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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무풍지대서 역풍만 기다리는 한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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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무풍지대서 역풍만 기다리는 한국당

입력
2017.11.30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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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1야당의 모습은 무풍지대에 갇힌 범선을 떠올리게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현재 1야당의 모습은 무풍지대에 갇힌 범선을 떠올리게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무풍지대에 범선 하나가 갇혀있다. 아무리 고함쳐도 들어줄 사람 하나 없는 죽음의 적막에 고립된 게 벌써 1년이다. 그 사이 이름도 바꾸고, 줄었던 몸집을 다시 불리기도 했지만 여전히 꿈적도 할 수 없다. ‘자유한국당’이라는 이름의 배다.

꼭 1년 전인 지난해 11월 29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했다. “나의 진퇴 여부를 국회가 정해달라.” 비현실적 조건을 내건 ‘꼼수 담화’였다. 모두가 알아차린 그 속내를 새누리당만 몰랐다. 탄핵안 표결을 두고 그어졌던 당내 전선은 흐릿해졌고, 탄핵을 주도했던 비박계마저 혼란에 휩싸여 우왕좌왕했다. 되레 친박계가 “대통령이 퇴진하겠다는데, 탄핵만이 답이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퇴진 아닌 퇴진 담화를 한 대통령의 의도에 걸려든 것이다. 무풍지대에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 한국당은 그 자리에서 단 1보도 전진하지 못했다.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국민에게 파면 당한 대통령의 당적을 뒤늦게 정리하고 대단한 혁신인양 추어올린다. 친박계는 일말의 반성 없이 태극기 민심에 ‘나는 탄핵에 반대했다’는 도장을 찍으려 부산하다.

당 대표는 행동 대신 말을 앞세운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을 “망나니 칼춤”으로 몰아붙이고, 버티는 당내 친박 핵심들에게는 ‘바퀴벌레’, ‘고름’, ‘암 덩어리’라는 입에 담기도 어려운 막말을 퍼붓는다. 일단 질러놓고 사실과 다르면 말을 바꾸기를 손바닥 뒤집듯 한다. 1야당 대표로서의 품위와 신뢰는 찾기 어렵다. 여론조사에서 홍준표 대표 대신 10분의 1도 안 되는 의석을 가진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가 ‘야권의 대표인물’로 꼽힌 이유가 다른 게 아니다.

분명 고사 위기인데도 배 안의 사람들은 태연하다. 위기감이나 두려움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시간은 우리 편”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다. 현 정부의 도를 넘은 적폐청산 작업이 분명 민심의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은인자중하는 보수층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떨쳐 일어설 때가 올 거라는 ‘신념’이다. 그러한 거대한 시대적 역풍을 타고 자신들이 위풍당당하게 항구로 개선할 수 있을 거란 ‘신앙’이다. 그것도 모르고 자신들을 비판하는 신문들은 그저 ‘찌라시’일 뿐이다.

과연 그럴까. 제갈량의 제사에 응답한 동남풍이 과연 홍 대표 앞에서도 불어줄 것인지 말이다. 홍 대표는 지난 대선 때 “제갈량은 북벌에 실패했지만 홍준표는 성공한다. 그것이 하늘의 뜻이기 때문”이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적이 있다. 하늘의 뜻이 뭔지 모르겠다. 몸집을 불리는 것 말고는 보수 유권자들이 바라는 개혁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정당에 하늘의 뜻이 내려앉기를 어떻게 기대하나.

제갈량도 무작정 동남풍을 바라지는 않았다. 후세의 과학은 동지 무렵 중국 대륙 상공에 시베리아 고기압이 최고로 발달해 북서풍이 거세게 불지만, 고기압이 일시적으로 약해질 때 저기압이 형성돼 동남풍이 불 수 있다고 해석한다. 그런 사실을 제갈량은 오랜 공부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을 테다. 그 시기에 맞춰 군사를 동원하고 전쟁을 준비한 것이다. 진인사(盡人事) 후에 대천명(待天命)을 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촛불 시민만 국민인가” 하는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한탄처럼, 현 정권의 태도에 실망하는 보수층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보수층을 ‘막말대잔치’로 부추겨 다음 선거에서 표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이만저만한 착각이 아니다. 피부로 느끼는 보수개혁이 없다면 지금처럼 관망자로 돌아앉아있을 게 분명하다. 말보다 행동이 국민의 바람이자, 하늘의 뜻이다. 무풍지대에서 탈출할 수 있는 동남풍은 입으로 불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그저 먼지만 일으킬 뿐이다.

김지은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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