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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미국의 ‘환율 집착’이 낳은 제2 플라자합의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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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미국의 ‘환율 집착’이 낳은 제2 플라자합의 우려

입력
2018.03.3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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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안 협의 과정에서 환율 문제까지 협상을 했다는 논란이 제기됐습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28일(현지시간) 양국의 협상 결과를 알리는 보도자료에서 “무역과 투자의 공평한 경쟁의 장을 촉진하기 위해 경쟁적 평가절하와 환율조작을 금지하는 확고한 조항에 대한 합의(양해각서)가 마무리되고 있다”고 밝히고,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까지 “철강과 외환, FTA 세 분야에서 타결된 한국과의 협상은 역사적으로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치켜세운 것입니다. 우리 정부는 “환율 협상은 한미FTA와 별개로 미 재무부, 국제통화기금(IMF)과 협의가 진행 중”이라며 “미국이 성과를 포장하기 위해 환율 문제까지 거론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기획재정부가 협상 파트너인 미 재무부에 강력하게 항의까지 한 사실과 백악관도 별도의 접근(separate track)이라고 밝힌 점에 비춰보면, 일단 ‘보여주기를 좋아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식 과대 포장’일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일각에선 미국이 우리 정부와 외환시장 개입 억제와 관련해 양해각서(MOU)를 맺는다는 내용에 집중, ‘제2의 플라자 합의’가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다. 포토아이,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다. 포토아이, 연합뉴스

플라자 합의는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의 플라자호텔에서 미국ㆍ일본ㆍ독일ㆍ영국ㆍ프랑스 5개국 재무장관이 모였습니다. 당시 1,300억달러가 넘는 무역수지 적자를 해결할 방법이 없었던 미국은 500억달러에 달하는 무역적자를 일으키는 일본을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미국은 일본 상품 가격이 너무 싸 미국이 적자를 본다고 생각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무역수지 적자와 재정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이 달러 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해 읍소와 함께 협박까지 동원해 상대국의 화폐가치를 높인 합의가 바로 플라자합의입니다. 그 결과 합의 당시 달러당 240엔이었던 엔ㆍ달러 환율은 급격하게 낮아져 그해 9월에는 220엔 안팎으로, 1년 뒤인 1986년 9월에는 150엔 수준이 됐습니다. 1987년 말에는 120엔선까지 낮아졌죠. 그만큼 달러 가치는 떨어지고 엔화 가치가 상승한 것입니다.

일본은 이후 잠시 엔고의 축복을 누렸습니다. 더 적은 엔화로 더 많은 것을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국 부동산을 대거 사들였습니다. 지금 중국인처럼 세계 여행지에서 일본인들이 가장 많았던 시기가 1980년대 후반입니다. 경기둔화를 우려한 일본중앙은행(BOJ)이 정책금리를 내리면서 부동산과 주식도 폭등했습니다. 은행에서 돈을 쉽게 빌리면서 시중에 돈이 넘쳐났습니다.

그러나 엔고가 재앙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부동산 버블을 우려한 일본 정부가 대출총량규제를 실시하고 BOJ가 정책금리를 올리면서 부동산은 폭락하고 금융은 경색됐습니다. 부실채권이 양산되고 엔고로 수출까지 둔화된데다 금리인상으로 채무가 불어난 대기업들은 연쇄 도산했습니다. 일본에서 ‘잃어버린 20년’의 시작은 플라자합의 때문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1992년 개봉한 영화 '나홀로 집에 2'에 카메오로 출연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은 이 영화에 등장한 플라자호텔을 소유하고 있었다. 영화 캡처사진
1992년 개봉한 영화 '나홀로 집에 2'에 카메오로 출연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은 이 영화에 등장한 플라자호텔을 소유하고 있었다. 영화 캡처사진

‘환율’에 집착하는 미국

당시 플라자합의가 이뤄진 뉴욕의 플라자 호텔은 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소유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 전후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면서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플라자협의와 연결고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의 머리 속엔 ‘대미흑자국이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해 막대한 무역적자를 올리고 있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대미 흑자국들이 환율 조작을 통해 우리 돈을 빼앗아 간다’는 미국의 인식은 3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는 셈입니다.

백악관이 한미FTA 개정안 협상 결과를 발표하면서 밝힌 환율 관련 용어를 보면 미국의 인식은 더욱 잘 드러납니다. 바로 ‘불공정한 통화 관행(UNFAIR CURRENCY PRACTICES)’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나라를 ‘환율 조작을 해온 나라’로 기정사실화 한 것으로 우리 입장으로서는 다소 치욕스러운 용어입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향해서는 ‘환율 조작국’이라고 직설을 날리는가 하면, 최우방국인 일본에도 철강 관세를 부과한 것을 보면 우리만 억울해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제된 용어를 요구한다는 게 이젠 무리한 요구이니까요.

어쨌든 미국이 환율에 집착하는 배경으로 전문가들은 “관세 부과보다 파괴력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관세는 철강 자동차 등 특정 부문에만 적용되지만, 환율은 모든 수출ㆍ수입물품에 적용됩니다. 예컨대 국내 대기업이 1,000달러짜리 TV를 50만대를 수출ㆍ판매한다고 가정해 봅니다. 원ㆍ달러 환율이 1,200원일 때 매출은 6,000억원입니다. 하지만 원화 강세로 환ㆍ달러 환율이 1,000원으로 떨어지면 매출은 5,000억원으로 하락합니다. 환율은 전 품목에 적용되니 원화강세는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 경제에 치명적입니다. 매출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가격을 올릴 경우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판매가 저조해지는 역풍도 예상됩니다. 미국이 지금 대미흑자국을 향해 압박하는 이유는 이런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지난 26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김현종 통상본부장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참석해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지난 26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김현종 통상본부장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참석해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제2의 플라자합의?

결론부터 말하면 일방적으로 일본이 엔화를 절상시키는 합의였던 플라자합의와 같이 원화의 평가를 절상시키는 합의에 이를 가능성은 없습니다. 현재 미 재무부와 환율 문제를 논의 중인 기재부도 이를 일축하고 있습니다. 환율주권 차원에서도 어림없는 얘기고 양자 협상에서도 환율 문제를 공식 문서화한 사례는 전무합니다. 다만 기재부는 내달 미 재무부의 환율보고서에 환율조작국 지정을 피하기 위해 외환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를 미국, 국제통화기금(IMF) 등과 협의하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우리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정보를 적절한 시기에 공개하는 방안이 유력합니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우리나라만 공개하지 않고 있고, 주요20개국(G20) 중에서도 중국 인도 사우디 정도만 공개를 하지 않고 있다”며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따라 다른 나라 수준에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가능성이 점쳐집니다. 김용준 국제금융센터 외환팀장은 “시장 개입 정보를 공개한다는 것만으로는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회원국 모두 공개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탈퇴하면서 출범이 무산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같은 다자 협정을 이용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만합니다. TPP의 통화 규정은 미국의 요구로 이뤄졌습니다. 지금은 TPP의 후속인 포괄적ㆍ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이 출범해 11개국이 참여하고 있는데, 통화 관련 규정은 없습니다. 우리 정부는 상반기 가입을 결정하겠다는 입장이고, 미국도 참여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CPTPP와 같은 다자 협정에 통화 관련 규정이 들어간다면 개별 국가가 받는 부담은 크지 않을 겁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 ‘남 탓’

사실 미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는 원인은 여러 요인에서 비롯됩니다. 우선 미국의 낮은 저축률과 높은 소비성향이 꼽힙니다. 미국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장기간의 금융완화기조를 유지한 결과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자산 증식이 이뤄졌습니다. 그로 인해 높은 소비성향을 유지했고 여기에 저렴한 중국산 상품이 유입되면서 소비를 부추겼습니다. 미국인들이 돈을 쓰기에 바쁘니 2015년 기준 저축률은 18.7%로 세계 평균 26.5%에 못 미칩니다. 높은 소비성향은 다시 수입을 늘려 경상수지 적자의 원인이 됩니다.

여기에 미국은 1970년대 이후 국방, 사회보장 분야를 중심으로 재정지출이 증가했습니다. 재정지출이 경상수지 적자의 25%를 차지한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아울러 미국 산업구조가 생산성이 높은 서비스업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제조업이 감소했고 이에 따라 제조업 수입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도 원인입니다. 결국 만성적인 재정적자에 제조업의 낮은 경쟁력, 높은 소비성향으로 경상수지 적자를 자초해 놓고 외국 탓으로 돌리고 있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아메리카 퍼스트’가 통한 것을 보면 이것이 정치구나 싶습니다. 세종=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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