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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요시다 세이지와 훈 할머니

입력
2014.09.14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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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가 최근 아사히신문 위안부 관련 오보 인정사건을 두고 시끄럽다. 사건의 발단은 요시다 세이지라는 일본인이 일제시대 제주지역에서 200여명의 여성을 강제로 연행했다는 내용의 증언집을 1982년 출판했는데, 아사히가 이를 토대로 1990년대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을 인정하는 기사를 다수 작성한 데서 비롯됐다. 아사히는 지난 달 요시다의 증언을 뒷받침할 만한 자료를 찾지 못했다며 관련 기사를 모두 취소한다고 보도했다.

아사히의 오보 인정에 일본내 보수세력은 일제히 아사히 때리기에 나섰다. 요시다의 거짓 증언을 토대로 작성한 아사히의 기사로 인해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로 연행했다”는 인식이 전 세계에 뿌리내렸고, 일본인의 명예가 실추됐다는 논리다. 보수 정치인들은 이를 계기로 위안부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가 하면, 기사를 작성한 담당 기자를 국회에 불러 청문회를 갖자고 맹공격하고 있다.

산케이신문 등 보수언론은 연일 시리즈를 통해 강제연행만 없다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일본이 비난 받을 일은 없다는 식으로 호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아사히는 자사를 비판하는 저널리스트의 칼럼 게재를 거부한 것이 문제가 돼 사장까지 나서 기자회견을 갖고 공식 사과하는 등 창사 이후 최대의 위기에 직면했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을 지켜보면 일본의 여타 언론이 과연 아사히를 질타할 자격이 있는 지 의문이 든다. 1990년대 초 당시 아사히뿐 아니라 일본의 모든 언론은 요시다의 증언을 액면 그대로 보도했다. 하지만 산케이를 제외한 다른 언론이 요시다 증언이 오보였음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기사를 게재한 곳은 없었다. 단지 요시다 증언의 신빙성이 낮아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기사화하지 않았다는 정도의 해명만 늘어놓고 있다.

아사히의 요시다 증언 오보 인정을 계기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훼손된 일본인의 명예를 되찾겠다고 부르짖는 보수 세력들의 외침은 더욱 가당찮다. 이들은 요시다의 증언이 한국에 보도되면서 한국내 대일감정이 악화했으니 이를 되돌려야 한다는 논리다. 일본군 위안부는 성노예라는 인식이 서구 사회에 자리잡은 것도 요시다의 증언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요시다의 증언이 초창기에는 한국에서 크게 보도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내 얼마 지나지 않아 제주의 지역신문이 요시다의 증언은 근거가 없다는 기사를 게재했고, 지금도 한국 언론에서 요시다의 증언을 사실로 취급하는 곳은 없다.

오히려 한국인의 뇌리에 남아있는 위안부 사례는 1997년 본보가 특종 보도한 훈 할머니를 꼽을 수 있다. 일제시대 위안부로 끌려가 일본군에 의해 대만과 싱가포르 등을 전전하다가 캄보디아의 시골에서 발견될 당시 훈 할머니는 모국어인 한글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 한국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훈 할머니는 당시 “좋은 일이 있다고 해서 따라갔는데, 집결소에 100명이 넘는 여성이 있었고 그들 모두 위안부로 끌려간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일본내 보수 우익세력은 훈 할머니처럼 감언이설에 속아서 위안부로 끌려간 사례에 강제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에 극구 반발하고 있다. 그들은 요시다의 사례처럼 일본군과 헌병이 총칼을 앞세우고 가정집에 들어가 가족들을 뿌리치고 억지로 끌고 나와 위안부 생활을 시킨 것만을 강제로 인식한다. 이 때문에 요시다의 증언이 거짓으로 판명난 이상 위안부 강제연행이라는 말도 취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그들은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감언이설로 꾀어 북한으로 데려간 일본인들에 대해서는 북한측이 강제로 끌고 간 납치에 해당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위안부의 꾀임은 강제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일본인 납치 피해자의 강제는 인정해야 한다는 상반된 논리가 어디까지 통할지 궁금하다.

한창만 도쿄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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