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주 기자

등록 : 2017.02.17 16:24
수정 : 2017.02.19 22:34

‘대선주자 국민면접’에 국민이 볼멘 이유 4

등록 : 2017.02.17 16:24
수정 : 2017.02.19 22:34

“압박면접 통해 국민 눈높이로 확인” 불구

장난스런 진행에 검증은 뒷전… 비난 목소리

조기대선 가능성 높은데 ‘시간낭비’ 우려

SBS '대선주자 국민면접'

“국민 여러분이 면접관입니다.” SBS가 시사·교양프로그램 ‘대선주자 국민면접(이하 국민면접)’을 홍보하며 내세운 문구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 12일부터 16일까지 총 5부작으로 문재인 안희정 이재명 안철수 유승민(출연 순서로 나열) 등 5명의 유력 대선주자들을 “압박면접”해 그들의 “인성, 가치관, 역량을 국민의 눈높이에서 직접 확인”하겠다고 하며 눈길을 끌었다. 어렵고 지루한 토론 대신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면접하듯 국민들이 대선주자를 면접한다는 콘셉트가 신선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후보자 검증 실패로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만큼, 후보자를 국민이 직접 검증해보자는 이 프로그램은 단연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취지는 좋았으나 결과는 부실했다. 방송을 본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방송은 프로그램의 취지를 살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 프로그램이 예능인지, 시사·교양 프로그램인지 헷갈리게 만들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무너뜨렸다.

SBS '대선주자 국민면접' 캡처화면

① “고스톱 안치나”가 국민의 질문?

“화려한 성공신화나 장밋빛 공약, 말뿐인 공약에 국민들은 지쳤고 더 이상 속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SBS는 회사에서 신입사원 채용할 때와 똑같이 해봤습니다. 대통령 지원자들의 이력을 꼼꼼히 살피고 심층 면접도 해볼 생각입니다.”

이재명 후보자 편에서 진행자인 박선영 아나운서가 한 말이다. 하지만 박 아나운서의 말과 달리 ‘국민면접’은 도리어 후보자들의 성공신화를 더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만들었을 뿐, 장밋빛 공약에 대해선 묻지 않았고, 말뿐인 공약은 지적하지 않았다.

국민을 면접관으로 모시겠다며 질문도 받았지만, 방송에서는 정작 이를 외면한 채 장난스러운 말투와 농담 따먹기 식의 진행으로 시청자들을 실망시켰다. 가령 문재인 후보에게 “게임은 안 하세요?” “고스톱 안치시고?”라고 묻거나 안철수 후보에게 “부부싸움 할 때는 어떻게 하세요” “부인을 존경한다는 사람 보기 힘든데. 아부꾼인가” 등의 질문을 하는 식이다. 또 이재명 후보에겐 “코디는 누가 해줬냐”고 묻고, 안희정 후보의 복근사진을 보여주며 복근 얘기를 하는 등 후보자 검증과는 완전히 동 떨어진 질문을 이어갔다.

SBS '대선주자 국민면접' 캡처화면

② “패널선정 기준이 뭔가요”… 편집 논란도

패널선정에 대한 지적도 쏟아졌다. ‘국민면접’에는 강신주(철학자), 김진명(소설가), 허지웅(평론가), 진중권(교수), 전여옥(작가·전 국회의원) 등 5명이 패널로 참여했다. 그러나 이들의 면면을 보면 후보자와 후보자 공약을 구체적으로 파고들어 검증할 수 있는 소위 말하는 ‘전문가’는 없다. “경제 안보 복지 노동 등의 정책을 세부적으로 파고들어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중 누가 있나. 패널 선정 기준을 도대체 알 수가 없다”라는 한탄이 나오는 이유다.

패널들의 태도도 도마에 올랐다. 문재인 후보 편에서 후보자의 위기대처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국제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가 지하철 1호선에 있는 국민 4,000여명을 인질로 잡고 1억 달러를 요구하는 상황’이 제시됐다. 이에 문 후보가 잠시 고심하자 패널들이 “금괴가 200톤이나 있는데 1억 달러쯤이야. 사비로 내면 되지” “내 돈으로 주겠다” 등의 장난스러운 태도를 보여 지적을 받았다. 또 “(문재인 후보가)비주얼은 제일 나은 것 같아요” “비주얼은 안희정이 좀 더 낫지 않나요” 등으로 후보자 검증과는 동떨어진 대화를 나눠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SBS '대선주자 국민면접' 캡처화면

잘못된 편집으로 특정 후보에게만 유독 날카로운 질문이 집중되는 것처럼 방송되며 논란을 빚기도 했다. 한 온라인커뮤니티에 “편집이 문제인가요? 정치적 공세인가요? 부끄럽습니다” “솔직히 너무 깠어요(비판했어요). 문재인 때랑 안희정 때랑 너무 다르네요”라는 지적이 올라오자 전여옥 작가는 곧장 “절대로 정치적 공세가 아니다”라며 적극 해명하기도 했다. 전 작가는 “문재인 후보에겐 동의대 변호와 이석기 사면, 안희정 후보에게도 전세금 1억6,000만원 논란 등을 골고루 질문했다”라며 “편집문제가 있었고, 다른 분에 대해 내가 했던 날카로운 질문들이 상당수 삭제됐다”라고 주장했다.

후보자의 안보관, 비전 등을 묻는 질문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애초 방송이 홍보했던 ‘압박면접’식이 아니라 두루뭉술한 문답을 주고 받은 게 전부다. 이에 프로그램 게시판에는 “내가 한 질문을 대신 해주지도 않을 거면서 질문은 왜 받은 건지 모르겠어요. 너무 실망입니다”(아이디 사람) “지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국민은 좀 더 대선후보들의 도덕성과 정책 등 날카로운 검증을 원한다”(아아디 hearong3) “패널들이 너무 장난스러워서 짜증났어요. 출연한 패널들의 기준은 뭔가요? 그래도 대권후보를 검증한다던 패널들이 좀 경박스럽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아이디 푸른하늘) 등의 글이 빗발쳤다.

SBS '대선주자 국민면접' 캡처화면

③ “노잼이면 어떡해요?” 진행자도 헷갈린 정체성

“단점이 노잼(재미가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라고…”

“다들 그렇게 말하니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 저희 방송은 어떻게 하죠?”

문재인 후보가 자신의 이력서에 ‘노잼’을 단점으로 쓰고 이를 인정하자 박선영 아나운서가 한 말이다. 진행자조차 이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한 예능인지, 시사·교양 프로그램인지 그 정체성을 헷갈리고 있는 것이다. ‘국민면접’은 SBS 홈페이지에서 ‘시사·교양’ 프로그램으로 분류돼 있다. 하지만 문 후보의 ‘쌍시옷’ 발음을 지적하며 ‘쌀’ ‘싸움’ 등을 따라 해보라고 하거나, 문 후보가 답변 도중 말실수로 ‘문재명’이라 한 것을 가지고 ‘문재인+이재명=문재명?’ ‘문재명으로 대동단결?’ 등의 우스운 화면을 만들어내며 프로그램을 예능화했다.

이에 대해 시사평론가 유창선씨는 자신의 페이스북 에서 “미디어들의 후보 검증이 뭔가 쇼처럼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우려된다”라며 “대통령 제대로 뽑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온 국민이 몸으로 깨달은 지금은 (대선주자를) 쇼 하듯이 검증할 때가 아니다. 전혀 화기애애하지 않은 빡센(강도 높은) 검증들을 보고 싶다”라고 지적했다.

SBS '대선주자 국민면접' 캡처화면

④ “자기자랑 자리네. 홍보영상이구만”

‘국민면접’이 한 회, 한 회 방송되면서 시청자들은 “왠지 답답해서 채널을 돌리고 싶은 충동이 느껴진다”(트위터 아이디 joonyoung, choi) “대선주자 면접이 아니라 그간 기사화된 시사나 비난의 나쁜 부분 소명하고, 평가 안 된 자기자랑 자리네. 홍보영상이구만”(트위터 아이디 sanyacho211) 등의 반응을 쏟아냈다. 후보자들에 대한 검증이나 그들이 내세우는 공약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방안, 재원마련 방안에 대해서는 거의 논하지 않아 “면접관들의 질문이 과연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것이 맞는지”(아이디 질문들)와 같은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물론 일각에선 안철수 후보편을 보고 “감동적이었다”고 하거나 이재명 후보 편을 보고 “어제 이재명은 온라인상의 사람과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이중인격 같은 건가? 아니면 길게 풀어쓰기 힘든 온라인이라 오해를 산건가?” 등으로 후보자들에게서 새로운 면을 봐 좋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당초 ‘압박면접을 통해 후보자와 그들의 장밋빛 공약을 낱낱이 검증해보자’라는 프로그램 취지를 고려하면 실제 방송 내용은 미흡한 점이 많았다. 이번 대선은 여느 때와 달리 후보자를 검증할 시간이 촉박하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할 경우, 탄핵 선고 다음날부터 60일 이내에 대선을 실시해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후보자와 그들의 공약을 제대로 검증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나오는 이유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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