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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할 때 꺼내 먹어요, 시인들의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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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할 때 꺼내 먹어요, 시인들의 문장

입력
2016.08.04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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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쓴 산문은 시인의 세계로 진입하는 가장 넓고 쉬운 길이다. 조성흠 제공
시인이 쓴 산문은 시인의 세계로 진입하는 가장 넓고 쉬운 길이다. 조성흠 제공

시인의 내공을 알려면 그가 쓴 산문을 보면 된다는 말이 있다. 내공이 궁금했다기보다는 시의 의미가 궁금해서 나온 말일 터다. 시에 내공이란 게 있는지는 모르지만 산문이 시인의 세계에 진입하는 더 넓은 문임은 틀림 없다. 시로 응축되기 전, 혹은 응축된 후, 먹기 좋게 녹아 내린 사유는 소설도 시도 줄 수 없는 ‘시인의 산문’ 고유의 영역이다.

최근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문집을 낸 시인들은 세대도, 성별도, 관심사도 제 각각이라 반갑다. 사랑이 궁금할 때,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을 때, 뜻 모를 슬픔이 밀려올 때, 책을 열고 한 문장씩 꺼내 먹자.

사랑에 눈 뜬 인어 아가씨, 김행숙

사랑을 글로 배울 수 있을까. 사랑에 대한 김행숙 시인의 글은 실패를 예정하고 시작된다. 아무도 이 책에서 사랑을 배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게 유효한 양 글을 쓴다. 사랑이 가능하기라도 한 것처럼.

“알랭 바디우는,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모든 주제와 관련하여 철학적 요구에 부응하는 역할을 학자, 예술가, 혁명가, 그리고 연인에게서 찾았다. 그는 이 네 가지(…)를 철학의 4대 조건이라고 일컫는다. 물론 지금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연인’이다.”

시인이 안데르센의 오래된 동화 ‘인어 공주’에 이입한다. 사랑 받지 못하면 인생이 끝장 날 판인데 상대방은 모호한 미소만 흘리는,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소녀에게 시인은 슬며시 펜을 쥐어준다. 일기든 연애편지든 쓰라, 그 글이 왕자를 데려다 놓진 못하겠지만 다른 것을 가져다 줄 것이다. “오늘밤에도 일기장을 펴놓은 그녀는 그녀 자신 안의 타자에게로 물음표의 모양새를 하고서 깊숙이 몸을 구부리고 있을 것이다. (…)며칠 후 그녀의 일기장에는 바로 이 문장이 등장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사랑을 하는 것 혹은 사랑을 쓰는 일은, 타자를 발명하고, 자신을 발명하고, 인권과 관계와 사랑을 발명하는 일로 이어진다. 결국 시인이 권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언어다.

낯선 지구를 산책하다, 서윤후

2009년 스무 살에 등단해 올해 7년 만에 첫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을 낸 서윤후 시인의 취미는 여행이다. 도쿄, 두바이, 런던, 칭다오, 뮌헨 등 전세계를 다녔지만 여행 정보는 한 마디도 없다. 대신 끊임없이 묻는다. 걷는 것에 대해, 나 자신에 대해, 발 딛고 선 이 땅에 대해.

“나는 여행을 떠났다. 막연함 무기력함으로부터 도망가는 날도 있었고, 나를 좀 더 알고 싶은 호기심에 떠난 날도 있었다. 잘 모르겠어서 생면부지의 이 땅을 이방인이 되어 걷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괜찮을까. 질문이 질문을 찾고 답변이 답변에게서 달아나는 미행을 여행의 별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낯선 곳에서의 산책은 낯선 질문과 낯선 답을 태어나게 한다. 한층 낯설어진 ‘나’를 데리고 일상에 복귀하면 거기엔 낯선 당신과 익숙한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 시인이 여행을 하는 이유다. “나란하게 걷는다는 기분을 선사해주는 사람은 나와 속도가 같아서가 아니라, 속도를 엿보고 맞춰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에게 꽤 익숙한 행복이다.”

슬픔만은 전능하다, 신용목

비애가 촌스러워진 것은 아마도 한(恨)이 민족 정서로 규정된 탓이 크다. 슬픔을 유머로 바꾸는 ‘쿨함’은 시대적 정서이자 태도가 됐다. 그래도 슬픔은 너무 달고 쓸쓸함은 내내 유익하다. 신용목 시인은 멸종 위기에 처한 슬픔을 정교한 문장으로 되살린다. 그 정성만으로도 슬픔은 당분간 연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산 적 없는 이의 괴로운 자서전을 따라 내 생이 채워지는 기분이다. 얼마나 사랑했기에, 그는 이 세상을 살지도 않고 이처럼 아픈 자서전을 남겼을까, 끊임없이 되물으면서…”(‘그 끝을 알면서도 시작할 수 밖에 없는’ 일부)

자기 자서전을 다 읽은 사람에게만 허용되는 홀가분함으로 시인은 마음껏 고통한다. “슬픔에 대해서만큼은 우리는 전능”하다는 시인을 흉내 내다 보면 잠시나마 자기 삶의 전능자 노릇을 할 수도 있다. 시에 몸이 푹 익었는지 각 산문마다 행과 연을 구분했다. 덜 녹아 내린 시정(詩情)이 다양한 맛을 선사한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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