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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유령주식 매도’ 증권사 변명이 궁색한 이유

입력
2018.08.11 13:00
수정
2018.08.2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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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주식 매매거래 방식. 송정근 기자
해외주식 매매거래 방식. 송정근 기자

유진투자증권의 유령 해외주식 매도 전산 사고는 모든 거래 과정을 완전히 시스템화 할 수 없는 구조에서 출발합니다. 증권사들은 한국과 해외 거래소 사이에는 시스템상 차이가 있고 해외 주식거래를 할 때 반드시 예탁결제원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억울함을 하소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주식 거래량이 폭증하는데도 증권사들이 마케팅에만 열을 올리고 시스템을 갖추는 데엔 소홀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는 없어 보입니다.

증권사들은 무엇보다 한국과 해외의 주식매매거래 시스템상 차이를 강조합니다. 국내에서는 액면분할이나 병합을 할 때 일정 기간 거래정지 기간을 두고 거래소와 예탁원, 증권사에서 전산처리를 한 뒤 다시 거래를 재개하지만 미국만 해도 별도의 거래정지 기간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지난 2016년 3월 미국에서 발행한 상장지수펀드(ETF)의 거래가 주식 병합 이후 2~4일 간 차질을 빚은 ‘블랙아웃’이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이번에 사고가 난 ‘프로셰어즈 울트라숏 다우30’처럼 주가지수의 두 배로 움직이는 ETF는 변동폭이 크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거래를 할 수 없을 경우 투자자들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죠.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거래가 중단되거나 거래 중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구조라는 겁니다.

A증권사 관계자는 “한국과 해외 주식시장의 규정이 서로 다르고 각 시장마다 매매거래 시간에 시차도 존재해 실시간으로 모든 것을 반영한다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실시간으로 거래가 가능하게 하는 ‘편의성’을 중시해야 할지, 거래의 ‘안정성’을 중시해야 할지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털어놨습니다.

증권사들은 해외주식 거래 중 주식 분할이나 병합, 배당 등 보유한 주식의 권리가 바뀌는 이벤트가 발생했을 때 모든 처리 과정을 자동화하기는 힘들다고 주장합니다. 예탁원과 증권사 사이 전용선으로 연결된 ‘CCF’ 시스템을 통해 권리 변동 내역을 반영하는데, 이 시스템으로 개별 주주에게 주식을 배정하는 작업까지는 불가능합니다. 각 증권사들은 예탁원에 개설한 ‘외화증권 예탁결제계좌’를 통해 거래를 하는데 예탁원이 증권사에 제공할 수 있는 정보도 예탁결제계좌 단위이기 때문이죠. 예탁원을 통해 해외에서 전달되는 전문이 국내에서 통용되는 양식과 달라 담당 직원들이 한번 더 확인을 거쳐야 한다고도 합니다.

때문에 대부분의 증권사들은 해외주식 거래를 할 때 별도의 전용선을 설치해야 하고 서버 운영 비용도 더 많이 드는 CCF 방식을 굳이 선택하지 않으려 합니다. 대신 여러 명의 해외주식 담당 직원들이 예탁원을 통해 전달되는 공식 전문과 블룸버그 같은 사설 주식정보 시스템을 번갈아 확인하면서 주식 권리 변동 내역을 반영합니다.

B증권사 관계자는 “예탁원에서는 CCF 시스템을 통해 총 잔고에 대한 권리만 통보할 수 있고 이 내용을 다시 주주별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증권사에서 별도로 확인이 필요하다”며 “전산 시스템에 따라 주식을 배정한 뒤 다시 해외주식 담당 직원이 블룸버그, 예탁원을 통해 재확인 하는 ‘절반만 자동’ 시스템”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백번 양보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모든 증권사들이 최선의 노력을 다했는가 하면 의문이 남을 수 밖에 없습니다. 주식 권리배정 내역이 증권사 장부(원장 관리 시스템)에 자동으로 반영되는 시스템이 있지만 서버 비용 부담이 커, 개인 계좌에 주식을 배분하는 것은 증권사의 몫이라는 이유로 이를 도입하지 않은 곳이 대다수이기 때문이죠. 결국 예탁원이 통지한 내용을 증권사가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데 누수가 생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예탁원에 따르면 상반기 해외주식 거래대금은 179억5,000만달러(약 20조원)로, 지난해 상반기(93억달러ㆍ약 10조4,000억원)의 두 배 가까이 성장했습니다. 해외주식 거래를 중개하는 증권사들도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앞다퉈 마케팅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금융 거래의 본질인 안정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투자자들이 발길을 돌리는 것은 시간 문제가 아닐까요. 해외 주식투자 전도사로 꼽히는 이항영 열린사이버대 교수는 “증권사들이 해외주식 투자자를 늘리기 위한 마케팅에는 열을 올리고 있지만 정작 이를 뒷받침 할 전산 시스템 구축이나 콘텐츠 보강에는 너무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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