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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성 "현실 모르는 한국 좌파, 게으르고 무책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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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성 "현실 모르는 한국 좌파, 게으르고 무책임해"

입력
2014.12.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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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적대적M&A 자작극'엔 우파의 왜곡된 논리

외국논쟁을 한국에 끼워맞추는 좌파도 무책임해

문제는 사실 정치… 기득권 정당 용인해선 안돼

'강북우파'의 현실인식 필요… 계층·기억투표 해야

한국출판문화상 '한국 자본주의' 저자 장하성 고려대 교수.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한국출판문화상 '한국 자본주의' 저자 장하성 고려대 교수.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소액주주 운동’으로 재벌 개혁을 선도한 장하성(61) 고려대 교수가 이번엔 ‘정의로운 한국 자본주의 논쟁’에 불을 지폈다. 올해 그가 출간한 첫 번째 책인 ‘한국 자본주의’(헤이북스)를 통해서다.

자본주의를 그것도 ‘한국 자본주의’를 다룬 경제학 논쟁서인데도 이 책은 재미있다. 그의 스토리텔링과 속시원한 비판, 촘촘한 ‘팩트’ 구성은 책의 큰 장점이다.

글 잘 쓰는 사람이 말도 잘한다고 했던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직접 만나본 장 교수는 달변가였다. 글 만큼 말도 솔직하고 분명했다.

한국출판문화상 저술(학술) 부문 수상자로서 23일 오후 그를 인터뷰했다. 오후 3시에 시작한 대화가 2시간을 넘겨서야 끝났다. 지면에 실린 짧은 기사 외의 전문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한국 자본주의’ 준비 과정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언제부터, 왜 쓰자고 마음 먹었나.

“생각은 5년 전부터다. 한국 경제에 관한 좌우 진영의 논리가 전부 파편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파는 그래도 정의롭진 못할지언정 합리적인 부분이 있다. 내 것, 기득권을 지키기 위함이라는 목적이 분명하니까. 그러다 보니 우파의 왜곡은 금방 드러나는 게 많다. 반론 제기하기도 쉽다.

책에서 한 챕터를 할애한 게 ‘삼성의 적대적 M&A’(제5장 삼성은 왜 스스로 적대적 M&A 논쟁을 일으켰나?)에 관한 거다. 보기에 따라서는 한국 자본주의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슈라고 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우파의 기득권 지키기 논리를 한국경제에 투영한 일종의 거울 같은 논쟁이라고 생각했다. 그 안에는 수많은 이슈가 녹아있다. 단순히 삼성전자 경영권의 문제가 이 나라 외국인 투자자 문제, 자기들이 갖는 사회적 영향력, 국가 경제가 삼성에 의지하는 걸 역이용하는 문제 등이다. 그러니 ‘삼성의 적대적 M&A’라는 간판 아래 한국 경제에 대한 우파의 왜곡된 논리가 스며있는 거다.

특히나 그 이슈를 지루할 만큼 길게, 누구도 반론 제기하려면 나만큼 공부하고 와서 하라는 식으로 아주 세밀하게 썼다. 심지어 ‘삼성의 자작극’이라는 표현까지 쓴 건 그만큼 자신이 있어서다. 삼성을 비판하기보다는 그 사건에 녹아있는 한국 경제의 왜곡된 구조를 얘기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좌파는.

“정말 심각한 문제가 현실을 떠나있다는 것이다. 좌파의 주장 중 ‘허수아비 논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있다. 이것 역시 ‘삼성의 적대적 M&A’ 논쟁으로 예를 들면, ‘삼성전자가 외국인한테 경영권을 뺏기면 우리 경제가 망하니까 삼성의 경영권을 보호해주자’는 주장이다. 좌파라는 사람들이 말이다. 도대체 현실을 모르는 거다(장 교수는 책에서 적대적 인수ㆍ합병에 필요한 천문학적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투자자가 극히 드문데다 주식 매수 과정이 복잡하다는 등 여러 근거를 들어 이 시나리오가 비현실적이라는 주장을 한다).

강준만 교수는 진보더러 ‘싸가지 없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싸가지가 없을뿐더러 게으르고 무책임하다. 게으르고 무책임한 진보 때문에 전체 진보에 문제가 생긴다. 긴 호흡의 이야기가 아니라 단편적이고 강렬하고 대중영합적인 이야기만 한다. 그러니 좌파의 주장도 현실과 동떨어진, 왜곡된 게 많다.

자본과 자본주의에 관한 논쟁을 한국의 현실과 관계없는데도 미국이나 유럽의 논쟁을 수입해 한국에서 논쟁을 한다. 남의 사진 보면서 자기 얼굴 찾는 황당한 상황이다. 진단이 틀리니 거기에 대한 대응 논리도 잘못된다.”

-책에서 신자유주의 개념이 학문적 토론의 산물이 아니라는 지적을 하면서 개념 정리를 하기도 했는데.

“경제문제는 물론 심지어 문화문제도 ‘모두 신자유주의 때문이다’ 그러고 끝낸다. 신자유주의가 대체 뭔데. 한번은 정리를 해야겠다 싶었다.”

-책 준비에 얼마나 걸렸나?

“구상은 5년 전, 집필에만 꼬박 3년이 걸렸다.”

-책에 데이터가 상당히 많이 인용됐다.

“책을 쓸 때 세가지 원칙을 갖고 했다. 첫째는 ‘한국 이야기’를 하겠다는 것, 그것이 불평등의 문제든 세계화든 어떤 이슈가 됐든 세계사적, 인류사적으로 아무리 훌륭해도 지금, 오늘, 한국의 현실과 관계없는 얘기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서다. 철저하게 한국 경제 현실에 근거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둘째는 객관화돼있지 않은 얘기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논문이든 통계가 됐든 다른 사람의 논쟁이 됐든. 물론 어떤 걸 선택하느냐는 나의 가치관과 철학에 따라서다. 그래서 한 줄을 쓰더라도, 그것이 내가 뻔히 알고 있는 내용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자료를 인용했다. 그러다 보니 구성도 문제였다. 학문적 완결성이 있으면서도 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큰 숙제였다. 그래서 스토리텔링하듯 쓰기로 했다. ‘객관적 사실이 이러니 그런 줄 알아라’라는 방식이어서는 설득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세번째 지키려고 했던 원칙은 ‘내 주장을 분명히 한다’였다. 얼버무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내 책이 새로운 논쟁의 시작이 되길 바랐다. 내가 글을 쓰면서 비판한 많은 사람들이 논쟁을 해오기를 기대한다.”

-책을 보면, 경제 얘기를 하는데 그래프가 없다.

“표나 그림, 그래프를 넣지 말자는 게 의도였다. 도저히 그림 없이는 설명 안되겠다고 생각한 재벌의 출자 구조만 넣었다. 많은 그래프를 만들어 놓긴 했지만 그건 내가 글을 쓰기 위한 재료였다.”

-잇단 경제위기에,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출간에, 요즘 자본주의에 대해 다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책을 기본개념 설명부터 시작한 것도 인상적이다.

“경제문제를 거론할 때 단편적으로 접근하기가 쉽다. 연관을 짓지를 못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경제학 공부한 사람이나 경제에 지속적으로 관심 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경제 얘기를 하려면, 일정 부분 경제학 개념들을 한국의 현실과 연계해서 설명해줄 필요가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신문기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팩트가 촘촘해서가 아닌가 한다.

“그런 의도를 갖고 쓴 게 전달이 돼서 기분이 좋다. 읽은 이들이 그런 얘기를 많이 하더라. 이야기처럼 읽힌다고.”

장하성 교수는 “그간 있었던 자본주의 논쟁은 미국이나 유럽의 시각으로 한국을 재단한 게 대부분”이라며 “한국에 방점을 찍은 자본주의 논쟁이란 의도로 ‘한국 자본주의’란 제목을 고집했다”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장하성 교수는 “그간 있었던 자본주의 논쟁은 미국이나 유럽의 시각으로 한국을 재단한 게 대부분”이라며 “한국에 방점을 찍은 자본주의 논쟁이란 의도로 ‘한국 자본주의’란 제목을 고집했다”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한마을 이야기’가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웠다. 재벌을 키운 건 결국 정부이고, 그래서 지금의 기형적인 자본주의의 모양새를 갖추게 된 걸 참 쉽게 썼는데.

“원래 재벌을 비판하던 사람이라 또 재벌로 긴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가 왜 모순적인지를 설득하려면 재벌 이야기를 안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유주의자, 평등주의자, 공동체 주의자, 극단적 사회주의자 등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동원해 비춰봐도 문제라는 걸 쉽게 설득해보려고 만든 이야기다.

사실 처음에 그런 아이디어가 떠올라 쓴 직후에는 내가 봐도 너무 재미있는 거다(웃음). 그런데 며칠 후에 다시 보니 ‘세상에 이렇게 허접스런 글을 내가 왜 썼나’ 싶더라(더 큰 웃음). 진지한 책에 너무 ‘오바’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런데 미리 보여준 후배 교수가 재미있다기에 용기 내서 실었다.”

-한마을 이야기는 결국 정부 비판이고, 정치 얘기다. 책에서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라고 했는데.

“재벌은 정부가 정책적으로 만든 거다. 경제발전의 수단으로. 그런데 제어를 못하게 됐다. 너무 커져서. 정치권력은 유한하고 재벌권력은 무한하니까. 재벌은 대를 물려가면서 무한히 부를 쌓을 수 있다. 그러니 대통령들마다 (재벌 규제 정책을) 포기하는 거다.

세상을 바꾸는 현실적인 수단은 정책이다. 그리고 정책은 세상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지향점, 가치, 목적에 의해서 선택하는 것이지 정책 그 자체가 세상을 바꾸는 건 아니다. 세상은 진화하지 않는다. 우리가 바꿔나가는 것이지 스스로 진화하는 게 아니다.

그 얘기를 하기 전에 썼다가 다 빼버린 부분이 있는데 관료들에 대한 비판이다. 많은 지도자들이 ‘관료의 꿀단지’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지도자가 원하는 대로 해오니까. 관료에 중독이 되면 그 지도자는 가치 지향적인 사람이 아니라 목적 지향적 사람이 된다.

관료는 사실 기술자다. 지도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만드는 기술자. 그러니 정책은 얼마든지 있다. 기술자들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국민들이 바라는 가치, 바라는 미래의 모습을 정하고 그에 대한 사회적 합의 이끌어내는 게 정치 리더들의 몫 아닌가.”

-그런데 현실 정치권, 더 좁게는 대안을 제시해야 할 정당이 제 역할을 못하는 문제도 있다.

“자기 스스로 무얼 지향하는 지 모르는, 단순한 기득권 집단이 돼 버려서다. 내가 책에서 대선 때는 당이 하나였다고 얘기한 것이 이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민주당으로, 민주당은 새누리당 쪽으로 가서 ‘새누리민주당’이라는 한 당에서 두 후보를 낸 격이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고 나니 다들 각자 당으로 돌아가 버린 꼴이다.

어떻게 그런 현상이 용인되는가. 그래서 계급투표, 계층투표, 기억투표를 하라고 한 거다. 이를 강조하려고 ‘강북우파’란 단어를 위험하지만 등장시켰다. 아마 내가 처음 쓴 말인 것 같다. 왜 유권자들이 자기 계층의 이익에 충실한 투표를 안 하느냐는 문제제기다. 강남우파는 자기 이익에 가장 충실한 투표를 한다. 그런데 왜 중산층 서민들은 자기 계층 배반 투표를 하느냐는 거다.”

-강북우파들을 뭐라고 설득할 건가.

“우리나라는 계급투쟁이 없었던 나라다. 그러면서 자본주의가 발전한 건 기형이다. 압축성장을 했기 때문이다. 자기 계급ㆍ계층에 대한 정체성을 제대로 인식할 기회가 없었다. 유럽은 피로 계급 투쟁을 한 역사가 있다. 우리는 민주항쟁이 있긴 했으나 노동자들의 정치세력화는 10년 후 민주노동당이 생기면서 이뤄졌다. 그것마저도 대기업노조 중심이었다. 그러니 일반 노동자들이 자기 계층의 이익에 맞는 정치적 행위를 한다는 것 자체를 고민할 시기가 없었고 논쟁도 불편해 한다. 압축성장의 폐해 중 하나다.

다음 대선 때 그래서 (계층투표ㆍ기억투표 하자는) 캠페인을 하고 싶은데, 그게 성공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성숙돼야 할 거다. 스스로 먼저 절실하게 문제를 느끼고 있어야 한다. 두 번째는, 그것을 담아낼 정치 구조가 있어야 한다. 후보든 정당이든.”

-‘한국 자본주의’라는 평범해 보이지만 독특한 제목을 지은 의도는 뭔가.

“내가 끝까지 고집한 제목이다. ‘한국적 자본주의’도 아니고 ‘한국 자본주의’인 이유, 바로 한국에 방점을 뒀기 때문이다. 많은 한국의 자본주의 논쟁은 ‘자본주의’에 방점이 있지 한국에 없다. 그러다 보니 미국이나 유럽의 논쟁으로 한국을 재단한다. 나는 한국 얘기를 하겠다는 내 고집을 고집한 제목이다.”

-책에 ‘자본주의를 고쳐 쓰자’는 주장이 나온다. “대안이 없기에 고쳐서라도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만드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고 그 답은 정의로운 자본주의”라는 내용이다. 그간 진보 진영에서는 왜 그런 주장이 강하게 나오지 않았을까?

“써놓고 보니 뻔한 얘기 같지만 아무도 안 한 얘기다. 자본주의에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진보 경제학자들이) 하기 싫었던 거다. 자본에 문제 있다는 소리는 누구나 한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냐에 대해서는 말을 안 한다. 좌파 중에 그래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가장 일관성 있고 그래서 존중한다. 자본이든 자본주의든 비판할 때 그들은 그래서 대안은 사회주의라고 얘기하니까. 진보 진영의 또 한가지 문제는 크게 진단해놓고 대안은 미시적으로 제시한다는 거다. 자본세나, 삼성특별법 주장도 마찬가지다.

우연히 기사를 보고 안 사실인데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에서 반대 의견을 낸 김이수 헌법재판관이 결정문에 ‘고쳐서라도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만드는 게 최선’이라는 내 책의 대목을 ‘한 경제학자’의 글로 인용해서 썼더라.” (▶ 관련기사)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정규직의 보호막 걷어내겠다고 했다. 어떻게 보나.

“비정규직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정책이 전제되지 않고는 어떤 것도 말이 안 된다. 비정규직을 더 늘리는 결과만 가져올 것이다. 또 하나, 임금 격차도 줄여야 한다. 비정규직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동시에 임금격차를 좁히는 정책 없이 정규직 해임을 유연하게 한다는 건 비정규직을 더욱 양산하고 임금 격차를 확대하겠다는 얘기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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