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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태 가족사 고은 시 ‘만인보’에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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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태 가족사 고은 시 ‘만인보’에 등장

입력
2016.12.2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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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태 전 더블루케이 이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고영태 전 더블루케이 이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최순실 국정농단의 핵심인사인 고영태 전 더블루케이 이사의 가족사가 고은 시인의 대표작 ‘만인보(萬人譜)’에 실린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고 시인이 1986년부터 2010년까지 집필한 만인보는 4,001편의 시로 구성된 30권짜리 대작으로 시인이 인연이 닿았던 이들과 근현대사 대표 인물들의 면면, 신라시대부터 근세까지의 불승들의 행적을 담았다. 등장인물만 5,600여 명에 이른다.

고영태 가족사가 등장하는 건 만인보 ‘단상 3353-고규석’ 편과 ‘3355-이숙자’ 편으로 고규석과 이숙자는 고영태씨의 부모다. 아버지 고씨는 1980년 5월 21일 일을 보러 광주 시내에 갔다 실종됐고, 열흘 후 광주교도소 안에 암매장된 상태로 발견됐다. 고영태가 다섯 살 때였다. 아버지 고씨 사망한 뒤 어렵게 생활하던 어머니 이숙자씨는 망월동 묘역 관리소 인부로 채용돼 5남매를 키웠다. ‘만인보’에는 고영태 가족의 생활상과 고씨 사망 이후 일화가 실려 있다.

다음은 시 원문

만인보 단상 3353-고규석

이장 노릇/새마을지도자 노릇/소방대장 노릇/예비군 소대장 노릇/왕대 한 다발도 번쩍 들었지/(…)

동네방네 이 소식 저 소식 다 꿰었지/싸움 다 말렸지/사화 붙여/사홧술 한잔 마시고/껄껄껄 웃고 말았지/(…)

누구네 집 서울 간 막내아들/달마다 담배 사보내는 것도 알고/누구네 집 마누라가/영감 몰래/논물 몰래 대어/옆논 임자하고 싸운 일도 알고/

아니 아니/누구네 집 삽 두 자루/누구네 집 나락 열 가마/남은 것도 아는 사내/고규석/

다 알았지/다 알았지/그러다가 딱 하나 몰랐던가/

하필이면/5월 21일/광주에 볼일 보러 가/영 돌아올 줄 몰랐지/마누라 이숙자가/아들딸 다섯 놔두고/찾으러 나섰지/

전남대 병원/조선대 병원/상무관/도청/(…)/그렇게 열흘을/넋 나간 채/넋 읽은 채/헤집고 다녔지/

이윽고/광주교도소 암매장터/그 흙구덩이 속에서/짓이겨진 남편의 썩은 얼굴 나왔지/가슴 펑 뚫린 채/마흔살 되어 썩은 주검으로/거기 있었지/

아이고 이보시오/(…)

/다섯 아이 어쩌라고/이렇게 누워만 있소 속 없는 양반

만인보 단상3355 이숙자

고규석의 마누라 살려고 나섰다/(…)/담양 촌구석 마누라가/살려고 버둥쳤다/

광주 변두리/방 한 칸 얻었다/

여섯 가구가/수도꼭지 하나로/살려고 버둥쳤다/

여섯 가구가/수도꼭지하나로 물밥는집/(…)

남편 죽어간 세월/조금씩/조금씩 나아졌다/망월동 묘역 관리소 잡부로 채용되었다/그동안 딸 셋 시집갔다/

막내놈 그놈은/펜싱 선수로/아시안 게임 금메달 걸고 돌아왔다/

늙어버린 가슴에 남편얼굴/희끄무레 새겨져 해가저물었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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