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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선생님 덕분에 목숨 구했어요” 우즈벡 청년 압보스의 특별한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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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선생님 덕분에 목숨 구했어요” 우즈벡 청년 압보스의 특별한 인연

입력
2017.03.27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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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벡 유학생 압보스(왼쪽)와 최미경 대구외국어대학교 교수.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우즈벡 유학생 압보스(왼쪽)와 최미경 대구외국어대학교 교수.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압보스, 왜 수업 시간에 사탕을 물고 있어?”

2016년 2월의 일이었다. 대구외국어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최미경(55)교수가 수업시간에 우즈베키스탄 출신 압보스 벡(Abbos bekㆍ22) 학생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오른쪽 뺨이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사탕이 아니었다. 뺨이 부풀어 오른 것이었다. 최 교수가 병이 난 건 아니냐고 물었지만, 압보스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안 아파요. 그래서 괜찮아요.”

얼마 후에는 관자놀이까지 부풀어 올랐다. 압보스는 “삼촌이 의사라서 사진을 찍어 보여줬더니 1년 후에 우즈벡에 돌아오면 수술하면 된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나름대로 진료까지 받았다는데 더 이상 입을 댈 수는 없었다.

그러다 직접 의사에게 환부를 보일 기회가 생겼다. 치과 진료를 통해서였다. 최 교수는 일요일마다 학생들을 데리고 무료 치과 진료소로 간다. 진료소에는 사과나무치과를 비롯해 7개 치과에서 돌아가면서 무료진료를 한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치과에 한 번도 못 가본 학생도 적지 않은 까닭에 최 교수 가장 신경 쓰는 일이다.

압보스와 진료소를 방문한 날, 마침 구강외과전문의가 한명 진료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는 “심상치 않다”면서 자기 병원으로 찾아오라고 했다. 간단한 종양으로 예상했지만 검사를 해봤지만, 개인병원에서는 수술이 어려울 정도로 종양이 컸다. 그 의사는 더 큰 병원을 소개해줬다. 영상 촬영 결과 병명은 혈관섬유종으로 나왔다. 의사가 “악성인지 양성인지는 열어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한 달여의 검사를 거친 후 2016년 3월에 경북대병원에서 수술대에 올랐다. 11시간이 걸린 대수술이었다. 종양이 얼굴 뼈를 감싸고 있어서 오른쪽 얼굴 뼈를 제거했다. 수술 후 25일 동안 병실에서 생활했다. 최 교수는 수술하던 날부터 사흘 동안 옆을 지켰다. 이후로 학생들과 돌아가며 압보스를 간호했다. 압보스를 위해 최 교수와 제자들이 한 사람처럼 똘똘 뭉친 시간들이었다.

압보스는 병상에 있던 날을 회상하면서 “친절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외국인들이 친절하다고 하는 말은 마음이 좋다, 고맙다는 뜻”이라면서 “주변 사람들 덕분에 목숨을 구했으니까, 최상의 칭찬을 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1년 뒤에 수술을 하려고 기다렸거나 우즈벡에 있었다면 살아날 가능성이 없었다. 우즈벡의 의료 수준으로는 시도하기 힘든 수술이었다는 것이 의료진의 말이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문제는 병원비였다. 천만 원 가까이 나왔다. 압보스는 퇴원 후 쉬지도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아직도 빚이 많이 남아 있지만, 한국으로 올 때 세웠던 계획을 차근차근 실천하고 있다. 복학해서 2년 어학 과정을 모두 마치고 서울대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압보스는 “지난 1년 동안 많이 힘들었지만 동시에 행복했다”면서 “한국에서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게 돼 너무 좋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압보스가 서울, 혹은 다른 어디로 가든 꾸준히 연락하고 지낼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 와서 잘 됐거나 제대로 자리 잡은 제자들은 잊고 지내요. 걱정할 일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압보스처럼 아프거나 힘든 친구들은 늘 신경을 쓰고 연락을 주고받아요.”

최 교수는 학생들 사이에 “한국 엄마”로 통한다. 말 그대로 엄마다. 압보스처럼 병원 진료는 물론이고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최 씨의 영향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SNS가 24시간 열려 있다. 모르는 한국어 단어를 비롯해 일자리 상담에서 길을 알려달라는 질문까지, 말 그대로 엄마와 대화하듯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건다.

최 교수는 10년 가까이 유학생뿐 아니라 외국인근로자와 이주여성 등 다양한 외국인을 가르쳐왔다. 그 덕에 베트남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캄보디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우즈벡 등 아시아 전역에 제자들을 두고 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각국의 제자들을 만나러 동남아를 투어하고 싶다고 했다.

“동남아 어딜 가도 가족 같은 제자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아시아 전체가 그리운 고향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와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도 한국을 그렇게 기억하고 추억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을 ‘친절한 나라’로 생각하는 압보스도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우즈벡이 다 아는 훌륭한 인재로 자랐으면 합니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압보스와 그의 고향 친구들, 최미경 교수(가운데)가 학교 본관 앞에 모여 포즈를 취했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압보스와 그의 고향 친구들, 최미경 교수(가운데)가 학교 본관 앞에 모여 포즈를 취했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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