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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칼럼] 샌더스와 한국의 노정객들

입력
2016.01.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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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된 길 걸은 정치인에 열광하는 미국

정치 노선, 진영 넘나드는 한국과 대조적

권력욕 아니라면 합당한 사과, 설명 해야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 74세의 버니 샌더스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는 데는 한가지 이유가 있다. 정치인으로서의 진정성과 굴하지 않는 신념, 평생에 걸친 노력을 미국인들이 인정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페인트 판매상의 아들로 태어난 샌더스는 대학시절부터 베트남전 반대와 인종차별 철폐 등의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민주사회주의자를 표방한 그는 반세기 넘게 정치 노선을 한 번도 바꾸지 않고,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일관된 길을 걸어왔다. 민주ㆍ공화 양당에 속하지 않은 무소속으로 자신의 가치와 이상을 오랜 세월 묵묵히 피력한 결과가 시장 4선, 하원의원 8선, 상원의원 2선을 거쳐 대통령 후보로까지 이어졌다.

샌더스의 역정은 계파간, 정파적 이해관계와 개인의 명리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우리 정치인들하고는 대조적이다. 샌더스와 같은 연배인 70대 노정객(老政客)들이 한국 정치를 쥐락펴락하는 광경을 보면 차이가 더 두드러져 보인다. 정치 리더십 부재 상황에서 노정객들의 등장은 시대의 요청일 수 있다. 문재인 안철수 두 야권 리더의 정치적 경험 부족을 보완한다는 면에서 이들의 상징성과 경륜은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비록 총선을 앞둔 이미지 변신과 중도층 공략 차원의 선거전략이라 해도 현재의 정치구조상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정치 현실에도 불구하고 노정객들의 출현을 선뜻 받아들이기에는 내키지 않는 구석이 적지 않다. 과거의 행적과 경력이 지금 이들이 내세우는 주장과 얼마나 부합하는지 의심스러운 탓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구원투수로 나온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은 전두환 정권 시절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참여한 게 논란이 됐다. 그는 여야를 넘나들며 전국구와 비례대표 의원으로 4선을 지냈고, 동화은행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확정 판결을 받기도 했다.

국보위는 쿠데타와 수많은 광주시민의 죽음을 토대로 들어선 전두환 군사정권의 모태다. “부가세 폐지를 막기 위해 참여했다”는 그의 주장을 인정한다 해도 역사적 책임까지 피해갈 수는 없다. 그런데도 그는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 후회한 적이 없다”고 했다. 초야에 묻혀있다면 모르겠으나 제1 야당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자리를 맡은 마당에 적절한 태도는 아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권력을 추구한 행태와 비리에 눈감는 그의 모습도 실망스럽다. 역사 앞에서 최소한의 반성이나 사과가 있었더라면 ‘경제민주화 전도사’로서의 가치가 더 돋보였을 거라는 아쉬움이 든다.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이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으로 모셔온 윤여준 전 장관의 행보도 씁쓸하기는 마찬가지다. 박정희 정권 말기부터 김영삼 정권까지 정부와 청와대에서 활약한 그는 한나라당 의원을 마지막으로 정치권을 떠났다. 그러더니 2012년 대선 때 나타나 문재인 후보 캠프에 몸담았다가 얼마 안 가 안 의원 진영으로 가서 결별과 합류를 거듭했다.

진보진영 학자로 분류됐으나 ‘이승만 국부론’을 주장했다가 파문이 일자 사과한 한상진 공동위원장의 처신도 개운하지 않다. 이명박 정부에서 총리를 역임했지만 지금은 야권의 러브콜을 받고 몸값을 저울질하는 정운찬 전 국무총리도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이들 70대 노정객은 각자의 분야에서 굵직한 성과를 이룬 인물들이다. 풍부한 경험과 식견으로 혼돈에 빠진 우리 사회의 갈 길을 제시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노선과 진영을 달리 하거나 과거 행적에 오점이 있다면 적어도 한마디 사과나 합당한 설명은 해야 한다. 정치의 전면에 선 것이 권력욕 추구가 아니라는 걸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그에 걸맞은 과정과 절차는 필요하다.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현실과 난국을 수습할 지도자의 자격으로 대망하는 정치가는 권모술수에 능한 직업정치인보다 지사적 품격의 정치 지도자라는 게 국민 전체의 충정인 것이 속일 수 없는 사실이다.” 조지훈 시인의 글‘지조론’의 한 구절이 국민들이 노정객들에게 바라는 바가 아닐까 싶다.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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