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기억할 오늘] 포토저널 ‘라이프’ 창간 (11월 23일)

입력
2017.11.23 04:40
30면
0 0
포토저널리즘의 기원이라 할 만한 'LIFE' 창간호가 1936년 오늘 나왔다.
포토저널리즘의 기원이라 할 만한 'LIFE' 창간호가 1936년 오늘 나왔다.

포토저널리즘의 전성기를 이끈 시사잡지 ‘라이프 LIFE’ 창간호가 1936년 11월 23일 발간됐다. ‘수병의 키스’로 유명한 독일 출신 미국 작가 알프레트 아이젠슈테트(Alfred Eisenstaedt,1898~1995)의 몬테나 주 포르 펙(Fort Peck) 댐 흑백사진을 표지에 싣고 댐 건설 노동자들의 일상을 5페이지 특집으로 실은 창간호 38만 부는 10센트 가격에 금세 매진됐고, 라이프는 불과 넉 달 만에 발행부수 100만여 부의 인기잡지가 됐다.

라이프는 미국 잡지계의 혁신가 헨리 루스(Henry Luce, 1898~1967)가 창간했다. 선교사의 아들로 중국서 태어난 그는 15세에 미국으로 돌아가 고교 동창인 브리턴 헤이든(Briton Hadden)과 함께 교내문학저널을 만들었고, 둘은 나란히 예일대로 진학해서 ‘예일데일리뉴스’의 발행인과 편집인을 번갈아 맡으며 출판 감각을 익혔다. 루스와 헤이든은 1923년 국제뉴스의 요약ㆍ논평에 특화한 주간지 ‘타임’을 창간했고, 7년 뒤 격주간 경제지 ‘포춘’으로 또 한 차례 대성공을 거뒀다. ‘라이프’는 그들의 세 번째 작품이었다.

원래 ‘라이프’는 영국의 인기 잡지 ‘펀치’를 타깃으로 1883년 1월 창간된, 일러스트와 유머 등에 치중한 오락 잡지였다. 초창기 라이프의 모토는 ‘삶이 있는 한 희망이 있다(While there’s Life, there’s hope)’였다. 루스가 30년대 대공황을 맞아 휘청거리던 그 잡지를 당시로선 거액인 9만2,000달러를 주고 사들인 까닭은 ‘라이프’라는 강렬한 제호가 탐나서였다. 그는 같은 제호에 완전히 다른 잡지를 만들어냈다. 공황과 세계대전, 냉전의 30~60년대는 목숨과 희망이 간절했던 때이기도 했다. 그 절박함은 글의 장황함 대신 사진의 강렬함을 원했다. 라이프를 무대로 그 시대 기라성 같은 포토저널리스트들이 탄생했다.

반공주의자이자 공화당원이던 루스는 라이프의 모토를 ‘라이프를 통해 세계를 보라(To See Life; To See World)’로 바꾸었다. 하지만 라이프의 세계는 70년대 들면서 급격히 쇠락했다. 주 850만부씩 찍던 전성기의 라이프는 72년 550만부로 줄었고, 그 해 말 주간지시대를 마감했다. 월간지로(78~2000), 특별호 체제(73~78, 2004~2007)로 명맥을 유지하던 라이프는 2007년 3월 24일 마지막호를 내고 폐간해 웹사이트로 남았고, 이듬해 11월 구글과 제휴 서비스를 시작했다.

최윤필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