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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결로는 성소수자 인권보호 못해… 지도자가 시대정신 따라 결단 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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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결로는 성소수자 인권보호 못해… 지도자가 시대정신 따라 결단 내려야”

입력
2017.02.2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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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운 한양대 로스쿨 교수

대선 앞 차별금지법 갈등 비화

“사회적 합의 내세우면 못 한다”

종교계 반대 무릅쓴 결단 강조

“지지 안 하지만 차별은 반대?

대선주자들 발언은 양다리”

국가인권위원회가 2006년 국가에 권고한 차별금지법 제정이 대선을 앞두고 또다시 쟁점으로 부상했다. 10년 전에 비해 성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사회적 의식이 높아졌으나 정작 상당수 대선주자들이 보수 기독교 단체의 완강한 반대를 고려해 머뭇거리고 있기 때문.

2005~2006년 인권위 인권정책본부장을 지낸 한양대 로스쿨 박찬운 교수는 당시 차별금지법 권고법안을 국무총리에게 권고하는 데 핵심역할을 했다. 이 권고안을 기초로 이듬해 10월 차별금지법이 처음으로 입법예고됐으나, ‘성적지향’을 포함하는 데 대한 보수 기독교 단체의 강한 반발에 부딪쳐 끝내 통과되지 못했다.

지난 22일 한양대 연구실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박 교수는 “동성애 이슈는 한국의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리트머스지 역할을 하고 있다”며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서도 ‘사회적 합의’라는 말 뒤에 숨지 않는 정치지도자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2일 한양대 연구실에서 만난 박찬운 로스쿨 교수. 박소영기자
22일 한양대 연구실에서 만난 박찬운 로스쿨 교수. 박소영기자

‘차별’이 인권위의 주요 현안으로 떠오른 것은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후다. 초기 인권위의 업무가 경찰서, 교도소에서 벌어지는 고문 등 신체의 자유 침해와 관련된 것이 많았다면 인권위가 장애인 차별 방지 기구로 지정되면서 차별과 관련된 진정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박 교수는 “인권위가 차별방지법안을 권고하는 과정에서 처음엔 차별방지법 내에서도 비정규직 관련 고용문제에서 재벌, 경영자 단체에서 반발하고 성적지향 부문에서는 교계에서 들고 일어났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보수적 종교단체의 반대가 더 노골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100대과제 ‘차별금지법’… 황교안 법무장관은 무관심

차별금지법 제정은 진보정부의 과제만은 아니었다. 박근혜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도 차별금지법이 포함돼 있다. 박 교수는 “차별금지법 제정 진전이 안 된 이유는 법무장관이었던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차별금지법에 큰 의욕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황 권한대행이 굉장히 종교적인 분인데, 법무장관이 법무부에서 준비하는 법안에 관심이 없으니 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그러나 “보수 기독교단체들의 극렬한 반대만 없다면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지금까지 인권위의 권고안과 정치인들이 낸 차별금지법안이 여러 개가 있었고 공론화도 많이 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논의가 지금까지 이뤄진 데에는 여러 사회적 소수자 단체들 중에서도 성소수자 단체들의 왕성한 활동에 힘입은 측면이 크다. 박 교수는 “성소수자 인권문제가 우리나라의 여러 인권문제 중 가장 중요한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렇게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2000년대 들어 이들의 활동은 시간이 갈수록 강력해지고 있다”며 “이들은 국내에 자신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수단이 없으니 국제적 인권 수준을 강조한다. 과거엔 언더그라운드에 있던 이들의 목소리가 표면화 되고 본격적인 인권문제로 논의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인권 운동의 새로운 흐름이 되어가고 있다”이라고 말했다.

2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사회단체 115곳이 차별금지법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2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사회단체 115곳이 차별금지법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인권위법 차별금지 조항은 실효성 없어”

그러나 세간의 인식변화와 달리 차별금지법 제정을 둘러싼 갈등은 여전하다. 오히려 한때 차별금지법 제정을 찬성했던 정치인들마저 대선을 앞두고 인권위법에 ‘성적지향’에 따른 차별금지 조항이 있다는 점을 들어 별도의 차별금지법 제정이 불필요하다는 입장으로 후퇴하기도 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박 교수는 “인권위법은 가장 기초적인 수준의 차별금지를 명문화한 국가인권위 설치법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구체적 사건이 있을 때마다 법 부합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것이고 실효성이 없다는 것. 반면 차별금지법은 차별행위가 무엇인지 구체화하고 이러한 차별행위가 있을 때 어떻게 시정할 것인가를 규정한 일반법이다.

“교계 완강한 반대에도 ‘사회적 합의’ 내세우는 건 안 하자는 것”

박 교수는 “동성애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이들이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일부 대선주자들의 말도 “양다리를 걸치는 발언”이라며 비판했다. 박 교수는 “동성애는 기본적으로 존재론적인 관점에서 ‘이미 있는 것’이므로 지지의 대상이 아니며, 이들의 인권을 호불호의 문제도 봐서도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대선후보 본인이 동성애자들이 싫다, 지지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은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이 특정 집단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히는 것이나 다름없어 대단히 부적절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는 “대선주자들이 보수층의 표를 의식해 자기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는 것이 굉장히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 박 교수는 “인류 역사에서 소수자 인권보호가 다수결로 확보된 예는 하나도 없다. 그것은 인권의 기본을 망각한 것”이라며 “소수자 인권 보호는 시대 정신이며 정치 지도자는 이를 판단하고 사법적, 혹은 입법적 결단이 필요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동안은 갈등이 있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러한 결단들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현재 교계에서는 죽어라 안 된다고 하는데 ‘사회적 합의’를 내세우는 것은 결국 안 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한국의 인권문제는 대부분 평등의 문제로 바뀌어 가고 있다”며 “평등의 문제가 곧 차별의 문제며, 이를 국가적 차원에서 개선하겠다는 관점에서 차별금지법이 국가적 과제가 될 수밖에 없게 됐다”고 강조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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