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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상미당을 추억하며 오늘도 ‘파바’에 간다

입력
2017.11.16 14:5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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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미래 세대는 지금을 ‘불의(不義)한 제국의 시대’로 기록할 것이다. 제국이란, 네그리와 하트의 어법에 따르면 ‘외부가 없는 세계’다(‘제국’ㆍ이학사). 비용절감 이외의 바깥을 허용하지 않은 시장교조주의 제국은 모두에게 혹독한 식민의 삶을 강요한다. 차별과 불안을 온 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식민지 노동자의 처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말이 필요 없다. 관점을 달리하면, 기업이 감내해야 하는 곤란도 적지 않다. 비용절감을 교리(敎理)로 삼은 제국의 장(場)에서 정도 경영을 구현하기란 쉽지 않다. 사람 존중, 혁신, 신뢰, 사회적 책임 등을 실천하려면 비용교리의 처벌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불법파견 논란에 휩싸인 파리바게뜨의 심경이 복잡할 듯하다. 경영학에서는 ‘좋은 경영’의 사례로 꼽히는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여서 안타깝다. 해방되던 해 상미당(賞美堂)으로 시작한 이 빵집은 삼립(三立)을 거쳐 지금의 SPC로 성장했다. 한국전쟁, 삼분파동 등 현대사의 굴곡을 넘고 외환위기 등 수많은 위기를 견디며 신화적 종합식품회사를 일구었다. 두루 알다시피, 크림빵(1966년)이나 호빵(1971년)은 많은 이들에겐 잊지 못할 추억이다. 한국경영사학회장을 지낸 김영래 교수는 “초당(草堂, 창업자의 호)의 경영철학을 혁신, 양심, 현장중심 경영”으로 요약한다(‘경영사학’ㆍ37권). 중국식 호떡 가마에 착안해 열이 고루 퍼지는 무연탄 가마를 개발하고 연료비를 90% 이상 줄여 직원을 더 채용했던 상미당의 혁신이나, 이른바 ‘갑’인 맥도날드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납품하는 햄버거 빵에 방부제 넣기를 거부했던 ‘샤니’의 뚝심은, 비록 자서전과 인터뷰에 근거하고 있기는 해도 과장만은 아닐 게다. 빵은 생물이라며 매일 아침 매장을 돌며 온도와 점도 등을 직접 살피는 경영자의 모습은 현장중심 경영의 수범사례로도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현장에 대한 의욕이 지나쳤던 것일까. 매장을 직접 챙기는 일이 법이 정한 경계를 넘어 불공정한 지배에 이르렀다. 노동부에 따르면, 파리바게뜨 본사는 협력업체에 소속된 제빵기사의 출근시간을 맘대로 지시했고, 일률적 지침을 내려 이들에 대한 채용, 평가, 보상 등 인사관리 전반을 지배했다. 그러나 사건의 핵심은 의욕의 과잉 너머에 있다. 양심과 혁신의 경영철학을 제국의 비용절감 교리와 쉽게 타협한 일은 시대의 불의만을 탓할 게 아니다. 제빵의 핵심역량을 협력회사를 통해 공급하는 것은 기술 자립과 혁신을 최선으로 삼았던 상미당의 전통에선 크게 탈구돼 있다. 프랜차이즈 방식도 제국이 펼쳐 놓은 비용절감의 선택지일 뿐이다. 애초부터 현장중심 철학과는 맞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 독점(영업)권을 양여하면서도 현장을 직접 챙기는 일은 온당한 협력을 넘어 불공정한 지배에 이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제빵기사를 직접 고용토록 한 노동부에 대해 본사가 소송을 제기하면서 사태는 더 볼썽사나워 졌다. 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일이야 회사의 선택이지만, 직접 고용을 모면할 온갖 수단을 찾는 데 골몰하느라 전통과 신뢰를 잃을까 걱정이다. 법원의 판단과 상관없이 직접 고용이 바른 길이다. 불법파견에 대한 응당한 책임이거니와 파리바게뜨 사례를 새롭게 사건화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제국이 강요하는 획일적 비용논리를 신뢰와 양심, 혁신과 사회적 책임으로 전복함으로써 제국 내에 ‘외부’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외부는 제국의 통치를 내파할 가능성을 확장한다. 신화에 걸 맞는 성공 스토리의 공저자는 고객이다. 이들은 불의의 시대에 기업하기가 녹록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파바’라는 새 이름을 부여하며 세대를 넘어 신뢰와 애정을 쏟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미당의 초심과 전통의 시제는 현재이어야 한다. 그 기대를 안고 나는 오늘도 파바에 간다.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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