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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박 사장이 팔아야 했던 것들

입력
2016.05.16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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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있잖아요, 박 사장의 손가락이 탁자를 살짝 어루만진다. 낡은 건물이나 가구 같은 걸 해체할 때 나오는 오래된 목재로 만든 거예요. 긴 시간 건조되어서 단단하고 색과 결이 자연스러워요. 탁자 위로 떨어지는 햇살도 달라 보이잖아요? 세월이 자기 색과 결을 찾아준 나무들이지요. 여기 탁자들은 일부러 이런 나무들로 만들었어요.

처음에 카페를 열려고 할 때는 단순하게 생각했어요. 혼자 있어도 좋은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는 것. 편안한 분위기와 맛있는 커피로 정중하게 손님을 맞는 거지요. 돈과 재미는 저절로 따라올 거라고 여겼고요. 그런데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더라고요. 개업 첫날 왔던 손님들이 기억나요. 칭찬을 많이 들었거든요. 빈티지한 공간이 마음에 든다며, 커피 맛도 좋고, 자주 오겠다고 했어요. ‘우리 동네에 이런 가게가 생겨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원래 여기 있던 프랜차이즈 피자 가게도 그랬지만, 저 건너편 구질구질한 가게들이 동네 분위기를 망치고 있거든요. 우리끼리 하는 얘기지만.’ 저는 최대한 예의 바르게 대답했어요. 모두들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이잖아요, 건너편 가게들이야말로 빈티지하지요. ‘우리끼리’라는 울타리 밖으로 슬그머니 빠져 나가보려 했던 건데요. 손님들은 제가 위트 있다며 오히려 좋아했어요.

우리 집 커피가 맛있다고 소문이 났지요. 어떤 손님이 그러더군요. 이태리에서 공부할 때 마셨던 커피 맛과 똑같다고. 사장님이 이태리에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가지고 온 게 아니냐고. 저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어요.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본 게 아닐 테니까요. 적당한 권위를 보이는 미소를 지으려 애쓰며 되물었어요. ‘이태리에 유학을 갔다 오셨어요? 무슨 공부를 하셨는데요?’ 저도 딱히 궁금한 것은 아니었지만, 손님이 원하는 것을 주고 싶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정말이지, 저쪽 벽에 걸려 있는 낡은 자동차 번호판을 보고 ‘미국에서 살다가 오셨나 봐요? 미시간에 사셨죠?’라고 물어보는 손님에게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런 걸 벽에 걸어놓았던 게 실수였어요. 점점 욕심이 생겼거든요. 예쁘고 좋아 보이는 물건은 모두 가게에 갖다 놓고 싶어졌어요. 그렇게 하면 예쁘고 좋은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라고 기대했고요. 하지만 잘못 판단한 것이었어요. 무엇인가를 파는 곳에는 무엇인가를 사려는 사람들이 오기 마련이에요. 사람들이 돈을 내고 사는 것은 대개는 자기에게 없는 것들이죠. 자기에게 충분히 있는 것들을 굳이 돈을 내고 사려 하지는 않잖아요.

메뉴판을 뒤적이다가 사장님이 즐겨 드시는 거로 달라던 손님이 있었어요. 제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아세요? 라면이나 김밥은 여기서 팔지 않습니다. 하하하. 농담이에요. 저는 그렇게 어리석지 않아요. 우리 카페의 자랑인 트리플 콘파냐를 추천했어요. 에스프레소 위에 휘핑크림 세 덩이를 띄우는 거예요. 한 번 맛보실래요?

박 사장이 커피를 가지고 돌아온다. 윗입술에 차갑고 부드러운 크림을 묻히면서 뜨거운 에스프레소를 마셔 보세요. 커피의 짙고 거친 맛이 혀에 아직 남아 있을 때 얼른 입술에 묻은 크림을 핥아 먹고요. 앗, 안돼요. 숟가락을 들고 휘젓지 마세요. 하얀 크림이 검은 커피 속으로 서서히 녹아 들어가는 맛을 즐겨 보세요.

카페는 왜 팔려고 하느냐고요? 언제부턴가 거울 노릇을 하는 게 지루해졌어요. 고작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성급하게 자신을 증명하려는 사람들은 재미없잖아요. 그럼 뭘 하고 싶으냐고요? 마당에 복숭아나무가 있는 집을 빌려서, 그 밑에 가마솥을 걸고 국밥을 끓여 팔고 싶어요. 뚝배기에 퍼 담아 주는 거죠.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물론 쉽게 이루어질 일은 아니에요. 마당까지 있는 집은 임대료가 얼마나 비싸겠어요. 무엇이든 팔아야 먹고 살 수 있겠지만요.

부희령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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