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사회적 편견병’ 뇌전증, 약물로 70% 치료

알림

‘사회적 편견병’ 뇌전증, 약물로 70% 치료

입력
2018.02.08 18:47
0 0

1% 정도가 발병…경련ㆍ발작 증상

적절한 휴식·수면·스트레스 관리를

뇌전증은 정확히 진단받고 제대로 치료를 받는다면 대부분 치료가 가능하다. 게티이미지뱅크
뇌전증은 정확히 진단받고 제대로 치료를 받는다면 대부분 치료가 가능하다. 게티이미지뱅크

뇌전증(雷電症ㆍEpilepsy)은 사회적 편견이 심한 병이다. 특유의 경련과 흥분상태 탓이다. 우리나라는 2012년 사회적 편견을 줄이기 위해 병명을 간질에서 이같이 바꿨다. 심심찮게 ‘뗑깡부리다’는 말도 일본의 과거 뇌전증 병명인 ‘뗑깡(癲癎)’에서 유래됐다.

세계뇌전증협회ㆍ세계뇌전증퇴치연맹은 이런 편견과 오해를 줄이려고 2월 둘째 주(올해는 12일)을 ‘세계 뇌전증의 날’로 정했다. 뇌전증은 세계적으로 6,000만명 이상, 국내에서는 1% 정도(40만~50만명)가 앓고 있다. 신경계 질환에서 치매와 뇌졸중 다음으로 많다.

홍승봉 대한뇌전증학회 회장(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은 “뇌전증 환자 가운데 유전적 요인은 1% 밖에 되지 않지만 누구나 걸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확히 진단받고 경련을 잘 조절하면 정상생활도 가능한 병이다.

60% 이상, 원인을 알 수 없어

대뇌에는 수천억 개의 신경세포가 서로 연결돼 미세한 전기적 선호로 정보를 주고 받는다. 이 때 일부 신경세포가 비정상적인 흥분이나 동시적 신경활동에 의해 전기신호가 잘못 방출되면 1~2분에서 5분 정도 경련이나 발작이 생긴다. 경련이나 발작이 두 번 이상 반복해 생기면 뇌전증일 수 있다.

진단은 가족이나 보호자에게서 환자 병력을 자세히 들은 뒤 뇌에서 생기는 전기적 변화를 알아내는 뇌파검사(EEG)로 한다. 자기공명영상(MRI)과 양전자방출촬영(PET), 뇌혈역학적 검사(SPECT) 등과 같은 뇌영상 검사로 정밀 검사한다.

뇌전증 진단ㆍ치료에 첫 단계는 뇌전증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다른 질환을 구별하는 것이다. 예컨대 뇌전증이 아닌 스트레스, 우울증, 불안장애에 의해 경련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심인성 발작, 미주신경성 실신이나 부정맥, 심실빈맥, 심실세동, 심장마비 등과 같은 심장성 실신은 뇌전증과 전혀 다르다. 고혈이나 저혈당, 전해질 이상 같은 일시적인 이상과 동반되는 경력 발작도 뇌전증이 아니다.

뇌전증 가운데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은 검사해도 원인을 확인할 수 없는 특발성이다. 전체의 3분의 2 정도다. 나머지는 고혈압, 뇌졸중 등 뇌혈관 장애, 외상, 뇌염 등 감염병이나 뇌종양 등 뇌 안에 발생되는 기질적 질환이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뇌전증은 편두통, 실신, 뇌졸중, 이상 운동 질환(파킨슨병), 수면장애, 전환장애, 해리장애, 신체형 장애 등 뇌전증이 아닌 돌발성 증상과 헷갈릴 수 있다. 때문에 전문가 진단이 필수적이다.

최근 대한뇌전증학회 주관으로 중ㆍ고교 양호교사에게 설문한 결과, 상당 수 양호교사들이 뇌전증은 전염되며, 쉽게 유전되는 병이라고 답해 큰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뇌전증은 유전성향이 뚜렷한 질환이 절대 아니며, 전염되는 병은 더더욱 아니다.

손영민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쓰러지고, 몸을 흔드는 과격한 발작 증상을 뇌전증의 전형적인 증상으로 여긴다”며 “하지만 아주 잠깐 멍하거나, 일상생활과 비슷하나 약간 어색한 반복 행동을 하다 멈추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했다. 손 교수는 “극도의 피로나 스트레스, 과음 등을 피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면 큰 발작은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복통, 부정맥처럼 온갖 증상이 뇌전증과 헷갈릴 수 있다. 멍청하고 주의가 산만해 보이는 것도 그렇다. 편두통으로 오진 받아 2년 동안 해당 질환 치료만 받은 환자도 있다. 홍 회장은 “치매 환자가 뇌전증에 걸려 사리에 맞지 않는 행동을 반복한다면 뇌전증인지 치매인지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실신과 구분도 필요하다. 쓰러진다고 모두 뇌전증은 아니다. 뇌 탓이 아닌 맥박이나 혈압이 떨어져 발생하는 것은 실신이다.

약 임의로 끊으면 오히려 증상 악화

뇌전증은 잘 낫지는 않지만 대개 낫는다. 박용숙 중앙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뇌전증으로 진단 받은 환자의 70%는 항경련제를 일정기간 적절히 복용해 경련 발작을 멈추게 할 수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최근에는 신경세포 흥분과 발작을 억제하면서 부작용이 적은 새로운 항경련제가 개발돼 뇌전증 환자의 40%는 2~3년간 적절히 약물 치료하면 재발하지 않고 완치된다”며 “약을 복용하더라도 재발하는 40%는 5년 이상 꾸준히 복용해 소(小)발작 형태로 증세를 완화할 수 있으며, 나머지 20~30%는 수술로 치료 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뇌전증 치료약을 장기 복용하면 매우 위험해 빨리 끊는 것이 좋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손 교수는 “최근 사용 중인 항뇌전증약제들은 장기 투여에도 인체에 문제가 없다. 오히려 의사 치료권고를 무시하고 조기 중단하거나, 임의로 약을 바꿀 증상이 악화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고 했다.

항뇌전증약물로 조절되지 않는 20~30%의 환자들은 뇌절제술, 케톤 식이, 미주신경자극술 혹은 뇌심부자극술 등의 비약물적인 방법으로 높은 치료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비싼 검사비와 수술비가 걸림돌이었지만 2017년 7월부터 산정 특례 적용(보험 수가의 10%만 납부함)이 이뤄져 경제적 부담이 크게 줄었다.

뇌전증 환자가 결혼했을 때 병이 있다는 사실이 배우자나 배우자 가족들에게 알려져 파혼을 당하거나, 심지어 결혼한 뒤에도 이혼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이향운 이대 목동병원 신경과 교수는 “배우자가 될 사람에게 무조건 비밀로 하기보다는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고 적극적으로 함께 협조하면 치료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또한 “발작 조절, 복용하는 약물에 따라 임신과 태아에 미치는 영향이 다를 수 있지만 대다수 환자는 적절한 약물 치료와 함께 임신 전부터 철저히 준비하면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다” 고 덧붙였다.

홍 회장은 “뇌전증 환자는 적절한 휴식과 수면을 취하고 생활 스트레스를 관리해야 한다”며 “규칙적인 생활ㆍ식이ㆍ운동 습관을 갖는 것이 좋다. 심한 에너지 소모, 정서적 과잉 자극, 음주는 삼가야 한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