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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 "아름다운 오락영화" VS "결말 예측 가능"

입력
2017.06.26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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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옥자’(29일 개봉)를 둘러싼 논란에 정작 ‘옥자’는 없다.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업체 넷플릭스와 국내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의 힘겨루기에 영화 자체는 뒷전으로 밀렸다.

봉준호 감독은 틸다 스윈턴, 폴 다노, 제이크 질렌할 등 할리우드 배우들을 캐스팅해 다국적 기업에 납치된 슈퍼돼지 옥자의 수난과 옥자를 구하려는 산골소녀 미자의 모험을 펼쳐낸다. 극장ㆍ온라인 동시개봉 논란이 아니어도 얘깃거리가 풍부한 영화다.

영화전문가 2명과 한국일보 영화 담당 기자 2명이 ‘옥자’를 각자의 시선에서 조명했다. 관객들이 ‘옥자’를 보러 각 지역 80여개 개별 극장을 찾아가는 발품을 들일지 판단하는 데 참고가 되길 바란다.

자기 스타일 지키며 진화하는 봉 감독

봉 감독은 매번 다른 관객을 위한 영화를 만든다.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는 명백히 ‘마니아 영화’였다. 스릴러였던 ‘살인의 추억’(2003)은 ‘일반적 관객’을 염두에 둔 장르 영화였고, ‘괴물’(2006)은 ‘천만 관객’이 본 영화가 되었다. ‘청소년 관람불가’였던 ‘마더’(2009)에선 새로운 연령대와 만났다. ‘설국열차’(2013)는 월드 마켓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옥자’다. 이 영화를 제작한 넷플릭스는 전 세계에 9,800만명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이다.

의도했든 안 했든, 봉 감독은 한국 영화사상 가장 변화무쌍한 관객성을 경험했고 실험 중이다. 흥미로운 건 이 격변 속에도 그는 나름의 스타일을 견지하고 일관적인 테마를 전달하며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옥자’는 그 증명이다. 다국적 기업에 대한 비판적 시선, 크리처와 소녀의 관계를 통한 이야기 전개, 블랙 코미디 톤의 유머 등 이 영화는 봉준호의 여러 전작들을 환기시킨다. 여기에 더해진 건 희망의 엔딩이다. 어쩌면 봉 감독 최초의 ‘가족영화’일 ‘옥자’. 이 영화는 그에겐 아직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며, 좀 더 많은 관객과 소통하고 싶다는 의지일지도 모른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영화 '옥자'.
영화 '옥자'.

사유하게 하는 아름다운 오락영화

문제는 역시나 먹거리다. ‘설국열차’에서도 바퀴벌레 ‘프로틴바’가 문제였듯이, 이번에도 먹거리가 문제다. 먹거리 문제에 ‘돈’과 ‘욕망’이 붙었다. 봉 감독이 언제나 주목했던 문제이지만 이번엔 아름다운 대답도 붙였다.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소설가가 소설보다 커서는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주제가 이야기보다 더 커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야기는 이야기로, 영화는 영화로 우선 아름다워야 한다. ‘옥자’는 해야 할 말과 재미의 미적 균형이 잘 맞는 동화이다. 동화는 대개 주제가 너무 크기 마련이지만 봉 감독의 동화는 아름답고, 흥미진진하다. 그래서 ‘옥자’를 보고 나면, 자연과 인간의 조화에 대해, 그리고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돈’의 기능에 대해 배우는 게 아니라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어떤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설득된다. 강압적이지 않지만 지금, 우리의 삶의 형편을 조용히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옥자’의 아름다움이자 가치이다.

미자와 옥자의 우정을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격려하는 힘, 설국의 미래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가 얼마나 가혹하고 치열한 지 돌아보게 하는 힘, 호모 사피엔스의 오락영화란 바로 이런 것이다.

강유정 강남대 국문과 교수ㆍ영화평론가

영화 '옥자'.
영화 '옥자'.

세계적 화두의 한국적 변용

봉준호는 ‘역주행’ 감독이다. 해외 시장에 뛰어든 많은 창작자가 고민하는 한국 문화의 세계화보다, 세계적 화두의 한국적 변용에 집중해 거꾸로 자신의 색을 낸다. 지구촌의 심장인 미국 뉴욕에 등장한 옥자와 미자라니. 봉 감독은 1950~60년대 국어 교과서에서나 나올 법한 토속적 이름과 인물을 앞세워 21세기 자본주의의 병폐로 첨예해진 유전자 조작 문제를 짚는다. 가장 한국적인 배우 중 한 명인 송강호에 양갱을 쥐어주며 전세계의 계급 갈등을 꼬집은 전작 ‘설국열차’보다 신작 ‘옥자’에서 한국색은 더 짙어졌다. 강원도의 깊은 산골이 주요 배경으로 구수하게 쓰여 ‘곡성’까지 스친다.

세계적 화두의 한국적 변용이 강화되면서 극의 기괴함과 비극도 깊어졌다. 한국 시청자 혹은 관객들에겐 아직 낯선 유전자 조작과 다국적 기업 문제가 친숙하게, 외국인들에겐 익숙한 주제가 낯설게 펼쳐진다. 옥자의 분뇨를 활용한 일격 등 봉 감독의 물이 오른 익살은 기분 좋은 덤이다. 직접 키우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옥자의 컴퓨터그래픽(CG)에 순식간에 눈을 빼앗겼다가, 예측 가능한 결말과 착한 주제에 김이 새는 게 흠이지만.

양승준 기자

영화 '옥자'.
영화 '옥자'.

액션과 위트, 블랙코미디의 향연

당분간 고깃집엔 못 갈 듯싶다.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타고 있는 살덩이를 보면 귀여운 옥자가 떠올라 괴로워진다. ‘옥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불판 이면의 잔혹한 여정을 눈앞에 펼쳐 보여주며 공장식 축산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비인간성을 폭로한다. 인간에게 먹히기 위해 태어난 무수한 옥자들의 비명 위에 자본주의가 서 있다는 사실을 영화는 ‘인간과 동물의 우정’이라는 낭만 동화 안에 품어낸다. 그 비명은 또한 인간의 것으로도 치환 가능하다.

어떤 비극이 닥쳐와도 오락영화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 옥자의 최고 미덕이다. 지하차도와 강변북로에서 펼쳐지는 차량 추격전과 미자의 날쌘 액션은 위트가 넘치고, 지하상가를 헤집는 옥자의 질주는 소란스러워서 즐겁다. 과장된 캐릭터들이 자아내는 블랙코미디도 맛깔스럽다. 다만 그 과정에서 봉 감독 특유의 ‘향토색’은 옅어진다.

밤송이를 밟고서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옥자는 기술로 잉태됐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사실적이다. 정재일의 음악은 귀를 황홀하게 한다. 카메라감독 다리우스 콘지의 명성도 스크린에서 빛난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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