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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 쥐 20마리 ‘처음 만나는 자유’… “작다고 홀대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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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 쥐 20마리 ‘처음 만나는 자유’… “작다고 홀대하지 마세요”

입력
2017.09.0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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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동물의 90%가 설치류… 대부분 안락사

래트 20마리 국내 첫 구조, 모두 입양자 찾아

시궁쥐로 알려진 래트는 마우스(곰쥐)와 함께 실험에 가장 많이 활용되지만 지능이 높고 사회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크리스티나 도드킨 제공
시궁쥐로 알려진 래트는 마우스(곰쥐)와 함께 실험에 가장 많이 활용되지만 지능이 높고 사회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크리스티나 도드킨 제공

우리나라에서 지난 해 실험에 동원된 동물은 287만 마리.

‘실험동물’ 하면 사람을 잘 따라 실험에 쓰인다는 견종 비글이나 화장품 실험에 동원되는 것으로 알려진 토끼 등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실험동물 가운데 이런 관심과 동정조차 받지 못한 채 가장 많이 이용되는 동물이 있다. ‘가깝고도 먼 동물’인 ‘쥐’다.

지난 해 국내에서 실험에 동원된 곰쥐(마우스), 시궁쥐(래트), 기니피그 등 설치류는 약 263만 마리로 전체 약 90%를 차지한다. 쥐들은 해부나 독성실험에 활용된 후 대부분 실험실 내에서 안락사 된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실험에 활용된 쥐 20마리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 동안 실험에 참여한 연구원이나 학생들이 정들고, 또 불쌍해서 비공식적으로 몇 마리씩 데리고 나온 적은 있었지만 외부인에 의해 그것도 20마리가 한꺼번에 나온 건 처음이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실험기관에서 구조한 쥐 20마리가 새 가족을 찾았다.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 제공
국내에서 처음으로 실험기관에서 구조한 쥐 20마리가 새 가족을 찾았다.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 제공

이달 초 동물전문 출판사 ‘책공장 더불어’를 운영하는 김보경 대표는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대학으로부터 쥐에게 약물을 주입해 소변만 채취하는 실험에 대한 승인 요청을 받았다. 김 대표는 실험 이후 살아가는 데 전혀 문제가 없는 쥐들을 안락사 하지 않는 조건으로 실험을 승인했다.

하지만 이는 실험에 활용됐던 쥐 20마리를 데리고 나온 이후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김 대표는 예정보다 빠르게 실험이 진행됐고 실험 직후 데려가지 않으면 죽일 수밖에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김 대표는 “햄스터나 기니피그를 키우는 사람들은 있지만 실험에 동원됐던 알비노 래트 20마리 입양을 보낼 생각을 하니 막막했다”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입양을 주선하는 글을 올렸다”고 말했다.

기적은 하루 만에 일어났다. 래트나 설치류를 키우는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하면서 입양글이 확산돼 20마리의 입양자가 모두 나타났다. 현재 래트를 키우고 있는 이들이 많았지만 그간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실험실 연구원도 입양에 나섰다. 김 대표는 무분별한 번식을 막기 위해 수컷 8마리는 중성화 수술을 해서 보냈다.

설치류를 반려동물로 키우는 게 적합하냐는 것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하지만 래트는 마우스보다 크기가 크고 보다 길들이기 쉬우며 사회성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에 기반을 둔 국제동물보호단체 '동물옹호자인터내셔널'(ADI) 크리스티나 도드킨 연구이사는 “래트의 경우 사람의 목소리에 반응하는 것은 물론 쓰다듬어주거나 함께 놀아주는 걸 즐길 줄 안다”고 말했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대표는 “실험에 동원되는 모든 설치류를 구조해 입양을 보낼 수도 없는 게 현실이고 설치류를 반려동물로 키우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면서도 “국내 20마리의 구조사례가 앞으로 실험에 동원되는 설치류의 처우 개선에도 영향을 미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버려진 설치류를 구조해 입양을 주선하는 민간 구조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크리스티나 도드킨 제공
해외에서는 버려진 설치류를 구조해 입양을 주선하는 민간 구조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크리스티나 도드킨 제공

실제 해외에서도 실험에 동원됐던 쥐를 구조해 입양 보내는 사례가 있다. 미 캘리포니아에 있는 동물보호단체 ‘뉴 라이프 애니멀 생추어리’는 비둘기부터 설치류까지 구조하고 있는데 실제 캘리포니아 노스리지대학으로부터 300마리의 설치류를 구조해 새 집을 찾아주기도 했다.

하지만 해외에서도 실험에 동원됐던 설치류를 구조해 입양을 보내는 게 일반적인 것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혜원 건국대 3R동물복지연구소 부소장은 “독일에서도 실험기관의 의지에 따라 설치류의 입양을 적극적으로 주선하는 사례가 있긴 하지만 비글에 비해 활발하진 않다”면서도 “대신 설치류에 대한 안락사 기준이나 방법에 대해선 보다 엄격하게 규제한다”고 설명했다. 서보라미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HSI) 정책국장도 “국내외에서 설치류가 가장 실험에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다른 동물들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설치류 사용을 줄이는 대체실험에 대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크리스티나 도드킨 동물옹호자인터내셔널(ADI)연구이사가 자신의 반려쥐를 쓰다듬고 있다. 크리스티나 도드킨 제공
크리스티나 도드킨 동물옹호자인터내셔널(ADI)연구이사가 자신의 반려쥐를 쓰다듬고 있다. 크리스티나 도드킨 제공

한편 해외에서는 실험에 동원된 설치류는 아니지만 주인으로부터 버려진 마우스나 래트를 구조해 입양을 주선하는 민간 구조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영국에서만 래트 구조 허브, 레트 구조 네트워크, GBH, 미미의 로던트 레스큐 등이 설치류를 구조하고 입양을 주선하고 있다. 미미의 로던트 레스큐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도드킨 연구이사는 “설치류는 지능이 있고 사회적인 동물”이라며 “크기가 작다는 이유로 소홀히 다뤄져서는 안 되는 소중한 생명”이라고 강조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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