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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장관 '숫자'에만 집착하면 낭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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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장관 '숫자'에만 집착하면 낭패 본다

입력
2017.05.1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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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유세 때부터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라고 외쳤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일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에 조현옥 이화여대 초빙교수를 임명했다. 인사수석비서관은 청와대 내에서도 요직으로 손꼽히는 자리로, 여성이 발탁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문 대통령은 향후 ‘남녀 동수 내각’을 구성하기 위해 시작부터 여성장관 비율을 30%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총 17개 부처 중 4~5개 부처에 여성장관을 임명하겠다는 것으로, 통상 여성장관의 자리가 1~2곳에 불과했던 점을 고려하면 매우 전향적인 인사다. 그렇다면 역대 정부에서의 여성장관직은 어땠을까. 그 역사를 되짚어봤다.

여성에게 허락된 자리는 언제나 한정적

우리나라 여성장관의 역사는 가늘고 짧다. 여성장관에게 허락된 자리는 제한적이었고, 역할 또한 미미했다. 역대 여성장관들이 역임한 부처는 상공부, 공보처, 무임소, 문화체육관광부, 교육부(옛 문교부 포함), 환경부, 보건복지부(옛 보건사회부 포함), 여성가족부(옛 정무2부, 여성특위 포함) 등에 한정돼 있다. 그나마도 상공부, 공보처, 무임소는 초창기 한 명씩 밖에 없다. 이승만 정권 때부터 박근혜 정권까지 총 41명(중복 포함)의 여성장관이 임명됐는데, 이 중 34명이 여가부, 복지부, 환경부, 문화부에 몸 담았다. 그 중에서도 여가부가 19명으로 제일 많고, 복지부(8명), 환경부(5명), 문화부(2명) 등이 뒤를 이었다.

역대 정권에서 여성들이 장관으로 역임했던 부처.
역대 정권에서 여성들이 장관으로 역임했던 부처.

반면 해외에서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여성을 주요부처의 장으로 임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표적인 자리가 국방·국무장관직이다. 독일의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네덜란드 헤니스 프랄셰르트, 노르웨이 에릭센 쇠레이데, 이탈리아 로베르타 피노티 등은 모두 여성 국방장관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힐러리 클린턴도 미국 국무장관이었다. 주목할 것은, 미국의 경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휘하기 전 15년 중 콜린 파월이 재임한 4년(2001~2005)을 제외하면 모두 여성이 ‘실질적 넘버2’인 국무장관직을 맡았다는 점이다. 매들린 올브라이트와 콘돌리자 라이스, 힐러리 클린턴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남성들만의 세계로 여겨졌던 외교ㆍ통상 분야에서 여성 특유의 섬세하고 감성적인 소통방식으로 훌륭한 외교적 자질을 선보였다. 이에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는 2012년 9월호에서 이들이 “남성들이 뚫을 수 없는 ‘유리 천장 위의 유리천장’을 만들었다”라고 평했다.

“우리도 할 수 있다” 보여준 여성장관들

우리나라에서도 국방장관까지는 아니지만, 주요부처에 여성장관을 임명하는 파격 인사가 더러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법무부 장관을 역임했던 강금실 변호사가 대표적이다.

강금실 전 법무장관. 한국일보 자료사진
강금실 전 법무장관.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3년 여성으로는 최초로 법무장관에 오른 강금실 변호사는 ‘첫 여성 법무장관’이란 상징성을 가졌지만, 당시 김각영 검찰총장보다 한참 후배인 판사 출신이란 점에서 검찰 내부의 집단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강 변호사는 기죽지 않았고, 도리어 취임 직후 호주제를 “남녀불평등을 야기하는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으며 호주제 폐지에 적극 나섰다. 그 결과 헌법재판소가 호주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2005년 민법 개정을 통해 2008년부터 아버지 중심의 기존 가족관계에서 벗어난 새로운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됐다. 이후 검찰에 개혁의 칼날을 겨누며 ‘공직자부패수사처’ 등을 도입하려다 실패하고 1년3개월여 만에 해임됐지만, 당시 야당의 한 의원이 “모처럼 장관다운 장관의 면모를 본다” “남자장관 다 합쳐놓은 것 보다 낫다”라며 추켜세웠을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2015년 8월20일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을 확정 받은 한명숙(가운데) 전 총리가 국회를 빠져나가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5년 8월20일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을 확정 받은 한명숙(가운데) 전 총리가 국회를 빠져나가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참여정부 후반 국무총리에 올랐던 한명숙 전 민주통합당 대표도 ‘한국 여성운동의 대모’라 불릴 정도 주목 받는 인물이었다. 한 전 총리는 김대중 대통령이 신설한 여성부의 초대 장관을 지내며 출산휴가 기간을 30일 연장하고, 출산휴가 중에도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후 2006년 4월 헌정사상 첫 여성총리로 지명되며 정치인생의 정점을 찍었고, 첫 여성 대통령을 꿈꾸며 2007년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 뛰어들기도 했다. 하지만 뇌물 수수의혹으로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르며 조금씩 신망을 잃기 시작했다. 한 전 총리는 5년 여간의 지루한 법정공방 끝에 2013년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이후 또 다른 뇌물수수 혐의로 다시 기소돼 징역 2년을 선고 받았다.

한명숙 의원 정치자금법 위반 심급별.
한명숙 의원 정치자금법 위반 심급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여성장관들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며 인정받은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더러 있었다. 여성 인력풀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수적인 평등만 맞추려 하다 보니 전문성이 떨어지는 등 필요이상의 논란이 일기도 했다. 초창기 환경부가 대표적이다. 환경부의 경우 변호사 출신의 황산성 장관을 시작으로 연극인 손숙, 교수 김명자 등이 장관을 지내면서 특히 잡음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황산성 장관의 경우, 비전문가라는 비난과 함께 태도 면에서도 숱한 논란을 야기했다. 황 전 장관은 보건사회연구위원회 회의에서 “오래 서 있으면 다리가 아프니 앉아서 답변하라”는 한 의원의 말에 “계속 서 있겠다. 그래야 의원들이 불쌍하게 생각해 일찍 끝내줄 것이 아니냐”고 말해 질책을 받았다. 또 “부처의 입지가 약해서 무시당할 때는 김영삼 대통령이 나를 아끼니까 걱정없다”고 말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생쥐발언' 논란을 일으켰던 변도윤(왼쪽) 전 여성부 장관. YTN 캡처화면
'생쥐발언' 논란을 일으켰던 변도윤(왼쪽) 전 여성부 장관. YTN 캡처화면

이명박 대통령 때 여성부 장관을 지낸 변도윤 장관도 어처구니 없는 발언으로 입길에 오르내렸다. 당시 새우깡과 참치캔에서 각각 생쥐머리와 칼 등 이물질이 발견돼 먹거리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변 장관이 이 대통령과의 티타임에서 “생쥐를 튀겨서 먹으면 몸에 좋다고 하더라”라고 말한 것. 국민들의 커지는 불안을 달래지는 못할 망정 부적절한 비유와 발언을 해 장관으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했다.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의 청문회 캡처 화면.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의 청문회 캡처 화면.

박근혜 정부에서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윤진숙 장관도 청문회에서부터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질책을 받았다. 윤 장관은 당시 “중국의 수산물 총 생산량과 우리나라 수산물 총 생산량의 차이를 알고 있느냐” “항만권역이 몇 개로 돼 있느냐” 등 해수부 장관으로서 당연히 알고 있었어야 할 지식을 묻는 질문에 말끝을 흐리거나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답변해 빈축을 샀다. 윤 전 장관은 이후로도 같은 태도로 일관하다 결국 해임됐다.

여성 인력 양성에 초점 맞춰야

남녀 동수 내각을 구성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숫자’에 집착하다 ‘전문성’을 놓치는 것이다. 여성을 고위직에 기용하는 건 좋지만, 전문성 없는 여성을 숫자 맞추기 때문에 억지로 고위직에 앉혔다간 역효과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영애 서울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사회에는 남성장관의 잘못에 대해선 ‘이 사람 참 일 못해’라며 개인화 하는 반면, 여성장관이 일을 못하면 ‘역시 여자들은 안 돼’라며 집단화 하는 경향이 있다”라며 “잘못된 편견과 시선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전문성 있는 여성을 장관으로 기용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를 위해 여성 인재 풀을 구성해야 한다는 당부도 덧붙였다. 그는 “전문성 있는 여성은 굉장히 많은데, 분야에 대한 전문성만 있을 뿐 장관으로서 역할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장관으로서의 통솔력, 리더십 등을 갖춘 여성인재를 길러내 풀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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