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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개입하면 질병관리본부 격상시켜도 효과적 방역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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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개입하면 질병관리본부 격상시켜도 효과적 방역 어렵다"

입력
2015.07.0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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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전문가들이 1일 서울 봉래동 한국일보 편집국에서 메르스 사태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다. 이들은 "메르스 발병 이후 보건당국의 방역 실패에 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며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알아야 앞으로 개선 방향도 찾을 수 있다"고 의견을 모았다. 왼쪽부터 김태형 순천향대병원 감염내과 교수,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 전병율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의료계 전문가들이 1일 서울 봉래동 한국일보 편집국에서 메르스 사태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다. 이들은 "메르스 발병 이후 보건당국의 방역 실패에 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며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알아야 앞으로 개선 방향도 찾을 수 있다"고 의견을 모았다. 왼쪽부터 김태형 순천향대병원 감염내과 교수,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 전병율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5월20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첫 환자 발생 후 국민들은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에 떨었고, 방역 당국의 무능함에 좌절해야 했다. 그러나 국가적 대혼란을 야기시킨 메르스 사태 초기, 보건 당국과 병원들은 어떤 결정과 조치를 내렸는지 여전히 속속들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의료 전문가들은 정부의 대응과정에 대한 진상 규명이 이뤄져야 제2의 메르스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쟁으로 비유되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전문가 4명이 1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편집국에서 토론을 벌였다.

토론자인 전병율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예방의학 전문의로 2011~2013년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냈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대한의학회 기획조정이사를 맡고 있고, 김태형 순천향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지난달 8일부터 중앙메르스대책본부 즉각대응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보건정책을 전공한 의사다.

-메르스 첫 환자 발생 이후 지금까지 메르스가 왜 이렇게 확산됐는지 보건당국의 대응을 평가해달라.

전병율=제일 아쉬운 건 5월20일 첫 환자를 확인했을 때 보건당국이 즉각적으로 현장을 봉쇄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이 적절하게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보건 당국이 공중보건 위기상황으로 판단했다면 환자 이동경로를 중심으로 봉쇄했어야 해야 하는데, 어떤 이유로 발 빠른 대응이 이뤄지지 않았는지 의아하다.

김윤=이번 사태 원인을 3가지로 꼽는다. 첫째는 초기 역학조사를 포함한 방역 실패, 두 번째는 정부의 비밀주의, 마지막으로 감염에 매우 취약한 의료체계다. 이 중 제일 중요한 요인은 정부의 비밀주의다. 전체 메르스 환자의 절반 이상이 14번 환자가 5월27~29일 입원했던 삼성서울병원에서 발생했다. 만약 정부가 27일 이전에 평택성모병원의 메르스 발생을 공개했으면 삼성서울병원에서 그렇게 많은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태형=첫째는 경험부족이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지식은 우리나라에서 통하지 않았다. 두 번째는 일할 사람이 없었다는 것인데, 즉각대응팀으로 현장에 가서 병원 폐쇄 등의 업무를 하다 보니 현장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것을 처절하게 느꼈다.

우석균=가장 큰 실패 원인은 정부의 정책 집행 의지의 부재라고 본다. 똑같은 방역실수를 되풀이 했고, 정보 공개가 늦었다. 삼성서울병원에 대해 실질적인 역학조사를 전면적으로 시작한 게 6월 8일쯤이다. 그땐 이미 전파가 끝나고 추적도 힘든 상태였다. 두 번째 실패 원인은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1일부터 박근혜 대통령이 메르스 대책을 언급했으나 실제 병원 전체 명단이 공개된 것은 7일이었다.

-메르스 방역 실무자들은 2003년 사스를 성공적으로 막아냈던 사람들인데 결과는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인가.

전병율=2003년 사스 유행 때 우리는 유입을 막기 위해 검역에 역점을 두고 의심환자가 있으면 입국하자마자 국가지정 격리병원에 입원시켰다. 그런데 이번에는 보건당국이 메르스의 감염력이 낮으니 병원만 통제하면 된다고 보고 병원명 공개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김윤=정부가 기본적으로 비밀주의적인 태도를 지향하고 있고, 아래에 권한을 주지 않는다. 위에서 다 결정하면서도 결정이 신속하지도, 현장 상황을 다 파악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와 똑같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정책 결정 권한이 지나치게 청와대에 집중돼 있고 의사결정 과정이 불투명하고 느리다. 이것이 사스와 메르스의 기본적인 차이라고 본다.

우석균=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병원명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로 “사회 혼란과 피해를 주기 때문”이라고 했고, 청와대 관계자도 6월 초 “의료사업에 피해를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세계보건기구(WHO)가 만든 ‘감염병 발생 소통 가이드라인’은 투명ㆍ신속한 공개가 오히려 사회적 피해를 줄인다고 보고 있다. 우리는 사태 초기 병원명을 공개하지 않아 공포가 전국에 퍼졌고, 몇 개 병원이 아닌 모든 병원과 사회 곳곳이 다 피해를 보게 됐다.

김태형=바이러스 특성에 따른 차이가 정책보다 중요한 차이였을 것으로 본다. 물론 더 빨리 공개됐으면 좋았을 것이다. 정부가 엄격한 지침을 삼성서울병원에 권고하고, 일찍 폐쇄하는 것을 지금은 당연히 해야 했다고 생각하지만, 당시 현장 지휘자가 그 일을 할 수 있었을지, 그에 대한 책임이 사람에게 있는지는 좀 더 신중하게 봐야 한다.

김윤=원인을 사람이 아닌 시스템에서 찾아야 한다. 평택성모병원에서 밀접 접촉의 범위를 ‘2m 내 1시간’으로 정한 것은 결론적으로는 잘못된 결정이지만, 당시에는 타당한 결정일 수 있다. 다만 이후에 예상치 못한 감염이 발생했는데 현장에서 유연하게 대처를 못했다. 신속하게 이뤄져야 할 결정이 지체된 것은 전문가가 과학적으로 내려야 할 방역 관련 결정에 부적절한 정치적 개입이 이뤄지면서 왜곡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질병관리본부가 청으로 격상되고 복수차관제가 도입돼도 이런 상황에서는 합리적인 방역이 어렵다.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스템을 바꾸면 되나. 집행하는 사람의 문제는 아닌가.

우석균=지역거점 공공병원이 많았다면 상황이 달랐을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공립병원 비율이 73%인데, 우리나라는 사립병원이 95%다. 위기 상황에서 국가가 동원할 수 있는 자원과 시스템이 전혀 없는 것이다. 공공병원을 중심으로 한 지역 방역체계가 없다 보니, 평택에서의 초동 대응 실패가 곧 전국적인 확산으로 이어졌다.

김윤=격리 범위 밖 첫 환자인 6번 환자는 5월24일 처음으로 증상이 나타났지만 28일에야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 사이 의사결정이 상당히 지연됐다고 본다. 결정이 필요한 중요한 시기에 결정이 미뤄지고, 문제가 커진 후에야 결정이 내려지는 일이 반복됐다. 그 때 왜 결정이 미뤄졌는지 국정조사를 통해서라도 밝혀야 한다. 5월29일 역학조사관이 삼성서울병원에서 출입을 통제 당하고 접촉자 명단도 늦게 받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병원이 거부하면 역학조사를 못 하는 게 대한민국 정부의 공권력인가. 이유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전병율=공권력 무력화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감염병을 관리하는 보건당국의 입장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우석균=5월29일 14번 환자를 찾았을 때 보건당국이 삼성서울병원에서 분명한 조치를 했었어야 했다. 6월2일 대청병원과 건양대병원은 부분 폐쇄가 됐는데 유독 삼성서울병원은 실제 역학조사도 6월8일에야 실시됐다. 5월29일~6월8일 삼성서울병원에서 국가 방역은 왜 공백 상태였는지에 대한 분명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김태형=정부가 어째서 사태 초기에 전문가 자문을 받지 않았는지는 미스터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런 규모의 감염병 확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충분한 전문가나 조직이 없었을 것이다.

-진상규명과 별개로 우리 의료 시스템이 개선될 부분은 없나.

김태형=인프라의 문제가 크다. 강원도에서 메르스 환자가 발생해 강릉의료원에 입원했는데 병원에 감염내과 의료진이 없어 춘천의 강원대병원 교수가 강릉까지 가서 환자를 진료했다. 우리나라는 지역사회에서 대규모 환자가 발생했을 때 수용할 수 있는 시설과 인력이 없어, 민간 의료인력이 뛰어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군대로 치면 군인에게 “M16이랑 탱크도 사서 오라”는 식이다.

우석균=공공의료는 꼭 필요한 사회적 인프라다. 하지만 우리 공공병원은 “소외계층이 가는 곳”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있고, 감염병 등을 치료할 역량이 갖춰지지 않았다. 공공병원을 평가할 때 수익성이 기준이 되니 3년 연속 적자가 발생하면 병원장을 해임할 수도 있다. 공공의료 인프라를 강화하지 않으면 감염병이 들어왔을 때 곧바로 재난상황이 된다. 강원도에서 발생한 환자가 치료받기 위해 태백산맥을 넘어야 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현 정부는 의료를 수익을 올려야 하는 산업으로만 보고 있다. 영리병원까지 허용하려는 의료 영리화 정책을 중단해야 한다.

김태형=당장 세금 더 내서 공공병원 짓는 건 쉽지 않다. 보건소에서 환자들을 분리해 선별진료를 할 수 있게 하거나, 지자체가 민간병원과 효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본다.

김윤=방역을 전쟁에 많이 비유한다. 전쟁은 발생 확률이 굉장히 낮은데도 돈 많이 쓴다. 대비가 안 돼 있으면 나라가 망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인구가 8배, 1인당 국민소득이 1.5배인데 방역에는 25배가량 더 많이 쓴다. 우리도 인력 확보 등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

전병율=우리나라는 민간병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체계지만 감염병 부분만큼은 중앙정부 산하에 공공병원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이번 사태를 겪으며 뼈저리게 느꼈다.

정리=한준규기자 manbok@hankookilbo.com

남보라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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