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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글로벌 거버넌스의 거짓 약속

입력
2016.08.2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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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거버넌스는 이 시대 엘리트들에게 주문(呪文)과도 같다. 그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기술 혁명과 시장 자유화에 따라 상품과 서비스, 자본, 정보가 국경을 넘어 밀려들다 보니 전 세계 국가들이 과도하게 연결이 돼버려, 어떤 나라도 자국의 경제적 문제를 순전히 자력으로만 해결할 수 없게 됐다고. 그렇기에 우리에겐 전 지구적인 규칙과 합의, 국제기구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오늘날 이러한 주장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어서 여기에 반기를 드는 건 천동설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기후변화나 유행병처럼 진정으로 지구 전체적인 문제에는 그런 게 필요하겠지만, 대부분의 경제 문제에 관해서라면 그렇지 않다. 흔히 세계 경제가 ‘인류의 공공재’(global commons)라고들 하는데, 실은 그렇지 않다. 글로벌 거버넌스가 세계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내는 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오히려 해를 끼칠 때도 있다.

기후변화를 예로 들어보자. 기후변화 문제에 지구적 차원의 협력이 필요한 건 지구에 단 하나의 기후 시스템밖에 없기 때문이다. 온실가스가 나오는 지역이 바뀐다고 해서 기후변화 문제에 별 차이가 생기진 않는다. 한 국가만 자국 내 탄소배출량을 제한한다면, 자국에 미치는 긍정 효과는 없거나 극히 미미할 뿐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좋은 경제 정책(개방정책을 포함해)이란 자국 경제에 가장 먼저 가장 큰 이익을 주고, 나쁜 경제 정책은 자국에 가장 먼저, 가장 큰 피해를 준다. 개별 국가의 경제적 번영을 결정하는 것은 대체로 자국 내에서 벌어지는 일이지 해외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만약 경제적 개방성이 바람직하다면, 그런 정책이 그 나라 국익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지 다른 나라에 이익을 주기 때문은 아니다. 세계 전반의 경제적 안정성에 기여하는 개방성과 다른 좋은 정책들은 이기주의에 기반을 두지 지구촌 정신에 기반을 두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경제적 이익은 종종 다른 나라의 희생을 통해 얻는다. 이른바 근린궁핍화정책(인접국의 희생 위에 자국의 번영이나 경기회복을 도모하려는 국제경제정책)이다. 석유 같은 천연자원을 지배적으로 공급하는 국가가 가격을 끌어올리기 위해 세계 시장에 공급을 제한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수출국의 이익은 곧 다른 모든 나라의 손해다.

큰 나라가 수입품에 제한을 둠으로써 무역 조건을 조정하는 수단인 ‘최적관세’(optimum tariffs)는 그와 비슷한 메커니즘으로 정당화된다. 그런 실제 사례가 있으므로 최적관세 정책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국제적 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정책입안자들이 골몰하는 대다수의 세계 무역ㆍ금융 이슈들은 이런 종류가 아니다. 유럽의 농업보조금과 유전자 변형 생물(GMO) 금지, 미국의 반덤핑 규정 남발, 개발도상국들의 부적절한 투자자 권리 보호를 생각해보라. 이것들이야말로 본질에서 근린궁핍화정책들이다. 그런 것들이 다른 나라들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데도 국가들은 이 같은 정책의 경제적 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고수한다.

농업보조금이 좋은 예다. 경제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농업 보조금이 비효율적이라는 데 동의한다. 유럽 농부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다른 모든 유럽인은 비싼 가격이나 높은 세금 등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런 정책은 다른 나라들로부터 이익을 얻기 위한 정책이 아니다. 분배, 행정, 공중보건같이 한 국가 내에서 더 많은 재원을 배분 받기 위해 경쟁하는 여러 요소가 경제 전반의 동기를 결정하는 것이다.

경기 순환을 악화시키고 재무 상태를 불안정하게 하는 허술한 은행 규제나 거시경제학 정책도 이와 마찬가지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보여줬듯이 국경을 넘어설 정도의 영향력은 매우 심각하다. 당시 미국 규제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은 다른 나라가 대가를 치르는 사이 미국만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미국은 경제적으로 가장 크게 홍역을 치른 나라 중 하나였다.

현재 정책 문제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점은 선진 민주주의 국가 정부들이 확대되는 불평등을 심각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역시 문제의 근원은 국내 정치다. 금융과 산업 엘리트들은 정책입안 과정을 틀어쥐면서 재분배 정책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글로벌 세금 회피처들은 분명히 근린궁핍화정책의 한 예다. 하지만 미국이나 EU 회원국들처럼 강국들은 그들이 진정 바랐다면 탈세를 막기 위해 더 많은 조치를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최근 불거진 문제들은 세계적 협력 부족과는 거의 상관이 없다. 그 문제들은 원래부터 국가 내부적이어서 국제기구가 만든 규정으로 해결할 순 없다. 게다가 국제기구가 만든 규정은 국내 정책에서도 걸림돌이 되는 기득권 때문에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글로벌 거버넌스란 말은 기득권 세력이 국제적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과 동의어처럼 오용되고 있다. 그래서 글로벌 거버넌스가 종종 세계화를 촉진하기 위해 국내 경제적 정책을 꿰맞추는 거로 귀결된다.

앞으로 글로벌 거버넌스에 대한 대안 의제는 각 국가에서 민주적 기능들이 개선될 방안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런 정책의 결과가 어때야 할지 예단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글로벌 거버넌스가 세계화를 촉진하는 모델이라기보다는 민주주의를 증진하는 모델이 될 것이다.

국내 정책의 품질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세계적 모범과 절차적 요건을 만드는 것이 좋을 듯하다. 투명성, 폭넓은 대표성, 책임, 국내 법적 절차에 과학적이거나 경제적 증거 제시 등에 관한 세계적 규율을 만드는 것이 그런 예들이다. 국제기구들은 이미 어느 정도 이런 규율을 채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세계무역기구(WTO)의 위생검역조치(SPS)는 보건 문제가 수입품과 관련해 문제가 될 때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도록 명시적으로 요구한다. 이런 종류의 절차 관련 규정은 훨씬 더 광범위하게 사용될 수 있고, 국내 의사결정을 개선하는 데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도록 사용될 수 있다.

반덤핑규제 역시 수입 관세에 의해 불리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소비자와 생산자의 이해관계가 수입 절차에 참여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개선될 수 있다. 보조금 규정은 정태적ㆍ동태적 효율성의 잠재적 결과까지 고려하는 경제적 비용 편익 분석을 요구함으로써 개선될 수 있다.

국내 협의에 실패해 생긴 문제들은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개선해야만 해결할 수 있다. 글로벌 거버넌스가 여기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매우 작지만, 국내 의사결정에 제약을 가하기보다 그것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출 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글로벌 거버넌스는 공공의 협의를 무시하고 깎아내리고, 테크노크라트(전문지식을 가진 기술관료)식 해법만 현실화하는 데에만 도움을 줄 것이다.

대니 로드릭 미국 하버드 케네디공공정책대학원 교수ㆍ경제학

번역=고경석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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