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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미투’ 할 수 있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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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미투’ 할 수 있는 용기

입력
2018.02.02 04:4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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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기사 취지에 적극 공감하는데, 혹시 실명이 보도되면 어떤 의도가 있다고 생각할까 봐…”

오래 전 겪은, 떠올리기도 불쾌했을 일에 관한 취재에 용기를 내 실명으로 응해준 취재원이 마지막에 익명 보도를 요청했다. 이제서야 얘기를 꺼내는 의도가 뭐냐는 의심을 사기 부담스럽다는 게 이유였다.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의 검찰 내 성폭력 폭로 이후 공개적으로 피해 사례를 밝힌 두 번째 경우가 될 거라 여겼던 터라 허탈했다. 취재원 뜻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 우려에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성폭력 피해 사실이 드러나면 피해자 의도부터 검증하겠다고 현미경을 들이대는 게 그간에 보여진 행태다. 최근 논란이 된 한샘 성폭력 사건만 봐도 그렇다. 사장이 나서 대국민사과를 하고 고용노동부로부터 성폭력 예방을 위한 수시 근로감독까지 받게 됐지만, 정작 피해자는 문제제기 시작 단계부터 제기된 ‘꽃뱀’ 의혹에 직면해야 했다. 서 검사도 폭로 이후 인사 불만이 배경이라는 소문이 확산되자 “검찰조직 내 소문은 조직 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행위”라는 입장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가해자와 조직 병폐에 들이대야 할 메스를 되레 피해자에게 우선 들이대는 모순적 상황은 피해자의 침묵을 강요하고, 성희롱ㆍ성추행을 암암리에 용인하는 사회 구조를 공고하게 한다. ‘말이 칼이 될 때’ 저자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피해자에게 도덕적 무결성을 강요하는 2차 가해는 새로운 폭로나 고발을 막는데 큰 효과를 보인다.”고 말한다. 성폭력 폭로를 통해 얻을 이득이 그걸 공개함으로써 감내해야 할 사회적 편견과 수치스러움보다 큰 여성은 이 땅 어디에도 없다.

서 검사 사건을 계기로 불붙는 ‘미투 운동’은 그래서 중요하다. 홍 교수는 “2차 가해가 피해자를 고립시킨다면, 미투운동은 거꾸로 가해자를 고립시키겠다는 선언”이라고 말한다. 미국에서도 유명 영화제작자이자 영화계 권력자였던 하비 와인스틴이 성폭력을 당한 유명 여배우들의 앞다툰 ‘미투 운동’ 끝에 퇴출됐다. 각계에서도 ‘미투’가 잇따르며 가해자가 사과하거나 물러나는 성과를 거뒀다. 피해자에게 먼저 반응하는 연대와 아픔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은 보다 인간적인 사회, 한 발짝 더 앞으로 나간 사회를 위한 필요조건이다.

취재원에게 용기를 내 달라고 설득하면서 사실은 기자부터 입을 닫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때론 불이익을 입을까 봐, 때론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찍힐까 봐, 성희롱 앞에서, 혹은 원치 않는 신체 접촉 앞에서 눈을 감았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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