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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동북아 에너지 협력의 기회와 도전

입력
2018.06.27 18:4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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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ㆍ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협상이 진전을 보이면서 남북 경제협력과 동북아 에너지 협력이 새 동력을 얻게 됐다. 동북아 에너지 협력은 2000년대 초반부터 논의돼 왔지만 정치ㆍ경제적 장애요인들로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역사적 사례와 교훈은 새롭게 열린 기회를 어떻게 성공적 지역협력으로 이어지게 할지에 대한 시사점을 줄 수 있다.

유럽통합의 시발점이 된 석탄철강공동체(ECSC) 신화를 동북아에서 재현시키는 것은 정치적으로 매우 매력적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숨겨진 역설이 있다. ECSC는 미래 비전인 동시에 프랑스의 가장 큰 전리품이었던 루르(Ruhr)ㆍ자르(Saar) 지방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제시한 대안이었다. 또 자원 공동관리에서 시작된 유럽통합에 있어 에너지 협력은 1980년대 중반까지 진전이 가장 더딘 분야였고, 제도화는 거의 최근에야 이뤄졌다. 에너지는 전략 자원이고 국가관리기제가 첨예하게 맞물려 있어 국제적 조율에는 긴 호흡이 필요하다.

가스관이나 전력망 연계와 같이 여러 국가들이 참여하는 대형 에너지 프로젝트의 성공의 핵심은 서두르지 않고, 충분한 검토와 후속 조치를 하는 것이다. 과거 정부 시절 자원외교실패의 가장 큰 교훈은 정치적 동기에 의해 서둘러 진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원외교는 당시 상황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지만, 단기적으로 가시적 성과를 올리고 그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던 정치적 구조에 의해 왜곡되고 말았다. 정치적 판단은 차치하더라도, 여러 해외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실무진들과 그간 축적된 노하우는 지난 몇 년간 거의 초토화했고, 자원외교 포기를 스스로 복창하는 상황이 됐다. 그것을 지켜보며 과연 민감한 해외 에너지 사업에 용기 있게 달려들 실무진들이 얼마나 될까?

국제 에너지 협력에 있어 정치는 묘약이자 독약이다. 지정학적 긴장 위에서 국가 간 첨예한 이익이 수반되는 프로젝트의 수행에 있어 정치적 돌파구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경제적 이익을 ‘약간’ 희생하더라도 정치적 대의로 충분히 만회할 수 있고, 참여 주체들이 그 역할을 기꺼이 분담할 것이라는 논리는 ‘상당히’ 위험하다. 중장기적인 사업 타당성과 실행 가능성은 정치가 아니라 전문성의 영역에서 충분히 판단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대규모 초기 설비투자가 수반되는 유가스 파이프라인은 통상 20-30년 이상 장기 운영될 때 수익성을 가지게 되며, 그 시기 동안의 생산과 수요, 그리고 정치적 안정이 담보돼야 한다. 파이프라인은 일종의 ‘결혼계약’이다. 중간에 마음이 바뀌거나 조건이 달라지면 치명적인 위자료가 발생하고, 특히 초기 투자를 담당한 주체의 부담이 커진다. 단가와 수익성지표, 그리고 정치적 신뢰는 결혼 상대 고르듯 꼼꼼히 보는 것이 좋다.

협력기구와 제도를 만드는 것은 협력을 공고히 하는데 긴요하지만 그 자체가 목표가 되면 실패하기 쉽다. 제도는 실질 협력의 결과물로 도출될 때 지속성을 지닌다. 협력과 제도의 선언 이전에 충분한 네트워크와 연계성을 먼저 갖춰야 한다. 또 국제 협력은 누가 어떤 공공재를 제공하는지에 따라서도 성패가 좌우된다. 에너지 절감, 효율성 개선처럼 작지만 지속적, 반복적으로 수행될 수 있는 프로젝트들도 대형 에너지 연계나 인프라 사업 못지않게 중요하고, 향후 북한 등 동북아 지역에서 협력의 기제를 창출할 수 있다.

북한과 러시아에 대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동북아 에너지 협력의 본격 진전은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그동안 많은 밑그림을 그려 놓았고, 연계사업의 준비도 해 왔다. 여러 난관을 넘어 지역 에너지 협력을 성공시키기 위해선 한 발짝이라도 단단히 내딛는 행보가 필요하다. 인력과 정보 보강은 필수다. 상상력 위에 튼실한 토대가 덧붙여져야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이재승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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