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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대학 입시, 갈등에서 조화로

입력
2018.02.20 14:4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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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이후 대학별 단독시험제로 시작한 입시에서 대학이 선발권을 행사했으나 신뢰를 저버린다. 한국전쟁 당시 대학생의 병역 특전 등을 악용한 입시 부정이 만연하자 국가가 개입한다. 하지만 다시 대학에 선발권을 넘겼다가 또다시 국가가 회수하는 과정에서, 바로 책임주체가 계속 바뀌면서 백년대계는 물 건너간다. 지금 약 80% 정도를 차지하는, 설립목적 자체가 교육보다는 부의 축적에 가까웠던 사립대학은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돈을 쌓아놓고도 등록금을 계속 올렸다. 입시제도 역시 교육이 아니라 경쟁률을 높여 서열을 관리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기 일쑤였다.

한편 국민적 지지기반이 취약한 정권에서는 교육이 아닌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느라 입시제도를 만신창이로 만든다. 7년 연구하고 3년 준비했다는 수능도 다르지 않다. 복수 응시와 등급제 그리고 만점자 1% 정책은 1년 만에 폐지됐으며 ‘물수능’, ‘불수능’ 논란 같은 변별력 시비와 출제오류 등으로 바람 잘 날이 없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는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와 같은 국가 관리 논술과 네덜란드에서 부분 시행하는 추첨제를 제외한 다양한 입시제도의 실험장인 것 같다.

원칙은 무시되고 방향은 상실한 채 매년 변덕을 부린 입시제도를 어떤 국민이 신뢰하겠는가. 한때 전형방법이 3,000개가 넘는다고 할 정도로 복잡해진 제도 때문에 본 피해를 어찌 가늠이나 할 수 있겠는가. 정권과 대학이 자기 입맛에 맞게 입시를 요리하면서 남발한 단편적인 정책들은 정작 입시준비가 이루어지는 학교 교실을 초토화시켰고 그 결과 사교육이 공교육을 압도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1990년 35만 명이었던 입학정원은 2002년에는 약 66만 명으로, 대학 진학률도 30% 수준에서 80%대로 껑충 뛴, 그러니까 누구나 대학 가는 상황이 되기까지 벌어진 우리 입시의 역사는 분명 비극이다.

비극의 아픔을 강요당한 학생, 학부모들에게 누구도 진심으로 사과하고 반성하지 않으니 상처는 더욱 깊어질 수밖에. 이번에는 조금이라도 나아지겠지, 늘 가졌던 희망을 여지없이 짓밟아온 대입 변천사는 최악의 입시감정을 유발했다. 모든 국민이 희망을 가지고 노력해도 묘안을 찾기가 어려운데 잦은 변화에 시달리고 가중되는 입시 부담을 감당하기에 버거운 국민들은 혼란의 와중에 혹시 자식에게 불이익이 생기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면서 여차하면 아귀다툼이라도 벌여야 하는 안타까운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런 거의 최악의 상황에서 우리는 지금 다시 입시제도를 고쳐야만 한다. 백년대계를 흉내라도 내려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데 오히려 갈등과 반목의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특히 입시의 공정성과 공교육 정상화라는 가치는 균형을 이뤄야 함에도 심각하게 충돌하고 있다. 학생부를 기록하는 고교도, 평가하는 대학도 믿을 수 없는 상황, 일부의 반칙과 편법을 그저 바라봐야 하는 다수 학부모들의 처지, 입사 부정까지 횡행하는 사회에서 대학입시만큼은 공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담은 정시(수능) 확대론과, 공정성 문제를 해결하면서 죽어가는 교실을 진정한 배움과 성장의 장으로 바꿔야 한다는 학종 옹호론은 지금 당장 서로에 대한 공격을 멈춰야 한다.

우리 입시의 역사가 주는 절대 교훈은 바로 합의와 승복이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끊임없이 흔들어 댄 사람들 때문에 표류하다가 좌초한 역사를 봐야 한다. 전쟁 같은 논쟁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기 위한 논의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 지금의 첨예한 입시 갈등은 우리 교육을 침몰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파괴적이다. 사회적 합의에 성공하고 국민적 실천의지를 모으려면 부정적 입시감정을 경계해야 한다. 책임전가와 인신공격을 멈추고 반대 의견도 존중해야 비로소 희망적인 입시제도가 보일 것이다.

박재원 학부모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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