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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미식회’ 식당에 가보지 않아도 될 이유

입력
2017.01.16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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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미식회 방송 캡처.
수요미식회 방송 캡처.

“야,오늘은 또 뭘 먹냐.”

점심시간마다 회사원들은 진지한 고민에 빠진다.점심 때마다 이어지는 ‘외식’이란 말은 곧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가장 싸고 맛 있고 양이 만족스러우며 그렇게 멀지 않고 기다리지 않으면서 자리가 편안하고 분위기는 나쁘지 않은 곳’을 찾아서 고뇌를 거듭한 끝에 도달하는 결론이다.(그래 봐야 결론은 그 나물에 그 밥이고,매우 후진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어색한 사람들이 만나서 밥을 먹을 때는 챙겨야 할 경우의 수가 더 복잡해 진다.상대방의 기호도 고려하면서 편안하게 리드하는 게 중요하다.이때 가장 잘 통하는 마법의 단어가 있다면 이것 아닐까. “아주 유명한 맛집인데, 제가 자주 가서 잘 알거든요.같이 가시죠.”

대한민국에는 맛집 프로그램이 넘쳐나지만,그 가운데서도 ‘수요미식회(tvN)’는 특별한 자리를 잡고 있다.나는 그 이유가 위의 설명과도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수요미식회’에서 소개하는 ‘문 닫기 전에 가 봐야 할 식당’들과 그곳의 음식 논평이 좀 특별해서다.해당 음식에 대해 해박하고 그 음식점이 왜 뛰어난 지에 대해 감칠맛 나게 말로 풀어내는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음식 이야기를 쏟아 내기 때문이다.‘수요미식회’는 엄선한 음식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받고, 푸드 칼럼니스트와 실제 식당을 경영하고 있는 요리사가 패널로 나오고,또 말 맛있게 하기로 유명한 신동엽과 전현무가 진행을 한다. 누군가 능숙하게 유명 맛집으로 나를 이끌고 가서 능숙하게 식당과 음식의 역사를 이야기해 주는 느낌이다.

‘수요미식회’가 지난주에 벌써100회를 맞았다. 맛집 소개 프로그램이 홍수를 이루는 시대에 특히나‘수요미식회’가 선정한 맛집이 유독 장사진을 이루는 것도 이처럼 이 프로그램이 가진 특별함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음식(또는 외식)이란 게 참 묘하다.그동안 ‘나만의 단골집’으로 마음에 간직했던 집이 ‘수요미식회’에서 소개되면 뭔가 도둑맞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또‘수요미식회’에서 소개된 집에 한 번쯤은 꼭 가 보고 싶다는 마음만 간직하다가 직접 갔을 때, 문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서 그 순간 그냥 질려버렸던 경험은 과장하면 사기 당한 기분에 가깝기도 했다.

잘 모르는 집을 소개받을 때는 그렇게 재미가 있다가도 내가 좋아하는 집이 나오면 화가 나는 이율배반. 다가 ‘수요미식회’가 ‘미식으로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며 소개하는 바로 그 집들이 바로 이 프로그램에 소개됐다는 이유만으로 오히려 가게세를 갑자기 올려달라고 요구받아 사장이 난처해지거나, 갑자기 늘어난 손님들 때문에 서비스 질이 확 떨어지는 ‘나비효과’도 아이러니하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돈’이다.

실제로 우리가 음식점을 고를 때는 순수하게 음식 맛과 서비스만 보는 건 아니다. 당연히 가격이아주 중요한 기준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 안에서는 일단 그런 부분은 배제한다. 돈과 상관 없이 순수하게 맛 만을 파고들어 이야기하는 묘한 ‘고상함’이 비현실적으로 보이면서도 동시에 어떤 카타르시스도 충족해 준다.마치 내가 돈 걱정 없이 저 음식점들에 가서 다 먹어보고 논평하는 기분이 드니까. 프로그램의 패널들이 ‘정직한 맛 평가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실제로 자기 돈을 내고 음식을 먹고 와야 한다는 규정도 그런 생각을 더 갖게 해준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개인적으로 잊혀지지 않을 만큼 맛있게 먹었던 식사(외식)는 대부분 ‘누가 사준 음식’이었다. 맛이 좋고 서비스가 훌륭한 식당이 비싼 건 당연하다.이런 곳에서 누가 사 주면 ‘정말 맛있다’고 즐겁게 감탄만 하면 된다. 하지만 내가 돈을 낼 때는 아무리 큰맘 먹고 ‘오늘은 돈 걱정 말고 먹어보자’고 해 봐야 계산서가 나오면 식은땀도 나고, ‘이 돈이면 집에서 소고기 사다가 실컷 구워 먹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자꾸 밀려온다.

그래서 ‘수요미식회’를 볼 때는 이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는 식당에 가 봐야겠다는 생각은 아예 접어두고 보는 게 좋을 것 같다.전문가들이 진지하게 맛에 대해 논하는 건 그들의 일일 뿐이다.나는 이 프로그램을 100회까지 지켜보면서 TV 속의 ‘미식’과 현실 세계의 ‘미식’이 크게 다르다는 걸 염두에 두고 이 프로그램을 봐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TV와 현실의 다른 점은 또 있다.‘수요미식회’에서 소개하는 건 ‘앞으로 가 볼 만한 곳’이지만,사실 우리에게 있어서‘아름다운 맛’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 속에 있다.‘누구와 함께 먹었는가’ ‘그 음식을 먹을 때 얼마나 즐거웠는가’ ‘우리가 함께 먹어서 행복했는가’ 같은 것들이맛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신비한 경험을 ‘현실 세계’에선 그 누구라도 하고 있으니까.

마더티렉스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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