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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도] ‘강남’이라는 욕망의 시니피앙

입력
2014.07.24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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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고시절을 강타했던 대중가요 중에 공일오비의 ‘수필과 자동차’라는 노래가 있다. 노랫말이란 자고로 서정적이고 추상적이어야 한다는 한국 가요의 면면한 전통을 거스르며 직설어와 세속어로 시대감각을 날카롭게 포착했다는 점에서 ‘신인류의 사랑’과 함께 기념비적인 노래로 꼽을 만한 곡이다. 순수와 세속의 대립이라는 이원적 세계관에 기반해 있는 노랫말은 이런 식. ‘영화를 보고 가난한 연인 사랑 얘기에 눈물 흘리고, 여류 작가의 수필 한 편에 설레어 하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젠 그 사람의 자동차가 무엇인지, 어느 곳에 사는지,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아, 서글프다.’

그때, 아직 도래하지도 않은 상실을 아련하게 선체험하는 사춘기적 감상의 와중에 두둥실 떠오른 순진했던 의문 하나. ‘아니, 연애하는데 어느 곳에 사는지는 왜 중요하게 여기지?’ 오늘날 초등학교 저학년만 돼도 간파하는 주거지의 계급론을 실감은커녕 납득조차 못했던, 때는 1992년. 심지어 그때 나는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강남과 구획되는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17년째 거주 중인 ‘원조 동작의 딸’로서, ‘뺑뺑이 고교 배정’의 이변으로 도로 건너 강남의 여고를 ‘반포의 딸’들과 함께 다니던 외롭고 서러운 소녀였다.

7ㆍ30 재보선의 최대 격전지인 서울 동작을에 출마한 나경원 새누리당 후보가 낙후된 동작구를 ‘강남4구’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동작대로를 사이에 두고 강남과 분리되는 동작구의 소외감과 박탈감을 해소하기 위해 주거ㆍ교육ㆍ복지ㆍ안전을 강남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당장 반대 진영에서는 “뉴타운 사기 공약의 재판” “개인의 이기심에 편승한 개발공약”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맞는 말이다. 실현 가능성으로 보자면 허황되고, 가치 지향으로 보자면 부박하다. ‘강남5구’ ‘강남6구’로 이어지지 말란 법 없는 서열화와 구분 짓기도 역하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강남4구’ 공약이 표심의 성감대를 건드리는 섹시한 공약이라는 것을, 유권자들이 그에 뜨겁게 호응하리라는 것을 말이다. 비난해봐야 부질없다. 주소지도 미처 못 옮겼다더니, 지역구에 대한 저 탁월한 이해. 욕망을 감지하는 더없이 예민한 촉수. 삶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욕망 추구의 과정임을 동물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자의 날렵한 몸놀림이 동작의 설움을 익히 아는 나로서는 오히려 감탄스럽다.

한국 사회에서 강남이라는 시니피앙이 불러일으키는 대체적인 반응은 흠모 아니면 질시다. 갈 수 없지만 가고 싶어하거나, 갈 수 없어서 마음껏 욕하거나. 사정은 후자가 더 고약하다. 타인의 욕망을 난도하던 이들이 여건만 되면 스리슬쩍 강남으로 옮겨가던 모습들. 이런 저런 시상식이나 행사에 초대장을 보내기 위해 진보적 학자와 예술가들의 주소를 들춰보다가 묘한 배신감을 느꼈던 경험들도 수다하다.

욕망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욕망의 정치’를 부정적 관용어로 쓰는 정치에는 희망이 없다고 말해야 옳다. ‘강남4구’가 비판 받아야 하는 이유는 좋은 곳에서 잘 살고 싶다는 인간 본연의 욕구가 어째서 강남이라는 획일적이고 속악한 형태로만 추구되어야 하는가에 있는 것이지, 그것이 욕망의 정치이기 때문이 아니다. 정치는 도리어 욕망의 디자이너로서 다수에게 유익한 욕망의 상품을 출시해야 마땅하다. 한국 정치에는 더 많은 욕망의 시니피앙들이 필요하며, 어떤 가치가 정말로 중요하다면 그것은 유권자의 가슴 속에서 하나의 욕망으로 불타올라야 한다. ‘저녁이 있는 삶’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던 이유다.

쾌적한 주거지를 열망하는 사람과 국정원 댓글 사건에 분개하는 사람은 별개의 인간이 아니다. 우리는 수필도, 자동차도 원한다. 그것은 동일한 인격체 안에서 모순 없이 공존한다. 그것이 인간이다. 동작을의 유권자들이 ‘강남4구’ 공약에 표를 준다면 그들은 아마 한심하고 탐욕적인 사람들이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인들 왜 억울하지 않겠는가. 상품 개발은 안 하면서 사장님 착하다고 강권만 당한 꼴이니. 욕망과 가치를 구분하는 이분법적 세계관은 위선만 양산해낼 뿐이다. 그 위선의 세계에서는 언제나 착한 자가 진다.

7·30 재보궐선거 서울 동작을 국회의원에 도전하는 새누리당 나경원 후보가 24일 서울 동작구 사당2동 주민센터 앞에서 거리유세하는 동안 주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7·30 재보궐선거 서울 동작을 국회의원에 도전하는 새누리당 나경원 후보가 24일 서울 동작구 사당2동 주민센터 앞에서 거리유세하는 동안 주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선영 문화부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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