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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민 “아이들이 '아빠도 연예인이야'라고 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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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민 “아이들이 '아빠도 연예인이야'라고 물어"

입력
2018.08.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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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를 하다 보면 취향도 바뀐다. 배우 이성민은 요즘 애견인이 다 됐다. 애초 개를 무서워 가까이 하지도 못했는데 오는 15일 개봉할 영화 '목격자'와 내년 개봉을 앞둔 '미스터 주'를 찍으며 개와 무척 가까워져서다. NEW 제공
연기를 하다 보면 취향도 바뀐다. 배우 이성민은 요즘 애견인이 다 됐다. 애초 개를 무서워 가까이 하지도 못했는데 오는 15일 개봉할 영화 '목격자'와 내년 개봉을 앞둔 '미스터 주'를 찍으며 개와 무척 가까워져서다. NEW 제공

‘프로이직러’. 올해, 하늘의 뜻을 안다는 나이(지천명ㆍ50)에 접어든 배우 이성민에 붙은 별명이다. 그가 TV와 스크린을 오가며 워낙 다양한 직업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다. 의사(드라마 ‘골든타임’)에서 대통령(드라마 ‘마이 프린세스’)을 거쳐 철야 근무를 밥 먹듯이 하는 회사원(드라마 ‘미생’)부터 퇴물 조직폭력배(드라마 ‘미스코리아’)까지. 이성민은 작품마다 새 ‘옷’을 입어야 하는 배우의 천직을 누구보다 묵직하게 수행했다.

1980년대 후반 연극 무대에 올라 연기를 시작한 이성민에게 올 여름은 폭염처럼 뜨겁게 기억될 듯싶다. 이성민은 이달 영화 ‘공작’(8일 개봉)과 ‘목격자’(15일 개봉)를 연달아 선보인다.

큰 작품이 쏟아지는 여름 극장가에서 그의 다작보다 눈 여겨봐야 할 대목은 따로 있다. 새로운 캐릭터와 장르에 도전한 이성민의 행보다. 이성민은 ‘공작’에서 북의 외화벌이를 책임지고 있는 대외경제위처장 리명운 역을 맡았다. 데뷔 후 첫 북한 공직자 연기다.

“절망감을 느꼈어요.” 지난 9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위해 만난 이성민에게 ‘공작’은 30여 년 차 배우가 만난 큰 ‘산’과 같았다. ‘목격자’를 찍으면서는 새로운 연기 경험을 했다. “아파트란 일상적인 공간에서 스릴러를 찍을 수 있다는 게 처음에는 신기했고 나중엔 더 강렬하게 다가왔어요.” ‘목격자’에서 평범한 중년 가장 상훈 역을 맡은 이성민은 살인 사건을 목격한 후 살인자로부터 가정을 지키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영화는 범인 찾기에 방점을 둔 기존 스릴러와는 달리 ‘당신이 살인을 목격했다면?’이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스릴러의 새길을 걷는다.

인터뷰가 끝나자 이성민은 기자에게 악수를 먼저 권했다. 큰 숙제를 마친 듯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또 ‘짐’을 싸야했다. 10일 전북 무주에서 내년 개봉할 영화 ‘미스터 주’ 촬영을 한다고 했다. 다음은 무주로 내려가기 직전 프로이직러가 들려준 신작 그리고 소시민 이성민 얘기다.

북핵 스파이 흑금성의 실화를 각색한 영화 '공작'의 한 장면. 이성민은 북의 경제 실세 리명운을 연기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북핵 스파이 흑금성의 실화를 각색한 영화 '공작'의 한 장면. 이성민은 북의 경제 실세 리명운을 연기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 ‘공작’을 찍다 절망감을 느낀 이유는 무엇인가.

“대놓고 드러내지 않지만 리명운은 대북 간첩인 박석영(황정민)과 여러 방식으로 대화를 하며 날선 감정을 전달한다. 그 대화엔 긴장이 담겨야 한다. 나와 (황)정민이가 식탁 밑에서 표창을 날리며 신경전을 벌이는 상황을 말에 담는다면 이해가 쉬울까. 그런데 생각처럼 잘 안 되는 거다. 그러니 절망감이 생겼고. 일상의 연기를 주로 했는데 다른 연기의 결이 필요했으니까. 물론 ‘공작’에서 대단한 걸 했다는 건 아니다. 이 영화는 여러모로 날 흔들었다. 관객을 배려하는 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기존에는 ‘나 이런 상태야’를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면 관객이 극 중 캐릭터의 심리를 따라 올 수 있게 이끄는 여지를 남긴 연기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절감했다.”

-‘목격자’는 체력적으로 촬영이 고됐을 것 같다. 영화 후반 아파트 뒷산에서 산사태가 난 상황에서 살인자 태호(곽시양)와 벌인 격투 장면이 힘들어 보였다.

“촬영을 지난해 12월 초에 했다. 초겨울이라 입김이 나는 상황에서 찍느라 고생 좀 했다. 경기 남양주 인근 야산에서 촬영했다. 흙탕물에 머리를 박고 있는 촬영 등을 사흘에 걸쳐서 하다 보니 생각지 못한 후유증이 있더라. 목욕하고 귀를 파면 계속 흙이 묻어 나왔다(웃음). 촬영 끝나고 한 달이 지나도. 병원에 가야 하나 싶었을 정도였다. 진짜 야산에서 찍다 보니 돌들이 이곳 저곳에 박혀 있었는데 사고 없이 잘 끝나 다행이다. 워낙 악을 쓰고 액션 장면을 찍다 보니 턱이 좀 아프긴 했다.”

영화 '목격자'의 한 장면. 영화는 관객에 ‘당신이 살인을 목격했다면?’ 이란 질문을 던진다. NEW 제공
영화 '목격자'의 한 장면. 영화는 관객에 ‘당신이 살인을 목격했다면?’ 이란 질문을 던진다. NEW 제공

-’목격자’에서 살인자는 목격자들이 침묵해 살인을 반복한다. 영화가 불의에 침묵하는 세상의 공포를 다룬 것 같다.

“영화에서 상훈은 범인이 살인하는 걸 보고도 경찰에 신고하지도 않고 목격 진술을 털어놓지도 않는다. 그러다 이웃이 숨지고 가족이 위험에 처하기도 하고. 처음에는 ‘왜 신고를 안 하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감독과 대화를 하며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영화에서 살인자인 태호는 상훈이 범행 현장을 목격한 걸 알고 반려견을 훔친다. 그러다 상훈이 경찰(김상호)에게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자 개를 가족에게 돌려준다. 조용하면 살려주겠다는 신호잖나. 가장에게는 ‘내가 침묵하면 우리 가족을 지킬 수 있다’라는 생각을 들게 할 수 밖에 없다. 이기적이지만 자신이 입을 열었을 때 혹시 가족에게 올 수 있는 피해를 생각하면 말이다. 그리고 상훈은 보험 회사에 다닌다. 숱한 사건을 보며 경찰서를 왔다 갔다 하는 일에 넌더리가 난 상황이다. 괜히 살인 사건에 휘말리지 말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면 침묵할 수 있겠다 싶었다.”

-후반부 상훈은 사고가 난 아파트 단지에서 “살려주세요”라고 외친다. 역시 아무도 나와 보지 않는다. 세상은 듣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고 할까. 또 경찰서에서 가서 “당신이 우리 보호해줄 거냐?”고 소리치며 사회 안전망에 대한 불신을 보여줬다. 세월호 참사 등 여러 사회적 상처들이 떠오르더라.

“처음에 대본을 받았을 땐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다만 워낙 이야기가 흥미로워 대본을 무척 빨리 읽었던 기억이 난다. 감독 만나고 자세한 얘기를 나누고 촬영을 해보니 보이지 않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회적인 이슈들과 닿아있다는 생각도 촬영한 뒤 들기 시작했다. 배우로서 내 숙제는 침묵하는 상훈에게 어떻게 설득력을 부여하느냐였다.”

-상훈은 결국 침묵하지 않는다. 세상도 그럴까.

“한 달 전인가 자전거를 타던 한 어르신이 갑자기 쓰러졌다. 안양천 인근에서 나도 자전거를 타고 있을 때였다. 무더위에 약주를 하신 상태에서 자전거를 타 갑자기 정신을 잃은 것 같더라. 다행히 의식은 있었다. 그때 한 청년이 달려와 119에 신고하고 어르신을 챙기더라. 응급차 실려 가면 그 분이 타고 온 자전거를 못 가져가니 그 청년이 따로 맡아 챙겨주면서 전화번호까지 알려주고. 물론 그 때 나도 달려가 “선생님 괜찮으세요?”라며 어르신을 살폈지만, 그 청년이 참 대단하다 싶었다. 아직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있구나 확인했다.”

-생활 속에서 집단 이기주의에 따른 공포를 영화 중반까지 잘 우려냈다. 하지만 후반에 영화가 추격 액션 영화인 ‘테이큰’처럼 바뀐다. 일관성이 흐트러진다.

“처음엔 나도 과한 거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상훈이라면 범인을 쫓아 달려갈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가족이 죽음의 문턱까지 몰리는 위협을 당하는 상황이었잖나. 더는 당하고만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든 거라 봐 줬으면 한다.”

-‘목격자’ 초반 상훈의 모습에 오상식 과장(‘미생’)의 모습이 비쳤다.

“회식에서 술 취한 모습을 연기할 때 나도 오상식 생각이 나더라. 감독한테 안 그래도 ‘이거 ‘미생’ 아녜요?’라고 농담했다. 술을 마신 뒤 상훈이 맥주 한 캔과 과자(맛동산)를 들고 집에 들어간다. (동물원) 김창기씨 노래 중에 ‘난 아직도 외로워’란 곡이 있다. “SUV와 주말이 있어, SNS와 친구도 있어, 결국 내가 이것뿐인가 하는 의혹에 잠길 때도 있어”라는 노래다. 촬영하는 데 이 노래가 생각나면서 중년의 쓸쓸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람 냄새’가 풍긴다고들 한다.

“작품을 고를 때 일상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 내 취향들이 극중 캐릭터로 쌓여 그런 게 아닐까. ‘공작’ 등 몇 편을 제외하면 그렇게 극적인 작품을 많이 하지 않았으니까. 다만 일상에선 모든 걸 내려놓는다. 집에 당연히 내 사진 하나 걸려 있지 않다. 집에선 배우로서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내가 대본을 보지 않는 이상(웃음). 가끔 아이들이 ‘아빠도 연예인이야?’고 물으면 ‘아빠도 연예인이야’라고 할 정도다.”

-출연작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를 꼽자면.

“아무래도 최인혁(‘골든 타임’)과 오상식(‘미생’)이 아닐까. ‘골든 타임’ 찍을 땐 진짜 주변에서 날 의사로 보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의사도 촬영 장면 설명하면서 모니터 보여주며 ‘아시겠지만...’ 이런 식으로 말해 황당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웃음).”

-‘목격자’는 ‘신과 함께-인과 연’ 등 대작들에 끼였다. 흥행에 부담이 클 것 같다.

“‘공작’ 개봉한 뒤 일주일 뒤 바로 개봉이라 너무 부담스럽다. 그래서인지 ‘공작’ 배우들과 감독 들이 있는 단체 카톡 방에서 다들 ‘‘목격자’ 파이팅!’ 하며 응원해준다(웃음). ‘로봇, 소리’(2016)로 처음 주연을 맡았을 때 흥행에 대한 책임감이 엄청나게 커 ‘다시는 안 해야겠다’ 엄살을 부렸는데 이젠 좀 나아졌다. 여유가 생긴 건 아니고 ‘보안관’(2016) 등을 거치며 단련이 된 것 같다.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을 정도로 관객이 들었으면 하며 여전히 마음 졸이고 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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