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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던 소년은 왜 ‘본 투 킬(BORN TO KILL)’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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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던 소년은 왜 ‘본 투 킬(BORN TO KILL)’이 됐나

입력
2018.05.19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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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 목숨 앗아간 텍사스주 고교 총기 참사

17세 범인, 주변에선 “조용하고, 평범했다”

교내 풋볼팀, 그리스정교회 댄스팀도 활동도

SNS에는 ‘본투킬’ 문구 쓰여진 티셔츠 올려

권총, 칼 사진도… 총기 이용 비디오 게임 등 관심

컬럼바인 사건 범인 모방하듯 “매일 트렌치코트”

플로리다 참사 생존자들 “제발 뭐라도 하라” 분노

미국 텍사스주 고교 총기 사건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촛불집회에 시민들이 참석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텍사스주 고교 총기 사건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촛불집회에 시민들이 참석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최소 10명을 숨지게 한 미국 텍사스주 고교 총기 난사 사건 범인 디미트리오스 파구르치스(17)에 대한 주변의 평은 한마디로 “평범했고, 조용한 아이”였다. 그러나 그의 소셜미디어 계정에는 살인을 암시하는 사진이 여러 장 게시돼 있는 등 폭력성이 잠재 돼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그는 미국 최초의 고교 총기 난사 범죄였던 컬럼바인 사건 범인들의 상징이었던 트렌치 코트를 평소에도 즐겨 입는 등 모방범죄 흔적도 엿보인다.

플로리다 총기 참사로 17명이 숨진 지 불과 3개월 만에 발생한 고교 총기 난사 사건에 미국은 또 한번 충격에 휩싸였다. 미국 전역을 들끓게 했던 총기 규제에 대한 여론도 더욱 높아질 수 밖에 없어 보이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대해 구체적 조치를 내놓지는 않았다.

디미트리오스 파구어티스 파구어티스는 18일(현지시간) 오전 7시 45분께 휴스턴에서 남동쪽으로 50㎞ 떨어진 소도시 산타페에 있는 산타페 고교에서 자신의 아버지 소유인 엽총과 38구경 리볼버(회전식연발권총)를 마구 쏘아 학생과 교사 등 모두 10명을 숨지게 한 혐의로 붙잡혔다. 그는 복수의 일급살인 등 혐의가 적용돼 보석 불가 조건으로 구금됐다. 사망자 가운데 9명은 학생이고 한 명은 교사다. 부상자는 10여 명이며, 일부는 중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범인이 쏜 총은 그의 아버지가 합법적으로 소유한 것이라고 경찰은 말했다. 파구어티스의 아버지가 총이 없어진 사실을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CNN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파구르치스를 알고 있는 이들은 총격 사건 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가 총기나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이나 총기류에 관심이 있긴 했지만, 평소 조용하고 겸손한 학생이라고 증언했다. 드러내놓고 총격이나 살인에 대해 말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범인은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는 2016년 산타페 고교 소속 JV 풋볼팀에서 뛰었고, 그리스정교회 관련 댄스팀에서도 활동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 관련 특별한 예고도 없었다.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사건 브리핑에서 “용의자는 범죄 기록도 없고 평소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내지도 않았다”면서 이번 범행은 여타 총격 사건과 달리 “레드 플래그(위험을 알려주는 전조)를 알아차릴 수 있는 내용이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파구어티스의 소셜미디어 계정에는 총기류와 흉기의 사진, 독일 국수주의 표식과 살인을 암시하는 문구가 쓰인 티셔츠 등이 게재돼 있었다. 그의 페이스북에는 ‘살인하기 위해 태어난’(BORN TO KILL)이라고 쓰인 티셔츠 사진이 걸려 있다. 옷에는 독일의 국수주의 표식으로 보이는 문양도 장식돼 있었다.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침대 위에 권총과 칼, 토치를 놓고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파구어티스는 총기를 이용한 비디오 게임 사진도 찍어 같은 계정에 게시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일부 전문가들은 총기 살해범 다수가 앞서 벌어진 유사 사건의 범행 방식을 모방한다며, 파구르치스 또한 그렇다고 의심되는 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파구르치스는 1999년 세기 말 미국 전역을 충격으로 몰고 간 교내 첫 총기 참사였던 컬럼바인 사건 범인들의 특성인 검은색 트렌치코트와 산탄총, 폭발물 등의 옷차림과 범행 방식 등을 따라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 학생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범인이 “거의 매일 트렌치코트 같은 것을 입고 있었다”고 전했다.

보석 없는 조건으로 구금 갤버스턴 카운티 감옥에 구금된 파구르치스는 사건 발생 10시간쯤 뒤인 이날 저녁 법정에 출두해 짧은 심리를 진행했다. 그는 법원 지정 변호사를 요청했다. 판사는 그가 1급 살인죄로 기소됐으며 공무원 폭행죄로 가중처벌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당국은 공범으로 알려진 학생을 현장에서 체포해 조사 중이다. 공범들은 2명이며 총격 사건 자체에 가담한 것은 아니나 일부 관련된 점이 있는 것으로 일부 언론은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끔찍한 공격에 의해 슬픔에 잠긴 모든 이들에게 위로를 전한다”면서 “우리 행정부는 학생과 학교를 안전하게 지키고, 스스로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위협이 되는 그런 자들의 손에서 무기를 떼어놓도록 하기 위해 우리 권한 안에 있는 모든 일을 할 결의에 차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인 총기 규제 조치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플로리다주 파크랜드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교 학생들은 분노했다. 미 언론에 따르면 지난 2월 14일 더글러스 고교에서 일어난 총기 참사 사건의 생존자인 재클린 코린은 소셜미디어에 “산타페 고교 학생들을 향한 내 마음은 무겁다. 이건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한 비슷한 마음일 것”이라며 "이런 유행병이 당신네 마을에도 전해지다니 너무 미안하다. 파크랜드가 영원히 지지할 것”이라고 썼다. 코린은 그러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 아이들이 살해되고 있는데도 마치 게임인양 취급하고 있다. 이건 올해 22번째 학교 총격이다. 뭐라도 하라”라고 목청을 높였다.

WP에 따르면 1999년 이래로 교내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으로 최소 141명의 학생과 교직원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284명이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3개 학교에서 18만7,000 명의 학생이 총격 사건을 경험했으며, 학교 총기 위협이 미국에서 일상적인 공포가 됐다는 얘기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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