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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제비들이 찾아오셨다

입력
2017.06.07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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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제비들이 찾아오셨다. 우리 집 식구들은 귀인을 맞이하듯 제비들을 반겼다. 요즘 제비 구경하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제비들이 우리 집 한옥에 찾아 든 건 오월 초순. 제비들이 작년에 지은 집 주위를 맴돌기에 그 집을 재활용하려나 보다 했다. 그러나 옛집이 맘에 안 들었던지 흙과 지푸라기 같은 것들을 물어와 옛집 옆에 새 집을 짓기 시작했다. 드디어 일주일 만에 깔밋한 제비집이 완성되었다. 우리 집 식구들은 집 짓기가 끝난 날 제비집 아래 모여 짝짝짝 박수를 쳐주었다.

그렇게 입주를 마친 제비들은 지금까지 알을 품고 있다.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 잠깐 집을 비울 때를 빼고는 암컷이 늘 둥지를 지킨다. 어느 날 밤중에 가만히 전등으로 제비 둥지를 비춰 보았더니, 암컷은 둥지 속에, 수컷은 암컷을 지키느라 그러는지 둥지 아래 박힌 긴 못 위에 앉아 있었다.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제비 부부의 지극한 정성에 문득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 후 우리 식구들은 해산 중인 제비 둥지 밑을 지날 땐 발소리조차 크게 내지 않으려 조심하곤 했다.

우리 식구들이 이처럼 제비들의 산파역을 자처하는 건, 불임의 시대를 살기 때문이다. 주민의 90% 이상이 노인들인 마을에는 배부른 임신부도 찾아보기 어렵고 아기 우는 소리도 거의 들을 수 없다. 그래서 논밭에서 들리는 개구리 울음소리나 짝을 찾아 우는 숲의 새소리도 예사롭지 않아 흔감하게 된다. 생명의 회임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생명의 회임보다는 불임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아기 못 낳는 부부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23만여 쌍의 부부가 불임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인구 절벽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불임도 인구 절벽에 한 몫 하는 셈이 아닌가.

불임의 원인은 무엇일까. 유전자조작 식품의 유해성을 경고하는 학자들은 젊은이들의 불임이 그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GMO 수입국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현재 우리가 대형 마트에서 사먹는 많은 식품들이 GMO 수입농산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러니까 불임으로 고통 받는 부부들은 무려 지난 20여 년 동안 그런 유해한 식품을 먹어 왔다.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해 농부들은 다른 모든 식물을 죽이는 제초제를 살포한다. 더 많은 재화를 얻기 위해 생명의 단절조차 서슴지 않는 것이다.

유전자조작 농산물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먹는 많은 식재료는 생명을 죽이는 독극물인 제초제를 뿌리고 생산된 것들이 많다. 제초제는 빗물에도 잘 씻기지 않고 우리가 먹는 식재료 속에 스며든다. 오늘날 젊은이들의 불임은 이처럼 죽음의 기운을 머금은 농산물로 만든 식품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숱한 암과 희귀성 질병 또한 이런 식품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건강한 먹거리를 걱정하는 이들의 증언이다.

저물 녘 산책을 나서 농로를 걷다 보면, 논밭 가의 풀들이 샛노랗게 죽어가는 걸 보곤 한다. 섬찟하다. 제초제의 기습을 받은 생명들. 그렇게 죽음의 기운이 퍼져 변색된 풀들을 보노라면 몸과 마음이 한없이 무지근해진다.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지구생명을 핍박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생각하지 못하는 상상력의 결핍이 아닐까. 농토의 오염은 먹거리의 오염으로 이어지고, 먹거리의 오염은 우리 몸의 질병과 생명의 단절로 이어지지 않던가.

이런저런 걱정에 신산스런 마음으로 대문을 들어서는데, 수돗가에서 저녁 찬거리를 씻던 아내가 낭랑한 목소리로 소리친다. 여보, 제비 새끼들이 드디어 알을 깨고 나온 모양이에요. 나도 울가망한 기분을 떨치며 맞장구를 친다. 어허, 경사 났군, 경사 났어!

고진하 목사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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