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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수도도 못 쓰나... 울먹이는 달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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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수도도 못 쓰나... 울먹이는 달터마을

입력
2016.09.2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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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지개발사업에 밀려난 달터마을

공동수도에 관 연결해 사용했지만

관리인 돌연 “요금 합산해 재부과”

2지구 사용료 3~4배나 껑충 뛰어

조례에 ‘관리인에게 요금 일임’

경찰도 뾰족한 해법 없어 고민

달터마을 주민자치회는 이 마을 6가구의 수도공급을 중단한 후 수도배관에 접근하지 말라는 푯말을 세웠다.
달터마을 주민자치회는 이 마을 6가구의 수도공급을 중단한 후 수도배관에 접근하지 말라는 푯말을 세웠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156번지에는 ‘달터마을’로 불리는 무허가 판자촌이 있다. 요즘 이 곳에 사는 지체장애 3급 박모(44)씨는 용변을 해결하려 집에서 100m 떨어진 인근 공원 공중화장실로 향한다. 오른쪽 팔ㆍ다리가 마비된 박씨에게는 갔다오는데 40분이 족히 걸리는 먼 길이다. 집에도 번듯한 화장실이 있지만 지난 4월 수도공급이 끊기면서 반복되는 일상이다.

사정은 이랬다. 올해 3월 주민자치회장이 된 정모(65)씨는 돌연 수도요금 계산 방법을 바꿨다. 3개 지구 224세대가 사는 달터마을은 지금까지 지구별 총 사용량을 가구 수로 나눠 수도료를 납부해 왔다. 하지만 정씨는 “수도관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요금을 합산해야 한다”며 1ㆍ2지구의 사용량을 합쳐 세대별로 부과하겠다고 일방 통보했다. 이런 식으로 계산하니 박씨가 속한 2지구 수도 사용료는 3,4배 껑충 뛰었다. 월 평균 7,000원 정도를 냈던 박씨도 졸지에 2만7,000원 넘는 요금 폭탄을 맞았다. 벌이를 할 수 없어 따로 사는 어머니(66)가 청소 일을 하며 주는 용돈 30만원으로 한 달을 버티는 그에게 2만원은 큰 돈이었다.

2지구 30세대는 기존처럼 요금을 납부하겠다며 항의했으나 정씨는 변경된 방식을 따르지 않으면 단수 조치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급기야 박씨 집을 포함해 반발이 심한 6가구를 본보기 삼아 수도관을 부수고 구멍을 시멘트로 막아 물을 끊어 버렸다. 수도를 쓸 수 없게 된 주민들은 지난달 24일 정씨를 형법상 수도불통 혐의로 서울 수서경찰서에 고소했다. 박씨는 20일 “약값과 식비, 각종 공과금을 내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는데 수도요금까지 오른 탓에 이번 폭염에 선풍기도 없이 지내야 했다”고 하소연했다.

수도요금을 둘러싼 이 마을의 갈등은 ‘공동수도 제도’에서 비롯됐다. 달터마을은 1980년대 초 시작된 개포택지개발사업에서 밀려난 저소득층이 옮겨 오면서 형성됐다. 당시 지구별로 공동수도를 만들었는데 주민들은 많게는 100만원이 넘는 사비를 들여 공동수도에 관을 연결해 가정에 물을 댔다. 지금도 서울시수도조례 시행규칙(5조)에 따라 무허가 판자촌에는 공동수도에만 요금을 부과할 수 있다. 문제는 조례에서 각 세대가 내는 물값의 징수 방식을 공동수도관리인에게 일임했다는 점이다. 공동수도관리인인 정씨가 요금산정 방법을 마음대로 바꿔도 조례에 저촉되지 않아 분쟁 소지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강남수도사업소 관계자도 “조례에 근거해 수도관리를 공동관리인에게 맡겨 수도 당국이 개입하기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현재 이런 무허가 판자촌은 서울에만 10곳에 달하며 달터마을을 비롯해 구룡마을 재건마을 수정마을 등 4곳이 강남구에 밀집해 있다.

물이 끊긴 여섯 세대는 마실 물조차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주민 이모(62ㆍ여)씨는 “퇴근하기 전에 회사 정수기 물을 페트병에 담아 귀가하고 주변에 물동냥을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웃 김모(62ㆍ여)씨도 “한 여름에 너무 더워 물이라도 자주 마셔야 했는데 수도가 끊겨 생지옥 속에 살았다”며 울먹였다.

각 가정에 설치비용 2만원 정도인 계량기를 달면 정확한 사용량을 파악할 수 있지만 이마저도 당국의 지원 없이는 쉽지 않다. 한 주민은 “인근 구룡마을에서 7,8가구씩 묶어 계량기를 설치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비용 부담을 꺼리는 가구가 더 많아 주변의 눈총을 받는다”며 “모든 세대에 계량기가 일괄 설치되지 않는 한 뾰족한 해법은 없다”고 설명했다.

고소장을 낸 주민들은 물 공급이 재개되려면 경찰 수사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수서서 관계자는 “사정은 딱하지만 피고소인인 정씨가 수도법상 관리인 지위를 갖고 있어 수도불통 혐의를 입증하기가 까다롭다”며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해 추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동수도 관련 법규를 고쳐 공공재의 사각지대에 있는 저소득층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 들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장원호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는 “무허가 판자촌 거주자들도 엄연히 해당 지역에 주민으로 등록이 된 사람들”이라며 “정부 시스템의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는 만큼 불합리한 조례 조항을 손질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ㆍ사진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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