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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국민주권정부의 정부혁신

입력
2017.12.03 13:26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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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1년 전 우리 사회는 더없이 뜨거웠다. 10월 말부터 박근혜 대통령과 측근들의 국정 농단에 대한 국민적 심판인 촛불집회가 잇달아 열리기 시작한 후 1달 반이 지난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통과됐다. 이후 조기 대선이 진행됐고, 5월 10일 문재인정부가 출범했다. 그 역사적 기원이 촛불시민혁명에 있는 만큼 문재인정부가 스스로를 ‘촛불시민정부’라고 부른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어떤 정부라 하더라도 정부를 탄생시킨 구조적 배경은 그 정부의 정책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1년 전 촛불시민의 1차적 요구는 적폐 청산과 사회·경제적 혁신이었다. 출범 이후 지난 7개월 동안 문재인정부가 한편으로 사회 각 분야의 적폐 청산에 주력하고 다른 한편으로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통한 사회·경제 패러다임 변화를 추구한 것 역시 자연스런 일이었다.

문재인정부의 정책 기조에 대해 물론 비판이 없지 않았다. 적폐 청산의 과도함을 지적하는 이들도, 소득주도성장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낡은 제도를 개혁하지 않고선, 새로운 사회·경제 패러다임을 모색하지 않고선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서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지난 1년 동안 국민 다수가 소망한 것은 국민 모두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구축이었다. 새로운 민주공화국이야말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잇는 우리 사회의 새로운 시대정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지탱하고 관통하는 키워드는 ‘국민주권’이다. 문재인정부가 내건 정치·행정의 목표도 ‘국민주권정부’, 다시 말해 ‘국민이 주인인 정부’다. 국민주권정부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2항에서 출발한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특권을 내려놓고 권력의 사유화로 붕괴된 국정운영을 개편하며 권력자를 위해 존재해온 권력기관의 민주적 개혁을 추진함으로써 대통령을 위한 정부가 아니라 국민 모두를 위한 정부를 구축하는 게 국민주권정부에 부여된 1차적 과제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국민주권정부 실현을 위한 행정 개혁이다. 국민이 정부의 주인이 되기 위해선 중앙부처, 지자체, 공공기관이 바뀌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주목할 것은 앞선 정부들의 경우 정부혁신을 추진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명박정부는 ‘섬기는 정부’를 내걸었고, 박근혜정부는 투명한 정부, 유능한 정부, 서비스 정부의 구현을 위한 ‘정부 3.0’을 추진했다. ‘투명·유능·서비스 정부’가 얼마나 공허했는지는 세월호 참사와 대통령 탄핵이 생생히 증거한다. 중요한 것은 수사적 담론이 아니라 실질적 정책, 무엇보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임을 느낄 수 있는 공직사회의 구체적 실천이다.

새로운 민주공화국이 시대적 가치라면,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포용적 복지국가는 그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목표다. 그리고 국민주권정부의 제도화는 그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다. 새 정부가 추진하는 정부혁신의 핵심은 ‘사회적 가치’와 ‘국민 중심성’의 실천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공공성 강화, 신뢰 증진, 공동체 복원을 지향하는 사회적 가치를 중심으로 정책 과정과 업무 방식을 새롭게 설계하는 동시에 정부의 정책결정에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참여 및 숙의민주주의 제도를 적극 도입하는 것은 국민주권정부가 추진해야 할 구체적인 과제들이다.

사회적 가치를 구현하고 국민 중심성을 실현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사회적 가치와 국민 중심성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지구적 민주주의의 도도한 흐름에서 중핵을 이룬다. 사회적 가치와 국민 중심성의 정치·행정은 그 과정에서 과감한 정부혁신은 물론 계몽적 국민의 존재를 요구하고 대의민주주의와의 긴장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느린 민주주의’ 기획이다. 더디지만 성숙된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주권정부의 일대 정부 혁신을 기대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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