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북 리뷰] 공장 폐쇄... 가진 자의 잔인함엔 끝이 없다

알림

[북 리뷰] 공장 폐쇄... 가진 자의 잔인함엔 끝이 없다

입력
2018.03.02 04:40
19면
0 0
김솔 작가. 문학동네 제공
김솔 작가. 문학동네 제공

마카로니 프로젝트

김솔 지음

문학동네 펴냄∙264쪽∙1만3,000원

조지프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Heart of Darkness)’은 인간 본성의 추악함을 속속들이 들춰 낸 고전이다. 김솔(45) 작가의 장편소설 ‘마카로니 프로젝트’(문학동네)는, 후하게 평하자면 그 현대 버전이다. ‘생존 본능에 굴복해 비굴해지는 건 부끄러운 일일까, 아닐까.’ ‘모든 사람의 책임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 말은 맞을까, 틀릴까.’ 교과서적인 답과 속마음의 답이 다르기 마련인 질문들이다. 그런 질문들 속으로 김 작가는 등장인물과 독자를 밀어 넣는다.

배경은 이탈리아의 찬연한 도시, 피렌체의 무기 공장이다. 미국 본사가 갑자기 공장 폐쇄 명령을 내리자 “인간이 만든 지옥”으로 변한다. 관리자들은 비열한 유다의 역할을 열정적으로 수행한다. “빵이나 집세나 연금으로 결코 환산되지 않을 죄책감이나 영웅심에 호도되어 차선의 호구지책을 포기할 순 없”는 게 당연하므로. 노동자들은 고통스럽게 버둥거린다. “한동안 긁어 먹고 살아야 할” 퇴직금이 아쉬워 깽판을 치지도 못하고 자기들끼리 개 돼지처럼 싸운다.

그들 모두가 ‘회사인간’이어서다. 회사에서 쫓겨나는 순간 쓸모 없어지는, 삶이 곧 회사인 인간. “마지막 남은 자가 모든 직원들을 대신하여 (회사 앞뜰 연못의) 금붕어처럼 하찮은 존재에게까지도 관심을 쏟는다면 직원으로서는 실패했을지언정 인간으로서는 결코 그러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몇 사람의 반성은 허공으로 흩어진다. 그들의 인간 됨은 회사와 너무 단단히 묶여 있어서, 회사 없이는 인간도 아니게 되는 탓이다.

유대인의 인간성을 시험하다 끝내 너덜너덜하게 만들어 버린 나치처럼, 미국 본사가 대표하는 자본은 노동자들을 함부로 대한다. 소설은 그들의 모든 낙관과 희망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지는 과정을 르포와 부조리극과 심리소설의 방식으로 그린다. 노동자가 주인공이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보다는 “우리네 헛짚는 인생살이”를 노래한 김국환의 ‘타타타’가 배경음악으로 어울린다.

제목 ‘마카로니 프로젝트’는 비밀리에 추진된 공장 폐쇄 계획의 암호명이다. 마카로니는 이탈리아의 소울 푸드. 한국 공장 폐쇄 계획을 외국 본사가 ‘어머니 된장찌개 프로젝트’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진 자가 못 가진 자의 영혼을 욕보이는 잔인함에는 끝이 없다.

공장 폐쇄 1년 후. 해고자들의 삶은 예상대로 누추하다. “죽음과 다를 바 없는 현실에 이토록 허무하게 유폐될 운명이었다면 왜 그토록 필사적으로 발버둥쳤던 것인지 아무도 설명할 수 없었다.” 사냥철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는 게 세상 인심이라고 했던가. 관리자들의 삶도 빛나진 않는다. “누군가의 시체를 뜯어먹으면서도 여전히 불평하고 있는 자들의 이기심은 니코에게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의무들을 극명하게 주입해 주었다. 우리 밖으로 나오려면 돼지의 삶과 돼지라는 인식에서부터 해방되는 게 급선무였다.” 작가가 슬쩍 제시하는 메시지다. 소설은 그런 교훈과 다짐으로 훈훈하게 끝나지 않는다. 공장 폐쇄 결정 전으로 돌아가는 결말의 작은 반전은 으스스하다.

소설은 폐쇄 위기에 몰린 한국GM 군산공장을 떠올리게 한다. 절묘한 출간 타이밍이다. 김 작가는 1일 전화통화에서 “그렇게 연결되는 게 두렵다”고 했다. 그는 “2016년 문예중앙에 연재한 소설을 출판사에 넘긴 게 6개월 전”이라며 “어느 한 쪽의 편을 드는 이야기를 쓴 게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의 이야기 혹은 내 아버지나 누이의 이야기로 읽히는 것을 경계한다”고 했다. 감정을 지나치게 쏟지 말고 건조하게 읽어 달라는 주문이다. 소설이 죽은 작가가 남긴 유작 원고라는 메타 소설 형식을 취하고, 먼 나라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삼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읽다 보면 김 작가의 이름은 지워지고 번역 소설을 읽고 있다는 착각이 종종 든다. 작가의 의도가 먹혔다는 뜻이다.

대기업 엔지니어인 김 작가는 17년 차 ‘공돌이’의 경험을 소설에 풀어냈다. 201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의 세 번째 장편이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