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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삶이 있는 풍경] 내 동생 광식이

입력
2016.01.12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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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더욱 남들 웃는 ‘꼴’이 그리워진다.

가만히 주변을 둘러봐도 시무룩한 얼굴들만 가득할 뿐 간혹 들리는 웃음소리도 그리 신이 난 모양새들은 아닌 듯하다. 시대를 거슬러 돌아가는 나라 꼴 탓인지 소중한 일상의 기쁨을 잃은 이들을 위한 여러 몸짓들에도 한숨 가득한 헛웃음이 깃들고, 신년 소망을 빌던 이들의 들뜬 기도소리도 부쩍 잦아들었다. 남들 웃는 얼굴 보는 것을 나름의 즐거움으로 여기는 지라 해를 넘겨도 속 시원한 해소거리 하나 없는 현실이 더욱 답답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배꼽 잡을 일 없는 세상살이라니, 정녕 그렇기만 하다면 얼마나 가혹한 인생이겠는가.

이런 때에 문득 ‘광식이’의 너털웃음 가득한 얼굴이 보고 싶어진다.

88 서울 장애인올림픽 보치아 부문 단체전 은메달리스트인 그와의 인연은 거의 20년 가까이 된다. 처음 만난 날부터 한 살 더 나이가 많은 나를 ‘형님’으로 삼아버린 광식이로 인해 ‘서열’이 정해진 뒤로 일 년에 한두 번쯤은 어김없이 만나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이다.

“행님요! 내일모레 서울 갈 낀데 안 바쁘믄 함 보입시더! 술 한잔 해야지예~!”

지난 연말에도 어김없이 걸려온 그의 전화에 낮술까지 걸치면서 오랜만의 해후를 즐겼다. 그날 또한 웃고 있는 그의 얼굴에 유난히 시선이 머물렀다. 한번 웃을 때마다 거의 턱이 빠질 정도로 입을 벌리면서 온 얼굴 켜켜이 주름 골이 쌓이는 얼굴을 보면 우선 기분부터 좋아진다. 머리에 꽃을 꽂은 하회탈 같은 모습이랄까. 신이 난 듯 웃어대는 그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가만히 있던 나조차 기어이 웃음꽃을 터뜨리게 된다. 단지 그것만이 아니다. 자칭 의리와 정도에 죽고 사는 ‘갱상도’ 남자인 광식이의 웃음에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힘이 있다. 고정관념을 흔들어 의식 바깥으로 내던지게 하는 유쾌한 기운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허공에 흩어지는 헛스런 말장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아마도 산전수전 다 겪으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영혼을 울리는 힘이 그의 하회탈 웃음 안에 배어있기 때문이리라.

이는 단지 그가 휠체어가 없으면 거동이 불가능한 지체장애 1급이면서도 자신의 몸을 벗어나야 할 ‘극복’의 굴레로 보지 않는 그의 평소 소신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태생적으로 타고난 신체장애를 자신을 향한 동정과 연민의 기제로 다른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을 거부하고 반발한다. 그는 무척 부지런하다. 가야 할 곳이 있으면 새벽같이 길을 나서고 관심 있는 분야가 생기면 수소문을 해서 배우고 익히기를 즐겨왔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노점상을 하거나 떡볶이 장사를 해서 번 돈으로 구입을 했고 ‘소싯’적에는 자원해서 농활에 나서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사진 찍기에 빠져 카메라를 매고 다니며 거리풍경 담는 일을 즐기고 있기도 하다. 광식이는 그렇게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아가는 모든 이들과 다름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개척하고 다듬어가는 보통의 평범한 주인공들 중 한 사람이다.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와 공존의 사회적 기제라는 것을 알게 해준 광식이가 오래 전 특유의 환한 웃음으로 ‘형님’인 내게 남긴 말이 떠오른다.

“행님! 지가 보기에는 비장애인이 더 장애인 같을 때가 많은 기라예. 사지가 다 멀쩡하믄 모합니꺼? 생각이 똑바로 박혀야 하는 기지예!”

새해엔 생각 똑바로 박힌 이들의 기분 좋은 ‘웃음꼴’이나 실컷 볼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달팽이사진골방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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