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정재호]
봅슬레이 대표팀/사진=연합뉴스
‘건곤감리(하늘ㆍ땅ㆍ물ㆍ불을 상징하는 4개의 괘).’
헬멧에 건곤감리를 그려놓은 네 명의 태극전사가 한국을 넘어 아시아의 역사를 새로 썼다. 봅슬레이 사상 최초의 메달이 탄생하기까지 최강 독일의 틈바구니 속에서 100분의 1초를 다투는 박빙의 승부였다.
원윤종(33ㆍ강원도청)-전정린(29ㆍ강원도청)-서영우(27ㆍ경기도BS경기연맹)-김동현(31ㆍ강원도청)으로 구성된 한국 봅슬레이 대표팀은 25일 강원도 평창의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봅슬레이 4인승 4차 레이스에서 49초 65를 기록했다.
이로써 1~4차 시기 합계 3분 16초 38이 된 ‘팀 원윤종’은 18조에서 나선 독일의 팀 니코 발터(3분 16초 38)와 동 타임으로 공동 은메달을 땄다. 앞서 대표팀은 1차 시기에서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의 트랙 레코드(48초 65)를 세우는 등 꾸준히 선전했다. 2차 시기는 49초 19, 이날 먼저 치른 3차 시기는 48초 89였다.
금메달은 마지막 20조에서 압도적인 실력을 뽐낸 독일의 프란체스코 프리드리히 조가 원윤종 조에 0.53초차 앞선 3분 15초 85를 세우며 평창에서 2관왕을 차지했다. 은메달이 두 팀에게 돌아가면서 동메달은 시상하지 않는다.
이날 대회 폐막을 몇 시간 앞둔 휴일을 맞아 태극기를 든 많은 관중들이 경기장에 운집했다.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보좌관이 폐막식 참석에 앞서 이곳을 찾아 미국 선수들을 응원하기도 했다. 흥겨운 축제 분위기 속에 대표팀은 아시아 봅슬레이 역사상 최초의 메달이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한참 먼저 시작한 일본 봅슬레이는 1972년 삿포로 동계올림픽을 거쳐 1998년 나가노 때도 대회에 나갔으나 메달을 걸지는 못했다. 2015∼2016시즌 세계 랭킹 1위에 오르는 등 월드컵 대회에서 꾸준히 메달권의 성적을 냈던 2인승(원윤종-서영우 조)과 달리 그 동안 4인승은 10위권 밖으로 밀려 주목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 4인승이 2인승보다 성적이 잘 나왔던 적이 없었으나 가장 중요한 올림픽 무대에서 기적을 연출해냈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19위)을 시작으로 4년 전 소치 대회에서는 원윤종-전정린-석영진-서영욱 조가 20위에 올랐던 것이 최고 성적이라는 점에서 더욱 놀라운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파일럿 원윤종은 “많은 분들이 4인승은 안 될 거라고 했지만 나름대로는 시즌 중반부터 많은 걸 준비하고 테스트했다. 준비과정이 탄탄했는데 마지막에 결과로 이뤄진 것 같다”고 말했다.
19조에서 메달 색을 가리는 4차 시기에 임한 팀 원윤종은 압박감이 심했다. 박빙의 승부를 다투던 18조의 팀 발터가 좋은 성적을 냈기 때문이다. 중반까지 합계 기록에서 근소하게 뒤지던 팀 원윤종은 12번 코너의 파동을 딛고 끝까지 속도를 유지하면서 마침내 따라잡았다. 전용 경기장이 네 곳이나 있고 동ㆍ서독 시절부터 서로 경쟁하며 발전해온 최강 독일에 맞서 따낸 메달이다.
이들이 봅슬레이 역사를 쓰기까지는 피나는 노력이 동반됐다. 네 명이 봅슬레이 선수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가장 드라마틱하게 달라진 점은 신체다. 스타트가 절반 이상인 봅슬레이를 위해 폭식하며 몸과 힘을 억지로 키운 것이다.
체육 교사를 꿈꾸던 원윤종은 성결대 체육교육학과 4학년 때 썰매 국가대표 선발전에 합격했다. 당시 몸무게는 70kg대로 182cm의 키에 비해 마른 편에 속했다. 원윤종과 동료들은 하루에 밥 15공기씩을 먹고 토하면서 극한의 근력 운동을 병행한 결과 제 각기 100kg을 넘는 육중한 몸을 갖췄다. 이들의 몸무게는 합계 419kg에 이른다.
여기에 멘탈을 더했다. 파일럿 원윤종은 헬멧에 태극 문양과 '건', 브레이크맨 서영우는 '곤', 푸시맨 전정린은 '감', 김동현은 '리'를 새겼다. 윤성빈이 아이언맨이었다면 봅슬레이 4인방은 태극을 상징하는 건곤감리의 정신으로 평창올림픽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평창=정재호 기자 kemp@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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