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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사랑을 고백하는 방법

입력
2017.02.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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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양을 한 마리 그렸다. 쫑긋하고 가는 귀를 그리고 통통하고 짧은 다리, 까만 눈을 그렸다. 온몸을 꼬불꼬불한 털로 덮는 일은 조금 어려웠다. 양의 꼬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잘 떠오르지 않아 검색을 해 보았다. 그 다음엔 고슴도치를 그렸다. 이번에는 뾰족뾰족한 가시를 그리는 일이 어려웠다. 커다랗고 뚱뚱한 양 옆에서 작은 고슴도치는 괜스레 짠했다. 양털은 연한 민트색으로, 고슴도치는 노란색으로 칠했다. 스케치북 위에서 두 마리가 도란도란 떠드는 것만 같다. 이름도 지었다. 양은 보들이, 고슴도치는 따꼼이. 보들보들한 보들이가 따꼼따꼼한 따꼼이를 안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림을 벽에 붙여 놓았으니 이제 아기를 앉히고 이야기만 만들어주면 된다. 어부부부 하며 도화지에 손을 대고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집중하진 않겠지만 말이다.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아홉 살에 이미 접었지만 나는 여태도 꿈이 많은 중년이다. 장래희망은 쉼 없이 나를 찾아와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널렸다. 오래 전부터 난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소설을 썼다. 그리고 내 사랑을 들키고 싶어서 에세이를 쓰고, 그러고도 남은 사랑을 마저 다 꺼내주고 싶어서 또 한눈을 판다.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 참 부럽다. 목소리를 빌려 고백을 할 수 있다니. 시를 쓰는 사람도 그렇게나 부럽다. 내 속마음이 아닌 듯 능청스럽게 귀엣말을 할 수 있다니. 보들이 옆에 새끼 양 한 마리 더 그리고 싶은데 꼬불꼬불 털은 정말이지 어렵다. 고슴도치 가시도 어려운데. 털 없고 가시 없는 뱀을 그릴 걸 그랬나. 그랬다면 한 시간에 열 마리도 그릴 수 있는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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