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성원 기자

등록 : 2016.02.17 18:00
수정 : 2016.02.20 13:18

한줄기 실처럼 산동네를 굽이굽이... 와! 부산이 다 보이네

부산 산복도로

등록 : 2016.02.17 18:00
수정 : 2016.02.20 13:18

부산의 산동네를 잇는 산복도로는 부산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이기도 하다. 피란수도가 간직한 애환을 보듬으며 아늑한 시선을 던지는 길이다.

전쟁이 터졌다. 수많은 피란민들은 남으로 향했고, 피란수도 부산으로 몰려들었다. 산자락과 바다가 바로 만나는 지형의 부산에서 피란민들까지 보듬어줄 평평한 땅은 없었다.

그들은 산비탈로 기어 올라야 했고, 산자락엔 움막들이 펼쳐졌다. 피란민은 점점 더 불어났다. 늦게 온 이들은 더 높은 곳으로 올라야 했다. 전쟁이 끝났지만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이들이 상당 수. 또 산업화 바람을 타고 몰려든 가난한 이농인구들이 산동네에 자리를 잡았다.

사실 1876년 개항과 함께 이방인이 몰려들었으니 부산의 산동네 역사는 6ㆍ25 전부터 시작됐다고 할 것이다. 개항과 전쟁, 산업화란 근현대사의 굵직한 흐름을 타고 이뤄진 도시 난개발의 공간이 지금의 부산 산자락을 휘감은 주택가의 풍경이다.

산복도로(山腹道路)는 그런 부산의 산동네를 지나는 도로다. 산의 배를 가로지른다는 이 도로는 산동네들을 구슬 꿰듯 잇고 있다. 부산의 시가지를 바라봤을 때 주거지와 산의 경계선이 산복도로라 봐도 무방하다. 한 밤에 바다에 나가 도시를 보면 산자락에 치고 올라온 불빛의 끝선이 바로 산복도로다. 불빛의 경계, 삶과 자연의 경계에 산복도로가 있다.

1964년 처음 산복도로로 만들어진 망양로를 비롯, 진남로와 엄광로, 천마산 산복도로, 옥녀봉 산복도로 등 부산의 산동네를 잇는 산복도로는 그 길이만도 2만㎞를 훌쩍 넘는다.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입구.

산복도로가 품은 동네들은 저마다 사연이 있지만 그 중에 특이한 이력의 마을이 있어 찾았다. 공동묘지 위에 집을 짓고 살았던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이야기다. 최근 부산 관광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감천문화마을의 바로 옆 동네다.

일제시대 일본인들의 공동묘지가 있던 곳이다. 바로 옆에는 화장장도 있었다. 화장과 납골문화가 발달한 일본인들의 가족묘와 개인묘가 빼곡하게 들어찼던 곳이다. 1945년 패망과 함께 일본인들은 황급히 귀국길에 올랐고, 수백여 기의 일본인 무덤이 그대로 남겨졌다.

산복도로 투어를 전문으로 하는 부산여행특공대의 정봉규(40) 팀장의 설명은 이렇다. “동네 어르신들이 말씀 하시길 1ㆍ4후퇴 이후 모여든 피란민들이 넘쳐났을 때, 공무원들이 나와 신원파악을 한 후 비 가릴 천막과 함께 주소가 적힌 종이 한 장씩을 나눠줬다고 한다. 한 무리의 피란민들이 받아 든 주소가 아미동 산 19번지. 바리바리 짐을 짊어지고 그 주소를 찾아온 피란민들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공동묘지라니. 하지만 다시 내려간다 해도 뾰족한 수가 없다. 일단 살아야겠기에 묘지 위에 누울 공간을 마련했다.” 돌로 쌓은 일본인들의 납골묘 상석을 걷어내면 깊이 70㎝ 되는 공간이 나오는데 거기 2명이 누워 천막을 덮으면 하늘을 가릴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죽은 자들과의 동거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묘지의 상석 위에 그대로 벽체를 올리고 지붕을 씌우고 살았던 집.

집을 지을 마땅한 재료가 없던 시절, 묘지의 비석과 상석은 축대를 쌓고 계단을 만드는 건축자재로 쓰였다. 여전히 이 마을의 계단이나 담장에는 당시 사용했던 비석들이 곳곳에 박혀있다. 마을 입구 최근 도로 확장 공사를 하며 드러난 옛 집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묘의 상석 그 위에 그대로 벽체를 올리고 지붕을 씌운 집이다. 묘 자체를 집의 기반으로 삼을 수 있었던 담대함이라니. 무덤에 대한 두려움보다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 현실이 더 무서웠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많은 묘석으로 석축을 쌓은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의 행복마을안심카페 자리.

비좁은 골목을 비집고 찾아간 마을 복판의 행복마을안심카페 자리도 특이해 보였다. 석축의 대부분 자재가 묘석이다. 다양한 비석이 떠받치고 있는 터다. 죽은 영혼이 많이 어려 그런 것일까. 주민들에 따르면 마을에서 제일 먼저 헐린 집터라고 한다. 이곳에 살던 주인들만 유독 많이 아프고 안 좋았다고. 실핏줄 같은 가는 골목을 지날 때 매캐한 연탄내가 코를 찔렀다. 지난한 삶의 향은 여전했다.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의 좁은 골목길.

채 두 평도 되지 않는 크기의 집.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엔 유독 작은 집들이 많다.

공동묘지 위에 세워진 마을로 알려지는 것이 불쾌할 만도 한데, 주민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한 주민은 “예전엔 택시도 잘 안 들어오려고 했고 손가락질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이젠 부끄럽지 않다. 살면서 나쁜 짓 하고 산 것도 아니고, 이 마을이 있어 나름 행복하게 살았다”고 했다.

최근 유명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는 감천문화마을 전경.

이웃 감천문화마을은 산복도로가 지나는 산동네 중 가장 유명해진 곳이다. 주민과 예술가, 지자체가 손잡고 도시재생에 나서 지난해엔 100만 명이 훌쩍 넘는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로 거듭났다. 이제는 너무 많은 이들이 몰려들어 교통정체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처음엔 찾아오는 이들이 반갑다던 주민들도 이젠 아무렇게나 카메라를 들이대고 웃고 떠들며 지나는 관광객들 때문에 사생활이 침해된다며 볼멘 소리를 하고 있다. 산동네의 골목길을 거닐 땐 특히나 그들의 삶에 대한 존중이 필요한 법이다.

부산=이성원기자 sung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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