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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식이 말하는 나의 영화 4

입력
2017.04.2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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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특별시민' 쇼박스 제공
영화 '특별시민' 쇼박스 제공

이번엔 정치인이다. 그것도 서울시장 3선에 도전하는 물불 가리지 않는 정치 9단 변종구로 변신했다. 배우 최민식(55) 얘기다. 그는 26일 개봉하는 영화 '특별시민'에서 가족이나 측근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매몰차게 이용하는 냉혈한이 됐다.

최민식은 최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그저 “새로운 변신을 즐기는 중”이라고 했다. 치열한 선거전 속에 숨겨진 정치인들의 권모술수를 들춰내는 "본격 정치 영화"라는 점이 흥미로웠단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네 편의 영화를 언급했다. ‘올드보이’와 ‘악마를 보았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대호’다. 과연 그는 이들 영화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영화 ‘올드보이’의 한 장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영화 ‘올드보이’의 한 장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올드보이'(2003)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화 하면 떠오르는 데 주저할 사람은 없을 듯하다. 영화 '올드보이'는 최민식에게도 '인생작' 중 하나다. 그를 전 세계 영화팬들에게 소개했고, 심지어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까지 됐으니까. 특히 그가 장도리를 들고 펼치는 롱테이크 액션은 한국을 넘어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 중 하나다. 오죽했으면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2015)의 매튜 본 감독이 콜린 퍼스의 화려한 액션을, 이 장도리 장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을까 말이다. '제5원소' 등으로 유명한 뤽 베송 감독도 '올드보이'를 보고 영화 '루시'(2014)에 최민식을 캐스팅했다.

영화는 평범한 샐러리맨 오대수(최민식)가 알 수 없는 누군가에 의해 15년 간 감금됐다 풀려나 5일 동안 추적하는 내용을 담았다. 최민식은 한 순간에 가족과 떨어져 15년의 허송세월을 보낸 오대수의 기막힌 삶을 꾹꾹 눌러 스크린에 풀어냈다. 오대수 역은 그가 아니고서는 입을 수 없는 맞춤복 그 자체였다. 산낙지를 입 속에 쑤셔 넣고, "너는 누구냐?"며 삶의 의욕을 잃은 허망한 표정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다.

한국을 방문한 수많은 해외 감독과 배우들이 "'올드보이'"를 외치며 박찬욱 감독과 최민식의 이름을 거론하는 건 당연한 일이 됐다. '올드보이'의 위상이 얼마나 높은가 새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한 편으론 14년이나 지난 '올드보이'가 회자되는 것에 웃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올드보이'를 능가하는 한국영화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는 방증일 테니까.

최민식도 "개인적으로는 영광일 수 도 있지만 달리 보면 독이 될 수도 있다"며 '올드보이'의 영광에 선을 그었다. 배우로서의 이미지가 10여년 전 작품 속에 머물러 있다는 것에 경계심을 보인 듯했다. 그러나 "그래도 어딜 가나 '올드보이'를 말씀하시니 이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랴"는 솔직한 심정도 밝혔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의 최민식. 한국일보 자료사진
영화 ‘악마를 보았다’의 최민식. 한국일보 자료사진

'악마를 보았다'(2010)

그야말로 인면수심의 악마가 등장한다. 망치나 총을 들고 사람을 위협하는 모습이 심장을 조여온다. 때로는 무표정으로, 때로는 흐릿한 미소로 핏빛 하드코어를 조율한다.

최민식은 연쇄살인마 장경철을 연기했다. 부녀자를 유인해 가차 없이 살해하는 장경철의 몸짓은 '올드보이'의 오대수를 잊게 만든 최고의 변신이었다. 이유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납치하고 살해하는, 광기 어린 표정은 다시 봐도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영화는 국정원 경호요원 수현(이병헌)이 약혼녀를 잔인하게 살해한 장경철을 잡기 위해 벌이는 복수극이다. 김지운 감독이 연출을 맡아 이병헌과 최민식의 조화로 영화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작품이었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죄의식이 없는 사이코패스 연기를 한 최민식과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이병헌의 연기가 한 프레임 속에 놓이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의 눈요기는 충분했다. 이 대결 아닌 대결은 훌륭한 관전 포인트.

이에 최민식은 "'올드보이'도 훌륭했지만 해외에서 만난 영화관계자들은 '악마를 보았다'를 꼭 얘기하더라"고 말했다. 그가 뤽 베송 감독의 영화 '루시'를 촬영할 때 현지 스태프들이 '악마를 보았다'를 언급하며 "한국영화 많이 본다"는 얘기를 했다고.

최민식은 "그들은 한국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 큰 관심을 보인다"며 '올드보이'나 '악마를 보았다' 등이 제작되는 과정을 몹시 궁금해한다고 했다. 젊은 스태프들일수록 “한국에 직접 가서 현장을 배워보고 싶다”고 한다는 거다. 그럴 때마다 그들을 앉혀 놓고 한국영화가 어떻게 제작되는지 이야기했을 최민식의 모습이 눈 앞에 선하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한국일보 자료사진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한국일보 자료사진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2)

한 인간이 더 '나쁜 놈'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영화다. 부산의 일개 세관 공무원 최익현(최민식)이 비리 공무원으로 전락하고 종국에는 '나쁜 놈'들의 무리 속으로 들어가 음모와 배신으로 얼룩지는 인생을 따라간다.

영화는 1982년 부산이 배경이다. 해고 위기에 처한 비리 세관 공무원 익현은 순찰 중 적발한 마약으로 한 탕 꿈에 빠진다. 부산 최대 조직의 보스 최형배(하정우)를 끌어들인다. 이렇게 시작한 두 사람의 비즈니스 관계는 세상 무서운 줄 모르게 세력을 키운다. 그러나 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위기에 직면한다. 살아남기 위해서 서로의 등에 칼을 꽂아야 하는 극한 상황에 처한 것. 익현의 머리와 형배의 주먹이 대치하는 상황을 맞는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두 사람의 대립이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펼쳐진다.

최민식은 이 영화를 위해 10kg이나 몸무게를 늘려 능글능글하고 허세를 부리는 익현 캐릭터를 완성했다. '비리의 신'으로 불리며 뱀의 혀를 가진 그를 미워할 수 없는 인물로 만들었다. 또한 하정우 곽도원 조진웅 마동석 등 후배들과의 호흡으로도 주목 받았다. 주먹 쓰는 조직들과의 이야기다 보니 맞는 장면도 수 차례. 많은 젊은 후배들과 연기하는 재미도 잠시 실제로 구타를 당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는 곤혹스럽기도 했다고.

최민식은 "그렇게 많이 맞은 영화도 없다"고 했다.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걸 보면 꽤나 힘들었나 보다. 특히 '특별시민'에서 정치 파트너로 나오는 곽도원에게도 "많이 맞았다"며 웃었다. '범죄와의 전쟁'에서 악질 검사로 나온 곽도원은 화장실에서 최민식의 엉덩이를 발로 차는 연기를 했다. 최민식은 "축구공 차듯이 하라고 했지만 진짜 그렇게 세게 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억울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완벽한 장면을 완성하기 위한 선배의 배려였다. 그렇다고 대놓고 아프다고 할 수 없단다. 혹시라도 후배들이 마음 불편해해 실제 같은 연기를 할 수 없을 테니까. 470만명의 관객을 모은 건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최민식은 5년이 지난 지금도 곽도원의 발차기를 잊지 못하는 모양이다. "화장실에게 나를 그렇게 때리나. 진짜 아팠다"고 말할 정도니 말이다.

최민식은 영화 '대호'에서 조선의 명포수 천만덕을 연기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최민식은 영화 '대호'에서 조선의 명포수 천만덕을 연기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대호'(2015)

제작비가 무려 170억원이 들었다. 호랑이와 사투를 벌이는 조선 최고의 명포수 천만덕(최민식)의 이야기다. 컴퓨터그래픽(CG)를 이용해 조선의 '대호'를 불러냈다.

1920년대 일제가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된다. 조선 최고의 포수로 불리는 만덕은 "산군은 건드리는 게 아니다"며 일제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러나 호랑이 잡이를 그만둘 일제가 아니었다. 조선의 다른 포수들이 나서지만 대호로 인해 수많은 목숨이 사라질 뿐이었다. 대호로 인해 아내를 잃고 아들과 살고 있는 만덕은 그들의 소식을 들으면서도 나서지 않는다. 그러나 아들 석(성유빈)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포수 대열에 합류한다. 대호를 피하려던 만덕이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사실 영화의 얼개는 대호와 만덕의 끊을 수 없는 운명을 이야기 한다. 최민식이 선택하기에 너무 단조로운 구조일지도 모른다. 그는 이를 두고 "'대호' 같은 영화들을 자꾸 시도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의 다양성 측면에서 한국영화계에 "꼭 필요한 영화"라는 것이다. '특별시민'에 출연한 것도 사회 비판적인 작품은 많지만 본격 정치영화는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대호'나 '특별시민' 등이 출발점이 됐으니 (영화계가) 이를 발판으로 또 다른 버전을 만드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미국처럼 시리즈로 제작되는 등 나무가 가지를 치듯 뻗어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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