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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다시 심장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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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다시 심장이 뛴다

입력
2014.07.10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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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의 광풍에서 비켜선 옛 정취

삶의 소소한 숨결·여유 간직 인기

외국인들에게도 필수 여행코스로

서촌·이화동

50∼60년 된 헌책방·중국집 세월의 흔적과 낭만 오롯이

경리단길

한적하면서 예쁜 카페 많고 남산·이태원으로 통해 젊은 남녀 데이트 코스로 각광

서울 부암동의 좁고 굽어진 오르막길은 비가 와도 사람들로 붐빈다. 사람들은 키 작은 건물의 기와에 쌓인 세월의 흔적과 고즈넉함에 기대 서울 도심의 분주함을 떨쳐 낸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서울 부암동의 좁고 굽어진 오르막길은 비가 와도 사람들로 붐빈다. 사람들은 키 작은 건물의 기와에 쌓인 세월의 흔적과 고즈넉함에 기대 서울 도심의 분주함을 떨쳐 낸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통의동 골목길에 오랜 전통의 음식점들이 빼곡히 들어찼다. 신상순선임기자ssshin@hk.co.kr
통의동 골목길에 오랜 전통의 음식점들이 빼곡히 들어찼다. 신상순선임기자ssshin@hk.co.kr

150여 세대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 이화동은 한양도성 성곽, 담벼락 벽화, 마을박물관 등 소소한 볼거리로 서울시민들의 눈길을 잡아끈다. 손효숙기자 shs@hk.co.kr
150여 세대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 이화동은 한양도성 성곽, 담벼락 벽화, 마을박물관 등 소소한 볼거리로 서울시민들의 눈길을 잡아끈다. 손효숙기자 shs@hk.co.kr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은 콘셉트가 명확한 가게들이 즐비해 평일에도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은 콘셉트가 명확한 가게들이 즐비해 평일에도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골목길에 사람이 북적거린다. 큰 길에서 들어가 동네 안으로 통하는 좁은 길. 집과 집, 동네와 동네를 이어주는 그 지역만의 사적인 공간인 골목이 이제는 낯선 사람들이 일부러 찾는 공적인 성격까지 갖게 됐다. 개발의 열기 속에서 어렵게 자신을 지켜낸 골목이 지금 숨통을 트게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소박함 때문이다. 화려하지만 건조한 대도시에서 삶의 소소한 숨결과 여유를 간직한 몇 안 되는 공간이 바로 골목이기 때문이다.

골목골목 한옥이 즐비해 서울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북촌이 인기를 끄는 것은 그래서이다. 가회동, 재동, 삼청동을 아우르는 북촌의 정취를 매료돼 주말뿐 아니라 평일에도 사람이 찾아 든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도 반드시 들르는 필수 여행 코스다. 오래되고 소박하지만 정취와 멋이 있는 골목이 북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촌…골목마다 피는 아날로그 향기

효자동, 누하동, 통인동, 체부동 등을 포괄하는 서촌은 골목길의 천국이다. 이 일대에서 30년 이상 살며 ‘서촌방향’이라는 책을 쓴 설재우씨는 “서촌은 지친 마음을 달래고 치유해주는 힐링 플레이스”라면서 그 근원이 바로 골목길이라고 강조한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로 나가 쭉 들어가면 골목길이 펼쳐진다. 화려한 첨단 문화와 거리가 먼 일상의 모습이 이곳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빨강과 파랑, 흰색이 사선으로 돌아가는 이발소와 삐뚤빼뚤 수작업을 한 오래된 간판.

서촌은 경복궁 너머 북촌과 비교가 된다. 북촌에 조선 상류층이 많이 살았다면 서촌은 궁중 나인 등 중인이 많았다. 그래서 북촌에 멋진 기와를 앉힌 한옥이 많은 반면 서촌에는 좁은 골목에 붙어있는 소박한 집이 많다. 서촌은 조선 중기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예술인의 거점 역할을 했다. 이상, 윤동주, 이중섭 등이 서촌에 머물렀다. 1968년 청와대 부근에서 무장공비 침투 사건이 일어나자 이 일대는 더욱 고립된다. 93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개발이 제한됐었다. 서울 시내에서 조선시대와 현재의 지적도가 유일하게 일치하는 동네가 바로 이곳이다. 50년 전통의 중국집 영화루, 40년이 된 만나분식, 60년이 넘은 헌책방 대오서점 등이 현대식 가게들과 공존하는데 그런 풍경이 또 사람들을 부른다.

이화동 골목길…삶의 모습 지닌 가파른 벽화마을

젊음의 거리인 대학로를 조금만 벗어나면 고즈넉한 골목이 나온다. 마로니에 공원 뒤로 펼쳐진 골목들을 올라가면 널따랗게 펼쳐진 낙산이 공원을 형성하고 있다. 힘든 숨을 내쉬고 내려다 본 서울의 풍경은 시원한 바람과 같다. 이 일대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소설가 김훈은 “어린 시절 폐허가 된 성곽 주변은 무너져버린 그 시대의 표정을 이야기하는 듯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비록 높이가 100m를 조금 넘는 낮은 산이지만 마을이 낙산을 배경으로 형성되다 보니 이 일대 골목은 다른 지역보다 더 좁고 가파르다. 그런 이곳이 벽화마을로 변신한 것은 한젬마를 중심으로 한 예술인 68명이 2006년 낙산 공공 프로젝트의 하나로 벽화를 그려 넣으면서다. 벽화는 가파른 계단에도, 그 계단 옆 소박한 집의 담벼락에도, 축대에도 그려져 있다. 예쁘고 아름다운 그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싱을 돌리는 벽화는 이곳 사람들의 삶을 사실적이고 솔직하게 보여준다. 젊은이들은 그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데 그 때문에 ‘쉿, 주민이 살고 있어요’라는 푯말이 마을에는 걸려 있다.

경리단길…세련된 젊은이들의 공간

25년 전으로 돌아가야겠다. 기자는 학창 시절 서울 성북동에 살면서 주말이면 이모가 살고 있는 이태원으로 출동했다. 또래의 사촌을 만나러 우리 세 자매는 60원씩 차비를 내며 710번(현 143번)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종로 일대를 거쳐 남대문시장, 명동, 남산터널을 지난 뒤 해방촌(크라운호텔 앞)에 닿았다. 그 동안 세 자매는 맨 뒤 자리에 앉아 창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버스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당시는 크라운호텔 부근이 휑할 때였다. 왕복 4차로 도로 양 옆으로 미군 부대가 있었다. 그런데 이 곳을 지금은 경리단길이라고 한다. 가장 뜨거운 데이트 코스다. 국군재정관리단에서부터 남산 하얏트 호텔에 이르는 회나무로길과도 가깝다. 경리단길은 국군재정관리단의 옛 이름인 육군중앙경리단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는 말이 있다. 레스토랑과 카페, 영국식 펍이 많다.

인터넷 기사와 블로그 등으로 입 소문을 탄 가게에는 손님이 북적거린다. 유명세를 탄 한 아이스크림 가게는 평일인데도 10여명이 줄을 서있었다. 대학생 이민정(23)씨는 “전에는 홍대 앞이나 신사동 가로수 길을 자주 갔는데 얼마 전 경리단길로 옮겼다”며 “한적하면서도 예쁜 카페가 많아 자주 온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터키, 멕시코 등 다양한 국적의 음식점도 많다. 그러나 아담하고 소박하지만 으리으리하지는 않다. 대구에서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기 위해 왔다는 김석훈(22)씨는 “경리단길이 좋다고 하길래 왔다”며 “경리단길을 지나 회나무길로 올라선 다음 남산으로 넘어가는 데이트 코스를 택했다”고 했다. 25년 전 동네의 중심이었던 제일시장 주변은 외국인과 젊은이가 오가는 특색 있는 골목이 됐다. 경리단길에서 하얏트 호텔 방향으로 오르면 남산공원에 닿고 반대로 해밀톤 호텔 쪽으로 가면 번화한 이태원 거리에 도착한다. 남산과 이태원 어느 방향으로든 갈 수 있는 것도 경리단 길의 장점이다.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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