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합의 때 소녀상 언급
“한국정부 적절히 해결 노력”
애매한 절충으로 예견된 실책
정부 “아베 바이든 통화에서
美, 日 행동 우려 표명” 불구
정상외교 공백 탓 외교력 격차
부산 소녀상 설치를 둘러싼 한일 간 갈등이 대미(對美) 설득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주한 일본대사 귀국 조치 등으로 공개적인 압박에 나선 일본 정부에 대해 별 뾰족한 대응 수단이 없는 우리 정부로선 미국의 ‘중재’ 등을 통해서 상황 관리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우리 정부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6일 바이든 미국 부통령과 전화 통화를 갖고 부산 소녀상 설치 문제를 비판한 것에 대해 “일본의 언론 플레이”라며 깎아 내리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앞서 일본 언론들은 아베 총리가 전화 통화에서 “한일 정부 간 합의를 역행하는 것은 건설적이지 않다”고 말했다고 전하며 한국의 외교 고립 기류를 부각시켰다. 일본이 발 빠르게 미국과 접촉해 지원 사격을 요청했고 미국도 이에 동조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 것이다.
하지만 정부 소식통은 8일 “바이든 부통령은 오히려 부산 소녀상 문제와 관련한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는 일본 측의 행동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안다”고 반박했다. 부산 소녀상 설치가 한일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 뿐만 아니라 일본의 대응 자제도 함께 당부했다는 것이다. 이 소식통은 “바이든 부통령이 그 같은 우려를 전달하기 위해 아베 총리에게 먼저 전화를 한 것인데, 일본 정부는 바이든 부통령의 언급은 빼고 언론에 흘렸다”고 말했다.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한일 간 갈등은 ‘중재자 미국’이 누구 편이냐를 두고 양국 간 기싸움 양상으로 자주 흘러왔다. 이번 부산 소녀상 문제에서도 미국의 태도를 놓고 한일 양국이 서로 유리한 해석을 내세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일본이 10억엔 거출과 “소녀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는 위안부 합의를 거론하며 성의 있는 태도를 요구할 경우 미국을 비롯한 국제 여론이 마냥 우리 정부에 유리하게 돌아가지만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특히 일본은 아베 총리가 직접 ‘소녀상 외교’에 나선 반면 우리 정부는 정상 외교 공백 상태에 빠져 있어 외교력에서부터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각에선 2015년 위안부 합의에서 소녀상 문제를 언급한 것부터 ‘예견된 실책’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의 집요한 소녀상 철거 요구에 대해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방향에 대해 관련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는 문구로 애매하게 절충한 것이 결국 터져 나왔다는 것이다. 국정 동력을 상실한 정부로선 시민단체를 설득하기 어렵고, 위안부 합의를 근거로 한 일본 측에도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는 처지에 빠진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도 미국을 의식해 한일 간 갈등 국면이 장기화 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라며 “당분간 냉각기를 가지며 양국이 감정 싸움으로 악화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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