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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한국과 미국의 상반된 ‘기부금’정치학

입력
2015.11.13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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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1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기부천사와 함께하는 나눔 토크 콘서트'에 참석해, 나란히 앉아 행사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1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기부천사와 함께하는 나눔 토크 콘서트'에 참석해, 나란히 앉아 행사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신앙심 깊은 기독교 신자 A씨가 있다. A씨의 연봉이 1억원이라면, 2014년에는 십일조로 얼마를 내야 할까. 대부분 1,000만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엄격하게 따지면 1,015만원이 정답에 가깝다. 1,000만원을 십일조로 낼 경우 내년에는 연말정산에서 15%(150만원)를 세액공제로 돌려 받아 그만큼 소득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다른 기부 행위에도 같은 계산법이 적용된다. 역시 억대 연봉자인 B씨가 구호 기관에 1,000만원을 기부했다면, 그도 150만원을 돌려 받을 테니 실제 부담은 850만원에 머문다. 1,000만원 기부로 B씨가 얻은 사회적 존경 가운데 150만원 가량은 국가 혹은 모든 납세자의 몫인 셈이다.’

기자가 대한민국 세종특별시 기획재정부를 취재하던 2년 전 작성한 ‘정말 걱정이 많은 분들입니다’(9월6일자 30면)라는 제목의 칼럼 중 일부다. 고소득층에게서 더 많은 세금을 거두려고 소득공제였던 기부금 공제방식을 세액공제로 바꾼 당시 기재부 세제 개편안에 대해 일부 언론과 새누리당 일각에서 ‘기부문화 확산을 막는다’며 공격하는 건 잘못이라는 내용이었다.

묵은 칼럼을 꺼낸 건 나흘 전 치러진 미 공화당 대선후보 4차 TV토론 때문이다. 공화당의 샛별 마르코 루비오(텍사스) 의원의 토론 솜씨가 빛난 이날 토론회의 주제는 ‘경제’였다.

이민정책, 중동정책, 통상정책 등에서는 엇갈렸지만 도널드 트럼프부터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까지 모든 후보가 미국 대기업과 부자들의 탈세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조세제도의 허점(루프 홀ㆍLoophole)을 막아야 한다는 데에서만은 일치를 이뤘다. 공화당 후보들은 특히 기부금에 방만한 세제 혜택이 철폐돼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부시 전 지사는 올해 9월 내놓은 세제공약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워싱턴 로비스트들의 공작으로 세법 조항 곳곳에 숨겨진 ‘루프 홀’을 없애길 원합니다. 수 년간 미국의 부자들은 소득에 대해 보통 사람보다 더 많은 비과세 혜택을 받아왔습니다. 기부에 대한 세제 혜택을 유지하겠지만, 공제 한도를 새롭게 정해 더 이상 부자들과 워싱턴 특권층의 세금 회피수단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기부문화 장려를 위해 세금혜택을 팍팍 준다’던 미국에서, 그것도 공화당 진영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 한국에서는 여야 대표들이 만나 부자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갈 게 뻔한 기부금 공제율 인상 추진에 합의한 모양이다.

2년 전에도 그랬던 새누리당이야 그렇다고 치자. ‘부자증세’를 주장하는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줄줄이 계열사를 거느린 언론기관과 복지관련 재단과 관계 깊은 기업과 거부들이 기부금 공제율 인상을 주장하는 이유를 모른단 말인가.

정말 그렇다면 소득공제 방식에서 세액공제로 전환된 첫 해인 2014년 개인 기부가 늘어났다는 기재부 자료를 열람해보시기 바란다. 기재부가 분석한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개인(근로자) 기부금 규모는 6조8,000억원(잠정치) 가량으로 전년(6조7,000억원)에 비해 1,000억원 증가했다.

2년 전 칼럼으로 시작했으니 마무리 글도 당시 칼럼으로 하겠다. “가장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은 새누리당의 일부 주장이 우리 사회의 양심인 대다수 거액 기부자의 본심을 대변하는지 여부다. 세금이 늘어나면 ‘아너 소사이어티’로 불리는 억대 기부자가 기부 액수를 줄일 것이라고 단정하는데, 정말 그럴까. 매년 구세군 냄비에 1억원을 익명으로 낸 독지가, 공연 수익 전액을 기부해온 가수 김장훈이 세금 무서워 기부를 않거나 액수를 줄일까.”

세금 때문에 액수의 과다가 바뀐다면, 기부가 아니라 ‘세(稅) 테크’일뿐이다.

조철환 워싱턴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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