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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독고다이'면 왜 한국당 대표 됐나

입력
2017.08.0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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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취임 한 달, 비전ㆍ리더십 기대 이하

막말 등 '뒷방정치' 즐기며 자기합리화 몰두

'봉숭아학당' 떠나 변화ㆍ확장 구상 내놔야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24일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이날 임명장을 받은 혁신위원위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24일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이날 임명장을 받은 혁신위원위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오두막이 행복하지 않으면 궁전도 안전하지 않다."

한때 집권 역량도 꿈도 없는 '멍청한 당'으로 조롱 받던 영국 보수당을 혁신해 200년 역사의 대중정당으로 키운 벤저민 디즈레일리(1804~1881)의 말이다. 19세기 중반 빈부격차와 불평등으로 인해 두 개의 국민으로 갈라진 영국을 보고 '국민에게 개혁을 주지 않으면 국민이 우리에게 혁명을 줄 것'이라고 경고한 뜻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른바 '따뜻한 보수' 혹은 '온정적 보수주의'의 토대가 된 이 철학은 변화에 대한 유연한 대처와 함께 노동계급을 아우르는 모든 계층으로 보수당의 기반을 넓히는 동력이었고, 지금껏 보수당의 면면한 전통으로 이어진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달 말 휴가를 떠나며 정국 구상을 위해 이 글귀가 나오는 박지향 서울대교수의 책 '정당의 생명력-영국 보수당'을 들고 갔다고 한다. 측근들은 "곡물법 파동 등으로 분당된 후 국민에게 외면 받고 존립마저 불투명하던 보수당이 오늘날까지 강한 생명력을 유지해 온 역사로부터 당 혁신의 시사점을 얻겠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2010년 43세의 데이비드 캐머런을 내세워 정권탈환에 성공한 보수당처럼 서둘러 변화 적응력을 키우고 유능한 젊은 피를 수혈하라는 제언이 줄을 이었던 것도 의식했던 것 같다.

홍 대표가 휴가지에서 취임 한 달을 맞았다. 지난달 3일 '보수우파 재건의 대장정'을 선언하며 한국당의 키를 쥔 그는 육참골단(肉斬骨斷)의 혁신을 약속했으나 우파 인사 일색으로 혁신위를 꾸리고 문재인 정부에 몇 번의 몽니를 부린 것 외에 남는 기억이 없다. 원외라는 한계와 취약한 당내 기반 등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본인이 '독고다이(특공대)'라고 표현했듯 팀플레이보다 개인플레이에 익숙한 체질을 벗지 못한 탓일 게다. 그는 주로 페이스북을 이용한 '뒷방정치'를 즐겼을 뿐, 원내 의석 107석의 제1 야당 대표에 걸맞은 비전과 리더십을 보여 주지 못했다. '우파 사이다'로 불린 그에게 기대하던 보수세력도 실망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이런 기대와 실망을 알만한 홍 대표는 휴가에서 돌아와 어떤 구상을 풀어 낼까. 최근 자신에게 문 정부 견제 책임과 언행의 품격을 따지고 분발을 촉구한 보수 언론인의 칼럼을 일일이 반박한 내용을 보면 한국당의 오늘과 내일을 고심한 흔적은 거의 없다. 우선 그는 막말 논란에 대해 '참된 소통을 위한 소박한 대중적 언어구사'라고 강변했다. 충동적이고 즉흥적이라는 비판에 대해선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판단과 결정이 빠른 것'이라고 되받았다. 좌파정책 견제가 솜방망이라는 지적에는 "잘못된 좌파정책이 축적되고 국민이 잘못된 정부라고 자각할 때 본격적인 전쟁을 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피해 갔다. 바른정당 등과의 보수통합 문제에는 "첩이 아무리 본처라고 우겨본들 첩은 첩일 뿐"이라고 비꼬았다.

SNS에 올린 가벼운 대꾸라고 해도 변명과 자기합리화로 일관한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보수우파 재건 사명에 전념하겠다고 되뇌지만, 정작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라는 물음에는 답이 없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개혁 드라이브가 과속과 정원 초과로 사고를 내면 그 반사이익과 떡고물로 영남권 등 특정지역에서 기생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런 리더십으로 패거리는 모을 수 있을지 몰라도 보수 적통 운운하는 것은 우습다.

그는 늘 자족하는 삶을 산다고 했다. 자족이 안주를 뜻하고 정당 대표가 장사치라면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제 당 혁신위가 내놓은 반쪽짜리 혁신선언문의 진단이 아니라도 작금의 자유한국당은 나침반을 잃고 방향타도 고장 난 배 신세다. 100명이 넘는 의원들이 모여 있지만 '봉숭아학당'처럼 어수선하고, 각자도생만이 유일한 생존공식이다. 변화 대처나 외연 확장은 꿈도 못 꾼다. 홍 대표는 기다리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젠 물어야겠다. '독고다이'로 놀 거면 왜 한국당 구원투수로 나섰냐고. 언제까지 감나무 밑에서 입만 벌릴 것이냐고.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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