 2세에게 지분 승계를 통한 경영권 이전은 생각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IT산업은 원청-하청 개념이 희박하고 수평적 플랫폼 위주로 협력한다. 지배구조나 의사결정 방식 등이 20세기 제조업 기업들과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가천대 법학과 최경진 교수는 “기업의 사회적 의무 이행과 불공정 행위 규제의 중요성엔 이견이 있을 수 없지만 기존 재벌과 다른 특성을 가진 기업들이 출현하고 있다면 그에 맞춰 제도 변화를 고민해야 하고 필요하면 법도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봉의 교수는 “자산총액 기준은 달라졌어도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는 과거의 틀이기 때문에 원점에서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네이버가 새로 출현하는 인터넷 기업의 맏형으로서 낡은 제도를 합리적으로 재정비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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