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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북한 병사의 기생충, 충격과 기회

입력
2017.11.20 17:0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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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부각된 北 보건위생 열악한 실태

남북 협력하면 막대한 돈 벌이도 가능

북핵 대치 속 귀중한 시간 허송 말아야

이국종 아주대의대 교수가 15일 총상을 입은 채 귀순한 북한군 병사의 수술 결과에 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국종 아주대의대 교수가 15일 총상을 입은 채 귀순한 북한군 병사의 수술 결과에 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판문점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하다 총상을 입고 치료 중인 북한군 병사의 몸에서 수십 마리의 기생충이 발견돼 큰 충격을 줬다. 익히 알려진 북한 주민들의 열악한 보건위생과 빈약한 영양 상태가 새삼 부각돼서다. 평양 지역은 그래도 좀 나은 편이지만 기생충 감염률이 지방으로 가면 90%대에 이른다고 한다. 결핵 환자가 10만명에 달하고 치료가 시급한 말라리아 환자도 1만5,000여명이나 된다.

북한의 열악한 보건 위생과 빈약한 영양 상태를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핵과 미사일 개발에 제한된 자원을 쏟아 부으며 주민의 삶을 소홀히 하는 김정은 정권에 대해 다시금 분노가 치민다. 하지만 서울대 연구부총장직을 맡고 있는 신희영 의과대학 교수는 좀 다른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본다. "70년 이상 외부세계로부터 고립된 북한 사회는 의약 연구의 보고(寶庫)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연한 기생충 감염만 해도 그렇다. 남북교류가 활발하던 시기 의료지원 차 여섯 차례 북한을 다녀온 신 교수에 따르면 우리 어린이들에게 많은 아토피 피부염 증세가 북한 어린이들에게는 거의 없다. 남한도 기생충 감염이 70~80%에 이르렀던 1970년대에는 아토피 환자가 드물었다. 둘 사이의 깊은 상관관계를 추론해볼 수 있다는 의미다. 아토피는 자기 면역체계가 자기 신체를 공격하는 자가면역 질환이다. 신 교수는 “자기 면역체계가 외부 침입자인 기생충을 공격하느라 자기 신체를 공격할 여유가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착안해 북한 의약계와 함께 기생충을 연구해 관련 항원을 찾아 약을 만들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신 교수의 주장이다. 특히 일본 어린이 50% 가량이 아토피 증세를 보이는데 일본에만 팔아도 연간 5조원 이상으로 추산되는 보건의료 분야 통일 비용을 손쉽게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한을 비롯한 보건의료 선진국들은 기생충이 거의 박멸돼 연구생들이 회충 같은 기생충 실물 표본을 구경하기 어렵다. 신 교수는 북한과 함께 기생충 표본을 만들어 팔아도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했다.

평양의대가 발표한 북한의 소아 백혈병 양상도 흥미거리다. 전세계적으로 소아암 중 백혈병 비율이 30~35%로 일정한데 급성 림프구성과 급성 골수성 비율이 서구(80대20)나 남한(65대35)과 달리 북한 어린이들은 50대50이다. 신 교수는 남북 공동 연구를 통해 그 이유를 규명하면 노벨 의학상은 떼놓은 당상이고, 이런 식으로 보건의료 분야에서만 노벨상 10개는 나올 수 있다고 했다.

또 북한 의학 연구잡지들에는 천연물 관련 논문이 많이 실리는데, 우리 약학대학 교수들에게 보여주면 깜짝 놀란다고 한다. 북한 천연물 임상연구 결과와 우리 기술을 결합하면 천연물 신약개발 기간을 대폭 단축시킬 수 있고 이 또한 막대한 수익원이 될 수 있다. 그 외에도 신 교수의 머리 속에는 적정기술 활용 등 남북이 함께 해서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보건의료 분야 리스트가 무궁무진했다.

어디 보건의료 분야뿐일까. 가능성을 확인한 개성공단을 비롯해 남한의 기술과 자본, 북한의 토지ㆍ노동력을 결합해 남북이 윈윈할 수 있는 사업은 무수하다. 김대중ㆍ노무현 정부만이 아니라 이명박ㆍ박근혜 보수 정부도 비슷한 구상을 내놓은 바 있고, 문재인 정부의 신경제지도, 신북방 정책도 본질적으로 같은 비전을 공유한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의 끝 없는 핵ㆍ미사일 집착과 이에 대한 외부 세계의 제재 강화 속에 다 허망한 꿈으로 멀어져 가고 있다.

JSA귀순 북한 병사의 몸 속에서 나온 27㎝ 회충 등 수십 마리 기생충들은 참혹한 북한의 실상을 고발하는 한편, 남북 협력의 꿈을 서둘러 실현해야 시급성을 일깨웠다. 아직 북한의 열악한 실태가 무궁무진한 남북 협력 가능성으로 남아 있지만, 더 방치하면 심각한 인도적 참사로 빠져들 게 불 보듯 하다. 김정은 정권은 이게 뭘 뜻하는지 빨리 깨달아야 하고 남측도 더 늦기 전에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 더 이상 허비할 시간이 없다.

이계성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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