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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르시 실각 2년… 민주화 역주행하는 이집트 '조용한 혁명'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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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르시 실각 2년… 민주화 역주행하는 이집트 '조용한 혁명'을 기다린다

입력
2015.07.15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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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에 쫓겨난 첫 민선 대통령… 무르시 실각 후 18개월간

반정부 시위 등 2600명 숨져, 정부 비판 막고 정치 토론 사라져

젊은 세대, 민주화 제2막 올릴까… 8000만 국민 절반이 25세 이하

아랍의 봄 경험한 젊은이들 "언제든 자유 쟁취할 수 있어" 자신감

이집트의 첫 민선 대통령 모하메드 무르시가 실각한 지 지난 3일로 2주년을 맞았다. 2011년 촉발한 ‘아랍의 봄’ 운동 가운데도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 받았던 이집트의 민주화 열기는 그 사이 싸늘하게 식었다. 무르시를 지지하는 시민 다수가 무차별하게 희생됐고, 민주화의 성지라 불렸던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은 철조망과 장갑차에 가로막혔다. 무르시는 사형 선고를 받고 목숨을 잃을 지경에 놓였지만 30년간 철권을 행사하던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는 면죄부를 받았다.

무엇보다 다시 들어선 군부 정권은 국가 장악의 야욕을 거침없이 드러내며 이집트를 과거로 회귀시킬 조짐을 보이고 있다. 출범 이후 무르시 지지세력 척결에 온 힘을 다하며 국가를 되레 혼란 속에 빠트린 정부는 새 삶을 향한 국민의 열망을 송두리째 빼앗고 있다. 이집트가 차가운 겨울을 지나 4년 전처럼 다시 봄의 기운을 되찾을 수 있을까.

● 무르시 사형 선고 이후 혼란 절정

지난해 당선된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과 반대 세력의 충돌은 최근 들어 극에 달하고 있다. 특히 이집트 법원이 2011년 교도소를 탈옥하고 경찰 등을 공격한 혐의로 기소된 무르시에게 지난달 16일 사형 선고를 확정하며 이집트 국내뿐만 아니라 인근 중동 국가의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 이날 카이로에서는 무르시 지지자 수십명이 그의 사진을 들고 ‘사형 철회’를 외치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과 대치했고 수명의 중상자가 발생했다. 같은 수니파 국가로 무르시에 오랫동안 지지를 보내 온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에서는 히잡을 쓴 여성 등 남녀노소 수백명이 모여 무르시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도 이날 “이집트는 득표율 52%로 당선된 대통령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며 “이집트는 과거 고대 시대로 회귀했다”고 공개 비난했다.

여기에 무르시 지지세력이 사법 당국을 향한 공격을 거듭하면서 혼란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무르시에게 최초 사형선고가 내려진 5월 16일에는 시나이반도에서 2명의 판사와 1명의 검사가 피살됐고, 지난달 29일 수도 카이로 외곽에서는 히샴 바라카트 이집트 검찰총장이 출근 중 폭탄 테러로 목숨을 잃었다.

모하메드 무르시 전 이집트 대통령을 지지하는 터키 시위대가 3일 이스탄불에서 교수형 장면을 연출하며 무르시에 대한 이집트 법원의 사형 선고를 규탄하고 있다. 이스탄불=EPA 연합뉴스
모하메드 무르시 전 이집트 대통령을 지지하는 터키 시위대가 3일 이스탄불에서 교수형 장면을 연출하며 무르시에 대한 이집트 법원의 사형 선고를 규탄하고 있다. 이스탄불=EPA 연합뉴스

● 우려대로 민주화 역행 감행하는 엘시시

이러한 혼란에도 불구하고 엘시시 정권은 국가 통제를 강화하며 이집트를 과거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 이집트 국가인권위원회(NCHR)는 지난달 보고서를 내고 무르시 전 대통령이 실각한 후 18개월(2013년 6월~2014년 12월) 동안 반정부 시위와 폭력진압 등으로 사망한 이들이 2,600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숨진 이들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250명이 무르시 전 대통령의 지지자이며, 시민 550명과 경찰 700명도 포함됐다고 NCHR은 전했다. 국제인권단체 국제인권연맹(FIDH)은 5월 이집트 당국이 반정부 시위대를 탄압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성폭력을 일삼았다며 당장 비민주적 행위를 멈추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표현의 자유도 크게 위축됐다. 이집트 카이로의 한 대학교수는 “공공장소에서 엘시시나 정부 비판을 할 경우 어떤 상황을 맞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며 “말을 조심해야 하고 정치적 견해를 낼 때는 더욱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집트 학계 역시 정부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데다 정치 이슈와 관련한 토론도 사실상 사라졌다고 이 교수는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해 말 영국계 이집트인 2명은 지하철 역에서 “이집트 시민혁명 발발 2주년을 맞아 시위가 일어 날 수도 있겠다”고 얘기했다가 당국에 체포됐다. 전화상으로 친구와 함께 정치를 주제로 얘기하다가 이를 우연히 들은 사람의 신고로 붙잡힌 20대 청년 역시 9일간 구금됐다 풀려났다. 심지어 이집트 최대 시민단체 가운데 하나인 ‘4월6일 청년운동’ 회원이었던 사페이 알리 엘딘은 엘시시 정권을 비판했다가 자신의 어머니 신고로 체포돼 나흘간 구금된 적도 있다. 엘딘은 “어머니는 TV뉴스 앵커가 ‘운동가들은 나라를 망치려고 하는 반역자’라는 말을 믿고 있다”고 말했다.

반(反)정부 인사들을 향한 칼날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이집트 남부 민야지방법원은 지난해 경찰관 살해와 폭력 등의 혐의로 기소된 무르시 전 대통령 지지자 683명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민야지법은 이 판결이 나기 한 달 전에도 비슷한 혐의로 기소된 다른 무르시 지지자 529명에게 사형을 선고했었다. 이어 법원은 2011년 시민혁명을 주도한 사회운동가를 포함한 230명에 대해 올 2월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온라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시민혁명을 확산시킨 블로거 알라 압델 파타에게도 징역 5년을 선고했다.

● 모스크ㆍ이맘 통제 등 종교 장악도 시도

엘시시 대통령은 이슬람 원리주의를 따르던 무르시와 그의 추종세력인 무슬림형제단을 와해시키기 위해 종교 통제도 강화하고 나섰다. 그는 이집트 전역의 모스크(이슬람 사원)와 이맘(이슬람 성직자)을 자신의 손바닥 안에 두려는 작업을 수개월간 이어오고 있다.

이슬람 종교부는 최근 규모가 80평방미터 이하인 모스크가 일일 기도실을 운영하는 것 외에 예배나 설교를 진행하지 못하도록 제재를 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국의 2만7,000여개 모스크가 문을 닫았다. 30대 청년 압둘라만은 포린폴리시(FP)에 “10년 동안 인근 ‘라마 모스크’에 다녔는데 이제 다닐 수 없게 됐다”며 “이맘이 지난 2월 ‘주요 예배는 이곳이 아닌 도심의 큰 모스크에서 진행될 것’이라고 알려줬다”고 말했다.

종교부는 아울러 지난해 1월 발효한 법에 따라 자격증이 없는 이맘의 활동을 금하면서 이맘 1만2,000여명이 졸지에 무자격자가 됐다. 종교부는 이맘 자격증 획득을 위해서는 당국이 운영하는 특정 기관에서 교육을 받아야 하며, 관련 시험 역시 종교부를 통해서만 치를 수 있게 했다. 이집트 북부 기자 지역 모스크에 15년 째 다니는 왈리드는 “내가 다니는 모스크의 이맘이 활동하다 당국에 의해 ‘설교 금지’ 명령을 받았다”며 “지금은 모스크보다 차라리 교회가 더 자유로워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교회에는 쉽게 들어가지 않는 보안대가 모스크에 침입해 사람들을 체포해 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중동 문제를 연구하는 ‘카네기 연구센터’의 조지 파미 연구원은 “이집트 종교부는 종교 관련 시설과 교육 단체를 완전 장악하려고 시도 중”이라며 “모든 이맘에 대한 정보를 갖고 이들의 설교와 활동을 통제하려 나설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권단체 ‘이집트인권이니셔티브’의 아미르 이잣도 “이집트의 종교법은 종교적 다원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현 정권이 들어서며 법 집행 기준이 모호해졌다”고 평가했다.

● 인구 절반 젊은세대, 민주화 싹 다시 틔울까

이처럼 민주화 역행의 길을 걷는 이집트가 다시 열기를 되찾으려면 젊은 세대들이 ‘조용한 혁명’을 이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변화의 싹을 틔우고 이를 민주화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능성은 높다. 8,000만 국민의 절반이 25세 이하인 이집트에서는 최근 여성들이 히잡(무슬림 여성들이 신체를 가리기 위해 쓰는 가리개)을 벗기 시작했으며 무신론이나 성 정체성 등 그 동안 금기 시 됐던 주제와 관련해서도 토론을 시작하게 됐다고 FP는 전했다. 카이로 소재 한 연구단체가 연구한 중동 국가 내 무신론자 2,293명 중 866명이 이집트에서 활동하고 있다.

특히 2011년 시민혁명을 경험한 젊은이들은 이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자유를 쟁취할 수 있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카이로 소재 한 대학에 다니는 마이라 카이나는 “언제든 우리 힘으로 옳지 못한 것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지난 시민혁명 이후로 더 많은 사람들이 변화나 자유의 가능성을 봤다”고 FP에 설명했다.

파미 연구원은 “엘시시의 정권이 힘을 얻어가면서 이에 반감을 갖는 젊은 세대들의 움직임 또한 커질 것”이라며 “주목해야 할 것은 앞으로 이들이 기저에서 만들어 낼 ‘조용한 혁명’이다”라고 밝혔다.

신지후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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